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58회>
“일어나라, 노예가 되기 싫은 인민이여” 중국 국가 부른 ‘백지 시위’
“노예가 아니라 공민(公民)이 되고 싶다! 자유가 아니라면 죽음을 달라! 공산당은 물러나라! 시진핑은 물러나라!”
지난 11월 말 중국 전국 최소 17개 도시에서 백지를 손에 들고 광장에 몰려나온 시위대가 외친 파격의 구호이다. 그들은 모여서 목청껏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를 제창했다. 그 가사 첫 소절이 전체주의적 압제를 거부하는 중국 인민의 혁명 의식을 새롭게 일깨운다.
“일어나라! 노예가 되기 싫은 인민이여!”
다윗보다 약한 젊은 학생들이 골리앗 군단보다 강한 중국공산당 정부에 항거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공산당 해산과 시진핑 하야를 부르짖었다. 오늘날 중국에서 그보다 더 강력한 정치 구호는 있을 수 없다.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운동의 학생대표 왕단(王丹, 1969- )은 최근 개인 유튜브 방송에서 “1989년 당시 우리는 공산당 해산, 시진핑 하야 같은 구호를 외칠 수 없었다”며 시위대의 용기를 칭찬했다.
현재 중공 중앙은 시위 주동자들을 색출해서 검거하고 있다. 정치범과 사상범을 처벌하는 중국의 형법은 그 종류가 다양하다. “국가 정권 전복 선동죄,” “반혁명 선전선동죄,” “정부 전복 음모죄,” “통적죄(通敵罪, 적과 내통한 죄),” “반국죄(叛國罪, 국가에 반역한 죄)” 등등. 다만 중국 법원은 웬만해선 그러한 반체제, 반국가의 죄목을 남발하진 않는다. 시위 주동자를 처벌할 때 중국 법원은 사회질서 파괴나 폭행 혐의를 걸어 처벌하기 일쑤다. 흔히 심흔자사죄(尋釁滋事罪), 곧 “싸움을 걸고 난리를 부린 죄”가 적용된다. “사회 관리 질서 방해죄”도 시위자에게 자주 적용되는 죄명이다. 중국 법원의 억지 판결 때문에 불의에 항거해 떨쳐 일어나 정부를 비판하며 투쟁한 민주인사는 폭행범의 낙인을 받고 옥살이해야만 한다.
이번에 “공산당 해산”과 “시진핑 하야”를 부르짖은 시위 군중을 처벌할 때 중국 법원은 과연 어떤 법을 들고나올까? 2019년 산시(陝西)성 법원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국가주석을 모독하고 중국공산당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중국의 네티즌 룽커하이(龍克海)에게 “엄중하게 사회질서를 파괴했다”며 “심흔자사죄”를 걸어 1년 6개월 형을 선고했다.
인터넷 공간에서 국가영도자를 비판했는데 판사는 대체 무슨 근거로 사회질서를 파괴했다고 판단했는가? 글로써 정부를 비판한 행위가 “싸움을 걸고 난리를 부린 죄”가 될 수 있나? 독재 정권 치하에선 법원의 판결이 그렇게 상식에 반하고 논리에 어긋난다.
백지 혁명, 최초의 승리...놀란 중국공산당, 결국 봉쇄를 풀다
놀랍게도 시위의 결과는 중국 공민의 한판승이었다. 당황한 중공 중앙은 주춤 뒤로 물러섰다. 12월 7일 중국 당국은 급작스럽게 역동적 청령(淸零, 제로-코비드) 정책의 중단을 선언했다.
어떤 이는 이번 시위의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았다며 중국 당국이 때가 돼서 방역 규제를 완화했을 뿐 시위의 영향은 미미했다고 주장하는데, 바닷속의 빙산을 모르는 어리석음이다. 전체주의 중국에서 그 정도 시위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기층 인민의 분노가 이미 극에 달해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관영 매체는 이번 조치가 시위와 무관한 의학적 결정이라고 보도하고 있지만, 시위에 놀란 중공 중앙이 뒷걸음질쳤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불과 몇 주 전까지도 관영 매체는 제로-코비드 정책이 바이러스로부터 인명을 보호하는 가장 과학적이고, 효과적이며, 경제적인 방법이라고 선전·선동의 나팔을 불어댔기 때문이다.
