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셰바즈 샤리프 총리가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유엔 기후총회에 참석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뒤쪽 자막에 '파키스탄에서 벌어진 일이 파키스탄에만 머무는 건 아니다'라고 쓰여 있다. 파키스탄은 올여름 심각한 홍수 피해를 봤다. / 로이터 연합뉴스

유엔 기후총회가 6일 이집트에서 개막해 18일까지 진행된다. 여기서 ‘로스앤드대미지(Loss and Damage)’가 핵심 의제로 채택됐다. 로스앤드대미지는 ①온실가스를 별로 배출한 일 없는 가난한 나라가 ②선진국이 배출한 온실가스 때문에 ③회복 불능으로 입은 손실과 피해를 말한다. 책임은 부자 나라들에 있으니 그걸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파키스탄 총리는 “동냥하는 것으로 보지 말라”고 했다. 파키스탄은 7~8월 홍수로 국토의 3분의 1이 잠겨 1700명 사망, 가옥 200만채 파손, 이재민 900만명의 피해를 봤다. 피해 규모 400억달러(약 55조원)다. 파키스탄 총리는 선진국을 향해 “당신들이 배출한 온실가스 탓이라는 증거가 있으니 당신들이 책임지라”고 주장했다. 자비가 아니라 기후 정의(climate justice)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0월 말까지 국제사회 지원금은 1억2900만달러에 그쳤다.

아프리카도 올 들어 나이지리아 홍수(사망 600명, 수재민 130만명), 소말리아·케냐 가뭄(기아 2200만명) 등이 발생했다. 아프리카 54국의 역대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은 전 세계의 3%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과 EU만 합쳐도 47%가 된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선진국을 보는 시각은 적대적이다. 과거 식민 지배를 당한 경험이 있고, 자원 착취를 당했다고 생각한다. 선진국들은 산업폐기물이나 갖다 버리면서 코로나 백신도 흔쾌히 나눠주지 않았다. 아프리카, 아시아 등 가난한 나라들은 열대에 몰려 있다. 폭풍, 홍수, 가뭄 등 극단 기상에 극도로 취약하다.

아프리카에서만 6억명이 전기를 못 쓰고 있다. 이들은 허리케인이 10배 더 몰아친다 해도 전기를 원할 것이다. 기후 붕괴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산업화와 에너지 확보가 절박하다. 하지만 선진국 주도의 국제 금융 기구들은 개도국의 화석연료 개발을 돕지 않고 있다.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다. 콩고민주공화국은 1인당 온실가스 배출이 미국의 25분의 1밖에 안 된다. 이 나라가 지난 7월 열대우림 지역에서 석유·가스를 캐내겠다고 하자 미국 존 케리 기후특사가 우려를 표명했다. 콩고민주공화국 환경장관은 이에 “개발을 위한 배출을 못 하게 할 권리를 누가 갖고 있나. 지금은 식민 시대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선진국은 수백 년간 화석연료 산업화를 해왔다. 그랬으면서 개도국은 그 길을 밟지 말라는 것은, 자기들이 저질러 놓은 기후 붕괴를 개도국더러 함께 책임지자고 하는 셈이다. 선진국들은 개도국의 기후 대처를 돕겠다는 약속을 해놓고 이행하지도 않았다. ‘2020년부터 연 1000억달러씩 지원’ 약속을 말한다. 개도국들은 그 1000억달러를 지원받더라도 액수가 턱없이 모자란다고 주장한다. 지금 거론되는 로스앤드대미지는 재정 규모의 차원이 다르다. 수천억 달러 수준이다. 2050년엔 1조달러, 우리 돈 1400조원을 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재원 마련을 위해 탄소세, 항공여행세, 국제금융거래세, 화석연료 횡재세 등 갖가지 아이디어가 튀어나오고 있다. 부채 탕감 주장까지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로스앤드대미지 배상 자금을 내놓겠다고 한 건 덴마크뿐이다. 겨우 1300만달러를 제시했다.

선진국들은 “1980년대까진 온실가스로 인해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는데, 그 이전 배출까지 책임지라는 말인가”라는 반론을 한다. 야구 놀이 하다가 실수로 남의 집 유리창을 깼다고 치자. ‘고의가 아니니 배상 못 하겠다’는 말이 통하겠는가. 인도는 석탄이 풍부한 나라다. 올해 극도의 열파를 경험했다. 그 인도가 자국민에게 에어컨 돌릴 전기를 공급하겠다며 석탄발전소를 가동한다면 거기엔 ‘자기방어’ 성격이 있다. 가해자 격인 선진국 그룹에 그걸 만류할 권리가 있겠는가.

기후 해체 대처를 위해선 전 세계가 보조를 맞춰야 한다. 하지만 개도국과 선진국 간 갈등은 해소되기 힘들다. 무엇보다 온실가스 1, 2위 배출국인 중국과 미국이 손잡고 앞장서야 하지만, 두 대국 사이는 갈수록 틀어지고 있다. 심각한 에너지난에 처하자 유럽도 안면을 바꾸고 있다. 작년 기후총회 의장국으로 각국에 기후 실천을 극성스럽게 독려했던 영국은 최근 북해 석유·가스 신규 채굴 허가를 대대적으로 내줬다. 독일은 문 닫았던 석탄발전소를 다시 돌리겠다고 했다.

세계가 쪼개지고 분열되면서 기후 붕괴 대응의 단일 대오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작년 글래스고 기후총회 때 합의했던 ‘2030년 기후 목표(NDC) 상향’을 이행한 나라가 193국 가운데 26국에 불과했다. 이번 이집트 기후총회에서 어떤 겉치레 합의가 나올지 모르지만, 기후 해결을 위한 국제 협력 시스템은 위기를 맞고 있다. 기후 붕괴 대처가 늦어질수록 치러야 하는 비용의 총량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