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사람들은 한국인이 잘 모르는 게 두 가지 있다고 한다. ‘하나는 한국이 얼마나 잘사는지 모르고, 다른 하나는 자기들이 얼마나 위태로운 곳에서 사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의 새 길을 찾다’라는 책 출판기념회에서 전 외교부 장관이 한 말이다. 그러고 닷새 후 북한 무인기가 우리 하늘을 휘젓고 돌아갔다.
‘한국의 새 길을 찾다’는 80대 중반에서 90대 초반 나이의 각계 원로 15명에게 50대 질문자가 한국 현대사의 여러 고비마다 겪은 일을 묻는 형식이다. ‘내가 팔소매 걷고 일하던 그때…’식의 ‘라떼’ 이야기가 아니라 ‘그때 그렇게 하지 않고 이렇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내용이 많다. 묻고 답하고 책으로 엮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고 했다.
‘문재인 정권 5년 한국은 북한·중국·일본에 경멸당하고, 동맹국 미국에는 무시당했습니다. 미국이 주한(駐韓) 미국 대사마저 오랫동안 임명하지 않고 비워두지 않았습니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그저 굽신거리면 되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점수를 매긴 이는 문 정권의 뿌리라는 김대중 정부에서 국정원장을 지냈다. 조선이 망하자 여섯 형제가 전 재산을 처분해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운동가를 길러낸 집안의 후예(後裔)다.
다음 한 방이 더 매웠다. “문재인 정권의 또 다른 잘못은 국방 개혁을 하지 않은 일입니다. 전투력의 핵(核)은 최전선에서 사병을 이끌고 싸우는 하사·중사 등 부사관(副士官)입니다. 이 사람들이 강해져야 군대가 강해집니다. 아무리 비싼 전투기나 첨단 무기를 들여와도 기술 부사관들이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정비할 줄 모르면 쇳덩이일 뿐입니다. 부사관들이 낮은 보수와 장래 불안 때문에 군대를 떠나고 있습니다.”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에 대응 출격한 공군 KA-1 경공격기가 추락했다. 지난달 공군 주력 전투기 KF-16 전투기가 떨어졌다. 두 달에 한 대꼴로 추락했다. 도발에 맞시위로 발사한 미사일 11발 중 6발이 아예 발사되지 않거나 거꾸로 날아갔다. 전투기·미사일의 성능 결함, 훈련 부족, 무기 장착(裝着) 실수 때문으로 추정된다. 전투기 정비나 무기 장착은 기술 부사관이 맡는다.
국군 병력 50만명은 간부 20만명 사병 30만명으로 구성된다. 간부의 압도적 다수는 초급 장교이고, 초급 장교의 68%는 학군사관후보생(ROTC)으로 채운다. 국내 1호 학군단인 서울대 ROTC 1기생(63년)이 528명이었는데 2022년엔 단 9명이 됐다. 전력(戰力) 충실화 관점에서 초급 장교와 부사관 문제는 병사 봉급 200만원 인상과는 비중(比重)과 차원이 다르다.
1971년 군에 갔던 기자는 36개월 동안 M1 소총밖에 쏴본 게 없다. 지금 사병 복무 기간은 18개월이다. ‘기저귀 찬 병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마주 보고 선 북한군 사병 복무 기간은 남자 13년 여자 9년이다가 최근 남자 7~8년 여자 5년으로 줄었다. 군대 갈 젊은이(20세 기준) 숫자는 2021년 29만명, 2035년 23만명, 2040년 13만명으로 급감(急減)한다. 병사 복무 기간 문제에서 갈수록 ‘자식 사랑’과 ‘나라 사랑’이 함께 가기 힘들어지고 있다.
군사 혁신의 핵심은 적의 가장 위협적 전력을 무력화(無力化)하는 것이다. 혁신의 최대 동력(動力)이 절박함이다. 혁신이 때로 경제가 넉넉한 국가·무기·장비가 우세한 군대보다 무기는 낡고 경제는 뒤떨어진 국가에서 먼저 시작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1930년대 말 독일이 탱크 중심 기동전(機動戰)과 잠수함 전력화(戰力化)에 먼저 눈뜬 것은 독일 육군이 사단 수(數)에선 프랑스 육군에 크게 뒤지고, 해군력에선 영국 해군의 상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 혁신의 긴급 병기(兵器)는 절박성(切迫性)에 대한 인식이다.
북한 GDP는 한국의 58분의 1, 무역액은 1776분의 1이다. 고물(古物) 재래식 무기 현대화는 불가능하다. 남은 길은 핵폭탄을 업고 이번처럼 무인기를 내려보내거나 비슷한 방식으로 한국을 휘젓는 것이다. 결국 도발의 원점(原點)은 핵무기다. 국방 개혁의 최종 목표는 핵무기 무력화일 수밖에 없다. 전쟁에서 승리할 전력을 가진 군대만이 전쟁을 막을 수 있다. 우리는 ‘잘 살지만 위험한 나라’를 ‘안전한 곳에서 잘사는 나라’로 바꿀 능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