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증시의 상승과 중국 증시의 하락은 세계 경제의 미래를 예시하는가?” 작년 12월 23일 일본 닛케이닷컴은 한 해 아시아 증시를 정리하는 기사에 이런 제목을 달았다.
인도 증시의 센섹스(SENSEX) 지수는 작년 한 해 강(强)달러 속에서도 5.9%가 올라 아시아 증시 중 가장 큰 증가 폭을 기록했다. 반면,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같은 기간 15.6% 떨어졌다. 닛케이닷컴은 “과도한 방역과 미중 관계 악화로 중국과 홍콩 등 중화권 전체 증시가 약세를 면치 못했다”면서 “인도 증시의 상승과 중화권 지수의 하락은 미래 세계 경제와 돈의 흐름을 예고하는 것일 수 있다”고 썼다.
“2030년 세계 3위 경제 대국”
글로벌 투자기관을 중심으로 ‘인도 대망론’이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정보기관인 S&P글로벌은 작년 11월 보고서에서 “2021년부터 2030년까지 10년간 인도 경제는 연평균 6.3%씩 성장해 일본과 독일을 제치고 세계 3위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체탄 아히야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에서 “지난 20년은 중국이 이야깃거리였지만 다음 10년은 인도가 두드러질 것”이라며 “세계 성장의 20%를 인도가 감당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인도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최대 수혜국으로 꼽힌다. 상하이, 선전 등 중국 주요 제조업 도시의 봉쇄로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자 그 대안으로 인도가 급부상한 것이다. 작년 3월 말로 끝난 2021~2022 회계연도 인도의 해외직접투자(FDI)는 213억4000만달러로 1년 전(120억9000만달러)에 비해 76% 급증했다.
제조업 인도 이전은 미국 빅테크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애플 아이폰을 생산하는 대만 폭스콘과 위스트론, 페가트론 등 위탁생산 업체들은 작년 인도 현지 공장 생산량을 대폭 늘렸다. 1.5%였던 인도 생산 비율이 5%까지 늘었고 2025년까지는 25%까지 증가할 것으로 JP모건은 예상했다. 구글도 중국에서 생산해오던 픽셀폰을 인도에서 생산하기 위해 위탁생산 업체를 구하고 있고, 아마존도 파이어 TV 플레이어를 인도 첸나이에서 만든다. PC 제조 업체 델도 2025년까지 중국 내 생산량의 50%를 해외로 이전한다는 방침을 위탁생산 업체들에 통보했다.
“일본, 한국·대만, 중국 다음은 인도”
인도는 미중 간 반도체 경쟁을 이용해 반도체 분야에도 발을 들여놓고 있다.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정부가 최대 투자자금의 50%까지 지원하는 방안을 내놓고 해외 업체 유치에 공을 들인다. 대만 폭스콘은 작년 9월 인도 베단타그룹과 공동으로 195억달러를 투자해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고향인 구자라트에 반도체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타타그룹 지주사인 타타선스의 나타라잔 찬드라세카란 회장도 작년 12월 닛케이 인터뷰에서 “5년간 반도체 분야에 900억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도가 반도체 분야 진출을 서두르는 것은 중국과 독립된 자체 공급망 구축을 위한 것이다. 자동차, 전자 분야의 각종 제품에 필요한 반도체를 스스로 조달하겠다는 전략이다.
중국 내에서는 ‘세계의 공장’을 인도에 뺏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차 대전 이후 아시아의 제조업 중심은 20~30년 간격을 두고 일본, 한국 등 아시아 네 마리 용, 중국 순으로 옮겨갔는데 이제는 인도 차례가 됐다는 것이다. 쉬치위안(徐奇淵)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 부소장은 “단기적으로는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가 중국 공급망에 가하는 압박이 크지만 인구나 경제 규모로 보면 인도가 더 큰 도전 과제”라고 했다.
중위연령 28세... ’인구 보너스’ 본격화
인도의 강점은 중국을 대신할 만한 거대한 인구와 시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 거의 차이가 없는 14억 인구를 보유하고, 중국과 달리 인구가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다. 중위연령(전체 인구를 연령 순으로 나열할 때 가운데 있는 사람의 연령)은 28.4세로 중국보다 10살이나 젊다. 영어 구사 능력이 있는 인구가 1억명에 이르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고도성장이 지속되면서 중산층 규모도 빠르게 성장해 자체 소비시장도 커지고 있다. S&P글로벌은 “2020년대 10년간 인도의 가구당 실질소득 증가율은 연평균 5.3%에 이를 것”이라며 “G20(주요 20국) 중 가장 큰 소비국이 될 수 있다”고 했다.
4개국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의 일원으로 미국과 관계가 긴밀하다는 점도 든든한 배경이다. 작년 3월로 끝난 2021~2022 회계연도 미국과 인도의 무역 총액은 1194억2000만달러로 중·인 무역총액(1154억2000만달러)을 넘어섰다. 리웨이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외자 기업이 해외로 옮겨가는 가장 큰 동력은 미중 경쟁”이라며 “인도는 차기 ‘세계의 공장’으로서 자질을 갖고 있고 아마도 중국의 도전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규제·인프라 개선이 과제
복잡한 행정 규제와 느린 의사 결정 속도, 낙후된 기반시설, 경직된 노동 법규 등 열악한 비즈니스 환경이 인도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실제로 GM 등 많은 외국 기업이 지난 5년 사이 이런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철수했다. 인도 정부는 2021년 16개 정부 부처의 인프라 개발 계획과 인허가 절차를 통합한 가티 샤크티(Gati Shakti·국가인프라개발계획) 플랫폼을 구축해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지금보다 더 의사 결정 속도가 빨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베트남·인도네시아도 ‘세계의 공장’ 후보군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세계 각국 기업들은 중국을 대신할 ‘세계의 공장’ 후보국을 찾고 있다.
인도를 제외하고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는 국가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이다. 말레이시아, 태국 등도 후보군에 든다.
중국이 가장 경계하는 대상은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기반시설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는 데다, 근로자들의 능력과 규율 등도 다른 경쟁국에 비해 우월해 글로벌 기업들이 대거 몰린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안정돼 있다.
베트남은 작년 수출액이 3600억달러 규모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상하이, 선전 등 중국 주요 도시들이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봉쇄되면서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바람에 반사이익을 톡톡히 봤다.
하지만 베트남이 주요 제조업 국가가 될 순 있어도, 중국을 대신할 ‘세계의 공장’이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국 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베트남 인구는 9800만명 정도로 제조업 종사 인력은 최대 1500만명 정도로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왕밍위안 베이징개혁발전연구회 연구원은 봉황망 기고문에서 “베트남이 적지 않은 인구를 갖고 있지만 제조업 인력이 2억명을 넘는 중국을 대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인도네시아는 인구가 2억7550만명에 이르는 동남아의 인구 대국이다. 지난 수년간 제조업이 크게 성장하면서 2021년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1조1860억달러를 기록했다. 중국은 인도네시아가 앞으로 세계 10대 경제국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말레이시아는 인구가 3300만명 수준으로 적고, 태국은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 높다는 것이 단점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