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명실상부(名實相符)한 대통령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국민의힘이 내년(2024년) 총선거에서 다수당이 되는 것을 전제로 2년 남짓이다. 정확히는 2024년 4월부터 2026년 중반까지다. 그의 임기는 2027년 5월이지만 앞에서 소수 대통령으로 2년, 그리고 뒤에서 레임덕으로 1년을 빼면 남는 것이 2년이다. 그것도 국민의힘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말이다. 그때까지 윤 대통령은 ‘임시 대통령’ 처지고 선거에서 지면 그나마도 ‘식물 대통령’으로 끝난다. 그에게 있어, 국민의힘에 있어, 무엇보다 보수·우파 국민에게 있어 내년 총선거는 그렇게 결정적인 정치적 갈림길이다.
과거 대통령이나 대권 주자들은 기존의 정치 조직에 올라타기보다 ‘자기 사람’을 심고 ‘자기 당(黨)’을 만들어 선거에서 이겼다. 김영삼은 신한국당을 창당해 15대 총선에서 승리했고, 김대중은 새천년민주당을 만들어 16대 총선을 치렀다. 노무현은 열린우리당을, 박근혜는 새누리당을 창당해서 총선에서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처럼 역대 대통령들은 자기 주도로 정당을 만들거나 확대 개편해서 총선을 치르고 또 이겼다.
윤 대통령도 충분히 그런 유혹에 빠질 수 있다. 더구나 그는 기성 정계에 회의를 가진 정치 신인(新人)이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고 싶을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윤석열표(標) 정치 집단을 만들어 정계에 나름대로의 새바람을 집어넣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유념할 것이 있다. 전임 대통령들은 기성 정치인이었다. 기성 정치인들과 끈끈한 인연으로 상하(上下) 관계를 맺고 또 술수에도 능한 정치 기술자들이었다. 윤 대통령은 아니다. 그런 경험과 인맥이 없는 정치 외인(外人)이다. 아무리 개혁 마인드가 높다고 해도 그 열망과 현장에서의 실효성은 별개의 문제다. 그리고 그가 주도하는 윤석열표 정치 집단은 자칫 ‘검찰 공화국’ 또는 ‘법대(法大) 동창회’로 흐를 우려마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길은 섣불리 공천 파란을 일으키기보다 공천을 당에 맡기는 것이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 친윤(親尹) 공천이 곧 당선으로 이어지면 그것처럼 바람직한 일이 없을 것이다. 보수 지지층도 그것을 바란다. 하지만 지역 현장에서 국민의 목소리에 근접하지 않고 대통령과의 친분과 선택만을 믿고 의존하는 경우, 표에서 승리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런 선택은 자칫 여권의 이탈과 무소속 출마, 이에 따른 표 분산, 그리고 패배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박근혜 정권 때 공천 파동으로 여권 후보가 난립하고 결국 총선 패배로 이어지는 상황을 목도했었다. 이것은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현실의 문제다. 정치의 개혁도 중요하지만 대통령이 중간 선거에서 지고 소수 대통령으로 전락해 정부 기능 자체가 정지되고 나랏일이 함몰되는 문제만큼 중요하지 않다. 거기다가 민주당이 ‘이재명’을 딛고 넘어 국민 앞에 새로운 좌파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선거에 임할 때 국민의힘의 ‘공천 파동’은 그것처럼 좋은 먹잇감이 없다.
윤 대통령은 당대표 선출에서도 당의 총의에 맡기는 쪽으로 가야 한다. 사람들은 그가 이준석 전 대표의 문제로 얼마나 ‘학질’을 뗐는지 안다. 그래서 최소한 ‘대통령과 같이 가는’ 당대표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긍정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대표 선출 그 과정에서 윤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보인 혼선과 잡음과 과잉 대응이 대통령답지 않다는 느낌도 받았다. 문제는 국민의 입장에서 ‘같이 가는 당대표’가 중요한가, 당의 민주성·대표성이 더 중요한가의 판단이다.
국민들은 윤 대통령이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을 내세우고, 나라의 장래 먹거리 투자에 안목을 집중하며 안보·대공·대북에 열정을 보일 때 박수를 보냈다. 그가 과거에 잘못 처리된 것, 거짓으로 만들어진 것들을 바로잡고 법과 원칙에 따라 나라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겠다고 할 때 그에게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그가 국내 정치적 행보에서 삐걱거릴 때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그의 안목과 열정이 국내 정치, 주변 인사 문제에 이르러서는 빛을 잃고 있다. 대통령실 주변에서 ‘대통령의 뜻’이라거나 대통령의 ‘의중’이라거나 하는 말들이 나오고 여기저기서 자만감이 돋보이는 현상이 삐져나오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당대표 선출 과정의 잡음, 그리고 공천을 앞두고 공천 파동, 후보 난립 같은 귀에 익은 정치 언어들이 되살아나면 한국의 정치는 과거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윤석열의 역사적 당위성은 좌파 늪에 빠진 한국 정치에서 ‘구원투수’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