/일러스트=박상훈

경상도 사나이 박씨는 논 3만평을 일구는 농부다. 모든 농부 일을 아내와 같이하며 보낸다. 일이 고돼도 농부가 천직이라며 하루하루가 즐겁단다. 그가 이렇게 농부 일상을 하게 된 건 작은 기적이다.

박씨는 폐섬유화증 진단을 받고 투병했다. 이 병은 허파 조직이 딱딱해져서 공기 순환이 되지 않는 병이다. 대부분 특별한 원인이 없이 생긴다. 병이 진행되면 숨이 차서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 박씨도 그렇게 됐다. 산소통 없이는 움직일 수 없었다. 천생 농부인 그는 산소통을 트랙터에 달고, 이앙기와 자동차에도 따로 싣고 다니며 농사를 계속했다. 그렇게 해도 나중에는 숨이 차서 몇 발자국도 걷기 힘들어졌다. 죽음이 다가온다는 생각에 무작정 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백효채 교수를 찾았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심정이었다. 백 교수는 국내에서 폐 이식을 가장 많이 시행한 의사다.

이런 환자에게 폐 이식은 유일한 희망이다. 장기 기증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어느 날, 마침내 뇌사자의 폐 기증 소식이 들려왔다. 백 교수의 응급 수술 집도로 뇌사자에게서 적출한 폐가 긴박한 손놀림 끝에 박씨 흉곽으로 들어갔다.

뇌사자 폐는 언제 어디서 나올지 모르기에 이식팀은 24시간 대기하고 있다가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결심한 뇌사자 쪽으로 달려간다.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 가서 폐를 떼는 경우도 종종 있다. 떼어낸 폐는 공기를 불어넣어 풍선처럼 부풀린 후 기도 입구를 클립으로 틀어막고, 섭씨 4도의 차가운 보존액에 담가서 가져온다.

박씨의 양쪽 폐에 새 폐가 들어가자 회복이 금세 이뤄졌다. 그는 폐 이식을 받고 “희망의 날개를 내 몸에 단 것 같다”고 했다. 박씨는 폐 이식 후 편안히 숨 쉬며 트랙터를 몰고, 이앙기 핸들을 잡는다.

이렇게 죽음 문턱까지 갔던 많은 환자가 백 교수 폐 이식으로 본래 삶을 보낸다. 공무원으로 돌아가고, 다시 중국집 문을 열고, 테니스를 하고, 가족과 산책하고, 해외여행을 떠나고, 매일 아침 걸어서 직장으로 출근하고, 아이들과 캠핑을 떠나고, 다시 온 가족이 모여 계곡물에 발을 담갔다. 다들 일상으로 돌아와서 행복하단다.

백 교수는 지난 8월 연세대에서 정년 퇴임했다. 그에게 폐 이식을 받은 환자들이 백 교수를 위해 정년 퇴임 기념 연회를 마련했다. 환자들이 나서서 의사의 정년 퇴임 파티를 하고 아쉬움을 달랜 건 처음이지 싶다. 이날 폐 이식받은 환자가 색소폰을 연주하고, 성악가는 턱시도를 입고 노래를 불렀다. 환자들은 백 교수의 수술 덕분에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인사말을 건넸다. 명의(名醫)는 환자가 만드는 법이다.

백 교수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전체 폐 이식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370건 이상을 수술했다. 성인 폐-심장 동시 이식, 최고령 폐섬유증 폐 이식 등 이 분야서 다양한 최초 및 최고 기록을 갖고 있다. 장기 이식은 의술의 꽃이다. 요즘 이런 걸 하겠다는 젊은 의사가 점점 줄어서 걱정이다. 필수 의료 중 장기 이식 의사 양성은 꼭 필요하다.

지난해 장기 이식을 기다리다 세상 떠난 환자가 2480명이다. 하루에 6.8명꼴이다. 뇌사자 장기 이식 기증자는 2016년 576명으로 최고점을 찍고 내리막길이다. 작년에 442명에 그쳤다. 의학의 발달로 역설적으로 뇌사자 발생부터가 준다. 설사 뇌사자가 있더라도 국내 장기 기증률은 9.2%다. 미국과 스페인의 38%,  37%에 비하면 현저히 낮다. 아마도 뇌사자 장기 기증에 따른 이식은 한계에 이른 듯싶다.

새로운 희망은 있다. 응급실에서 즉석으로 이뤄질 정도로 에크모라는 체외 순환 장치가 보편화됐다. 사망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에크모를 통해 인위적 심폐 순환을 만들어 주면 일시적 연명이 가능해졌다. 예전 같으면 바로 세상을 떠날 상황에서 쉼표가 가능해졌다. 비록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장기는 하루 이틀 살아갈 수 있다. 그 시간을 활용하여 장기 기증과 이식이 가능하다. 미국, 호주 등에서는 에크모로 삶이 일시 연장된 환자들의 기증을 통해 전체의 30%를 장기 이식한다.

사람 생명 하나하나, 인간 장기 하나하나 애틋하다. 이제 우리나라도 심폐 순환 장치를 이용한 장기 기증을 활성화했으면 한다. 그렇게 되면, 죽음까지 갔다가 다시 일상 행복을 즐기는 환자가 늘어날 것이다. 요즘 그런 것이 너무 소중하다는 것을 다들 느끼고 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