가령 지난 10월 11일 중공 기관지 <<인민일보>>에 게재된 “역동적 제로-코비드 정책은 지속될 수 있으며, 반드시 견지해야만 한다”란 제목의 칼럼을 보자.
“방역을 잘해야만 경제가 안정될 수 있고, 인민의 생활이 평안해질 수 있으며, 평온한 경제 발전, 건전한 사회 발전이 가능해진다. 냉철하게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14억 인구의 대국인데, 지역 발전이 불균등하고, 의료자원의 총량이 부족하다. 방역을 완화하면 감염자가 폭증할 수밖에 없다. 일단 방역이 대규모로 뚫리면, 역병이 만연해서 경제·사회 발전에 엄중한 충격이 가해질 수 있다. 그 최종 대가는 더욱 높아지고 손실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역동적 제로-코비드 정책을 견지해야만 방역과 경제·사회 발전 사이의 균형이 유지될 수 있고, 가장 적은 대가로 가장 큰 방역 효과를 실현할 수 있으며, 최대한으로 사회경제 발전에 대한 방역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아울러 이 칼럼은 오미크론 변종의 “면역 도피” 능력이 확연히 증강되어서 60세 이상 인구가 2억6700만에 달하는 중국은 반드시 역동적 제로-코비드 정책을 견지해야만 하다고 주장했다. 오미크론 변이의 치사율이 낮아져서 계절성 독감보다도 위험하지 않다는 세계보건기구의 입장과 대립된다.
지난 3년간 중국의 관영 매체는 날마다 “외방수입 내방반탄(外防輸入、内防反彈), 밖으로 (바이러스) 유입을 막고, 안으로 반등을 막자”고 부르짖었다. 전 인민을 무균 상태의 인큐베이터에 감금하려는 의도였나. 과학적으로 절대 설명될 수 없는 몰상식하고 불합리한 전체주의적 만용이었다. 의학적으로 도저히 성립될 수 없는 정책이기에 제로-코비드는 정치 방역이란 해석이 더욱 설득력 있다. 결국 중공 중앙은 인민의 저항에 부딪혀 희대의 엉터리 방역 정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총서기의 옹고집이 꺾였기 때문이다.
시진핑의 이중적 메시지...시위 인정과 강력 진압 암시
지난 11월 말 중국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른바 “백지 혁명” 시위가 터진 후, 시진핑 총서기는 엇갈리는 두 가지 메시지를 세상에 내보냈다. 12월 1일 EU 위원회 회장 샤를 미셸(Charles Michel)을 만났을 때 그는 “지난 3년간 코비드-19로 절망한 학생들과 10대의 항의”가 있었음을 이례적으로 인정했다. 중국의 관영 매체가 시위 관련 보도를 한 줄도 내보내지 않고 있는 현실에 비춰보면 시진핑 총서기가 시위의 발생을 인정했음은 지극히 이례적이다.
아울러 그는 오미크론 변이의 치사율이 낮아졌다면서 3년간 철통처럼 유지해 온 제로-코비드 정책이 막바지에 달했음을 암시했다. 청년층 항의에 짐짓 놀라 오미크론 변이를 언급하며 급하게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장면이었다.
한편 그는 12월 6일 인민대회당에서 거행된 장쩌민 전 총서기 추도대회에서는 200자 원고지 33매 분량의 추도문을 낭독했는데, 1989년 “동란(動亂)”을 직접 언급했다.
“1989년 봄, 여름 사이 우리나라에 엄중한 정치 풍파가 발생했을 때, 장쩌민 동지는 동란에 반대하는 당 중앙의 선명한 기치를 옹호하고 집행했으며, 사회주의 국가 정권을 보위하고 인민의 근본 이익을 지키는 올바른 정책을 수호하며 견결하게 다수의 당원, 간부, 군중에 의지하여 강력하게 상하이 안정을 유지했다.”
지금껏 중공 정부는 1989년 톈안먼에 대해선 함구해 왔다. 시진핑은 이례적으로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운동을 화두로 올리고선, “사회주의 국가 정권”에 도전하고 “인민의 근본 이익”에 저해가 되는 “정치 풍파”와 “동란”으로 규정했다. 작금의 상황에서 이 대목은 시위를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진압 의지의 표명으로 읽힐 수 있다. 성난 민심에 놀라 엉터리 방역 정책을 포기하면서 그는 인민이 못 넘을 철조망을 치는 듯하다. 큰 위기에 봉착해 큰 거 하나를 양보하고 배수진을 친 형국인데 실은 더 큰 위기가 눈앞에 스멀거리고 있다.
