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무인기 도발을 보면서 북한에 바이락타르 같은 청년이 아직 없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셀추크 바이락타르는 올해 44세의 튀르키예(옛 터키) 엔지니어다. 셀추크는 튀르키예 민족의 이름이자 옛 국명이고, 바이락타르는 ‘기수’라는 뜻이라고 한다. ‘민족의 기수’라는 이름인 셈이다. 그의 아버지는 항공 분야 정밀 기계 가공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기술은 있었지만 하도급을 하는 정도의 규모였다고 한다.
바이락타르는 이스탄불 공대에서 전자 통신 공학을 전공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과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무인 항공기 분야를 공부하고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고국에 돌아와선 아버지에게 업종 자체를 무인 항공기로 바꾸자고 설득했다. 아버지는 세상이 무인 항공기 시대로 바뀌고 있다는 아들의 말을 받아들였다. 온 세계를 놀라게 한 바이락타르 무인기 신화의 시동이 걸린 것이다. 바이락타르가 서른 살이 되기 전이다.
당초 튀르키예군은 무인 정찰기와 공격기의 성능을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처음으로 ‘프레데터’라는 무인 공격기를 사용하는 정도였으니 튀르키예군이 바이락타르의 말과 기술력을 믿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쿠르드족 탄압을 이유로 미국이 튀르키예에 대한 무기 금수 조치를 취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급해진 튀르키예군은 2014년 바이락타르의 무인기를 채택하고 대량 배치하기 시작했다. 2년 뒤 그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딸과 결혼하기도 했다.
바이락타르라는 이름은 캅카스 지역 작은 나라들이 벌인 전쟁을 통해 뜻하지 않게 전 세계에 알려졌다. 2020년 아르메니아군은 숙적 아제르바이잔의 공격을 예상하고 분쟁지 곳곳에 방어 거점을 만들어 나름 철저히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제르바이잔 바이락타르 TB2 무인 공격기가 한꺼번에 날아들면서 허망하게 무너졌다. 아르메니아는 2차원 전쟁을 준비했는데 3차원 공격을 받은 것이다. 무인기로 승패가 완전히 갈리자 군사 전문가들은 이 작은 전쟁을 세계 전사를 바꾼 전쟁으로 평가한다. 그 주역이 바이락타르였다.
바이락타르보다 뛰어난 엔지니어는 많다. 그가 남들과 다른 것은 바뀌는 세상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비전과 그 비전을 실천할 열정과 창의성이다. 바이락타르 무인기의 핵심 부품 상당수는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엔진, 정찰 카메라, 통신 장치 등은 외국제다. 하지만 이런 부품들을 절묘하게 조합해 값싸고 실용적인 무인기를 만들어냈다. 아무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 무인기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 탱크, 포, 장갑차, 레이더들을 족집게처럼 파괴했다. 심지어 러시아군 헬리콥터까지 격추했다. 러시아 흑해함대 기함인 모스크바함 격침 작전에서도 공을 세웠다. 우크라이나 가수는 ‘바이락타르’라는 노래를 작곡했고, 많은 국민이 애완견 이름을 바이락타르라고 지었다. 유럽인들은 모금 운동을 벌여 바이락타르 무인기를 우크라이나에 기증했다. 아제르바이잔, 우크라이나는 바이락타르에게 국가 훈장을 수여했다. 훈장 아니라 더한 것도 주고 싶을 것이다.
바이락타르는 돈 이상의 것을 추구하고 있다. 튀르키예 안보에 누구보다 헌신한다. 튀르키예는 F-35 스텔스 전투기를 운용할 소형 항공모함을 구입했는데 미국이 F-35 판매를 거부했다. 그러자 바이락타르는 이 항모에 탑재할 무인 공격기 버전을 만들었다. 이 경항모는 세계 최초의 무인기 전용 항모가 될 것이다.
여기까지는 모두 프로펠러 무인기였다. 바이락타르가 무인 제트전투기를 개발한다고 했을 때 필자는 허풍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정도의 기술까지는 없다고 보았다. 그런데 최근 첫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바이락타르는 이 무인 제트전투기를 항모에 탑재하겠다고 했다. 이제는 이 말도 믿지 않을 수가 없다. 튀르키예가 드론(무인기) 강국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의 모험 정신과 두려워 않는 용기, 과감한 실천력 앞에 놀랍다는 말밖엔 나오지 않는다. 바이락타르는 제트 무인기 시험 비행에 성공하고 “국가적 드론 모험에서 20년의 꿈이 오늘 실현됐다”고 말했다. 사실상 한 엔지니어의 모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이제 청소년 과학 교육과 상업용 드론, 우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 반도체학과 합격생 69%가 등록을 포기하고 의대로 간다는 뉴스가 있었다. 의료는 중요한 분야이지만 나라를 지키고 국운을 개척하는 일도 누군가는 해야 한다. 1997년 외환 위기 사태 이후 자격증을 숭배하는 한국식 인력 왜곡은 정도가 너무 심해져 거의 병적으로 되고 있다. 바이락타르보다 뛰어난 인재가 많아도 다 병원과 약국에 있다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나. 학교와 기업, 사회, 정부 모두 생각해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