백지 혁명 이후, 위기 직면한 중국공산당
지난 11월 말 중국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백지 혁명”이 발생했을 때 중국 밖의 중국 관찰자들 사이에선 비관과 낙관이 팽팽히 맞섰다. 비관론자들은 중공 정부의 감시체계와 탄압 수단을 강조하며 “백지 혁명”이 곧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낙관론자들은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운동 이후 33년 만에 일어난 대규모 시위가 시진핑 정권을 궁지로 몰아넣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아직은 누구도 뭐라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톈안먼 대학살 이후 33년간 진상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중국의 현실을 보면 절망적이지만, “공산당 해산”과 “시진핑 하야”를 부르짖는 시위 군중의 담대함은 새로운 희망을 준다. 때로는 역사의 중대사가 깊은 밤 무서리처럼 몰래 찾아와 불쑥 급변의 물꼬를 트기도 한다.
11월 말 중국 17개 도시에서 최소 23회 이상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후, 중공 정부는 주동자를 색출해서 구속하고 집회 장소를 봉쇄하며 시위의 확산을 막고 있다. 일단 시위의 불길은 잦아들었지만, 그 불씨가 완전히 꺼졌다고 볼 수는 없다. 12월 들어서도 중국 곳곳에선 시위가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례로 12월 5일 난징 공업대학 학생들은 광장에 운집해서 학교 당국의 캠퍼스 봉쇄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어떤 이는 강력한 정치 탄압으로 시위가 완전히 진압됐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시위가 일단 멈춘 이유는 놀란 중공 정부가 덜컥 내민 방역 완화라는 큰 양보(concession) 덕분이었다. 본래 독재 정권은 아래로부터 성난 군중의 저항에 부딪힐 때면 신속한 국면 전환을 위해 기대 이상의 유화책을 펼치게 마련이다. 12월 7일 급작스러운 방역 완화는 “백지 혁명”과 무관하다 할 수 없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듯, 전체주의 정권도 성난 인민의 함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시위 군중은 “공산당 해산”과 “시진핑 하야”를 부르짖었고, 중공 정부는 부랴부랴 180도 정책 전환으로 인민의 노기를 달래야만 했다.
문제는 방역 기준이 완화된 바로 지금부터다. 지난 12월 6일 칭화(淸華)대학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중국 질병 예방·통제 센터의 전 부주임으로 이번 방역을 직접 담당해온 전문가 펑즈젠(馮子健)은 수학적 모델로 분석한 결과 “앞으로 정책을 어떻게 조정하든 중국 전 인구의 80, 90%가 결국 1차 감염을 피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오미크론 변이의 치사율이 낮아졌다지만, 백신의 효능이 떨어지고 의료 시설이 열악한 중국에서 과연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쉽게 예상할 수 없다. 지난 11월 말 영국의 건강 정보 분석 회사 에어피니티(Airfinity)는 중국이 제로-코비드를 파기하면 향후 3개월간에 걸쳐서 1억 6천 7백만에서 2억 7천 9백만 명이 감염되고, 예상 사망자 수가 130만 명에서 210만 명에 달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펑즈젠의 예측대로 중국 인구의 80, 90%가 감염된다면, 중국공산당은 과연 어떻게 대처할까? 에어피니티의 예측대로 앞으로 3개월간 많게는 3억 가까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200만 이상이 목숨을 잃게 된다면, 중국 인민은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일단 방역을 완화하면 바이러스의 전파가 가속화되므로 전국을 봉쇄하지 않는 한 제로-코비드 정책은 효과가 있을 수 없다. 제로-코비드 정책이 폐기된 중국은 이제야 전 세계가 이미 다 겪은 그 힘든 과정을 다시 거쳐 가야 한다.
앞으로 3개월 감염자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사망자가 속출할 때 3년간 집안에 갇혀 살며 감시당해 온 중국 인민은 과연 무능한 정부를 용서할 수 있을까. 이미 “공산당 해산, 시진핑 하야”가 이 시대 중국 공민의 구호가 된 상황이다. 시진핑 정권 제3기가 막 시작되었는데, 중국공산당은 창당 이래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