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68회>
‘백지 시위’ 이어 ‘백발 시위’...우한 다롄 등에서 노인들의 격렬한 항의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1970년대 날마다 휴전선 이남 전역에 울려 퍼지던 바로 그 노래를 떠올리게 하는 중대한 사건이 최근 중국에서 터졌다. 최근 중국의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 등지에서 정부의 의료보험 정책에 반대하는 격렬한 “백발 항의”가 일어났다. 3년간 지속된 제로-코비드 정책으로 중국 지방정부의 재정이 어려워지면서 부득이 의료 지원금을 삭감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시위는 실로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불붙었다. 우한 정부가 2월 1일 새로운 의료정책을 발표하자 2월 8일 격분한 수천 명 노인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와 첫 시위를 벌였고, 2월 15일 아침 다시 한커우(漢口)의 중산(中山) 광장에 집결해서 대규모 항의 집회를 개최했다. 같은 날, 거의 육로로 거의 2천 킬로미터 떨어진 다롄에서도 수천 명이 인민 광장에 모여서 같은 이유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다롄의 경찰은 노인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발길질했다. 몇 명은 현장에서 구속되기도 했다.
집회·시위의 자유가 극히 제한된 중국에서는 젊은이도 쉽게 시위에 나설 수가 없다. 과연 상황이 어떻길래 은퇴한 백발노인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는가. 진정 중국은 현재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황인가. 반드시 그렇게 볼 수는 없다. 막강한 중국공산당 권력에 비하면 백발노인들의 저항은 아직은 미약하기 때문이다.
경찰은 현장에서 즉각적인 무력 진압의 방법을 쓰진 않았지만, 사후 조사로 우한의 시위 주동자 다섯 명이 이미 구속된 상태다. 시위에 참여했던 노인들은 좁혀 오는 수사망에 떨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시위가 갖는 역사적 의의를 애써 축소할 이유도 없다.
지난해 11월 말 중국 전역 최소 20개 도시에서 A4 종이를 손에 쥐고 “공산당 해산, 시진핑 하야”를 부르짖었던 청년들의 “백지 항의”가 올해 2월 우한과 다롄에선 은퇴자들의 “백발 항의”로 면면히 이어졌음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나 중국 같은 일당독재의 전체주의 국가에서 노인들이 자발적으로 시위를 일으키는 사례는 극히 드물기에 더욱 세계인의 이목이 쏠린다. “백발 항의”를 주도한 우한과 다롄의 노인들,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백발 운동’의 주역은 57년 전 문화대혁명 주도한 10대 홍위병 세대
바로 57년 전 그들은 마오쩌둥의 부름을 받아 문화대혁명을 주도했던 10대의 “홍위병”들이었다. 1966년 여름 8개월간 수도를 떠나 남방에서 원격조정으로 문혁의 불씨를 일으킨 마오쩌둥은 베이징에 돌아오기 무섭게 대학 및 중·고교에서 막 들고일어난 젊은이들을 향해 “조반유리(造反有理)”를 외쳤다. “반란을 일으킴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그 한마디 말로 인격신 마오쩌둥은 청소년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마오쩌둥의 인정을 받은 홍위병들은 당·정·관·학(黨·政·官·學) 곳곳에 숨어 있는 주자파(走資派)를 색출해 축출하자며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 그들은 야만적인 마녀사냥과 집단 린치의 방법으로 전 중국 사회를 갈가리 찢고 부수고, 계급 적인(敵人)을 색출해서 할퀴고 짓밟았다. 그 당시 홍위병 운동은 단순히 정치운동을 서로 죽고 죽이는 대규모 학살극으로 번졌다. 특히 후베이성 우한이 대표적이었다.
“1967년 5월과 6월, 후베이성 우한에서는 군중이 조반파(造反派, 급진파)와 보황파(保皇派, 보수파)로 나뉘어서 대규모 무장투쟁에 돌입했다.” (송재윤, <<슬픈 중국: 문화대반란 1964-1976>>, 까치 2022, p. 217). 그 참혹한 내전에서 10대의 불량배들이 돈을 받고 용병처럼 무차별 학살을 자행했다는 기록도 있다(같은 책, 229-230). 좌·우파 무장투쟁의 악순환으로 우한에서만 6만6000여 명이 중·경상을 입고, 600여 명이 학살되었다. 후베이성 전역에선 18만4000여 명이 상해를 입거나 죽임을 당했다(같은 책, 236-237).
청춘은 덧없이 흘러가도 젊은 날의 꿈과 이상은 노인의 가슴에 암초처럼 박혀 있다. 젊은 시절 인간은 경험이 얕고 안목이 좁아서 섣불리 움직이다 실수를 거듭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과거의 시행착오를 돌아보면서 지혜와 통찰을 얻는다. 1980년대 중국 문단에 범람했던 상흔 문학의 기록은 혁명의 광열과 변혁의 미망에 사로잡혀 숱한 정치범죄를 저지르고 시행착오를 거듭했던 홍위병 세대의 고해성사다. 바로 그 홍위병 세대가 50여 년 세월을 지나 백발 부대로 되돌아왔다.
백발노인들이 부른 혁명가 ”일어나라, 굶주림과 추위에 압박당한 노예들아!”
지난 2월 15일 한커우의 중산 광장에 집결한 노인들은 한목소리로 “국제가(國際歌, L’Internationale)”를 불렀다. 20세기 전 세계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혁명 송가(頌歌)다. 1871년 5월 말 파리코뮌 최후의 전투가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피의 한 주”로 막을 내린 후, 철도 노동자 출신 무정부주의자 외젠 포티에(Eugène Pottier, 1816–1887)가 쓴 시에 목수 출신 드게테르((Pierre De Geyter, 1848–1932)가 곡을 붙였다. 우한의 노인들이 목청껏 부른 중국어 가사 첫머리는 다음과 같다.
“일어나라, 굶주림과 추위에 압박당한 노예들아!
일어나라, 전 세계의 고통받는 사람아!
가슴 가득 뜨거운 피가 벌써 끓어올라
진리를 위해 싸우려 하네!
낡은 세계는 꽃처럼 떨어져 물처럼 흘러가니
노예들아, 일어나라, 일어나라!”
중산 광장의 노인들은 또 1943년 산시(陝西)성 산촌에서 만들어져 혁명 가곡으로 널리 애창됐던 “단결은 힘이다(團結就是力量)”를 함께 불렀다.
“단결이 힘이네. 단결이 힘이네.
그 힘은 쇠라네, 그 힘은 철이라네.
쇠보다 굳고, 철보다 세다네.
파시스트를 불태우고, 반민주 제도를 모두 없애네.
태양을 향해 자유를 향해
새로운 중국을 향해,
커다란 빛발을 쏘네!”
10대의 홍위병 시절 날마다 불러서 지금도 노인들의 혀끝에 달라붙어 있는 그 노랫말 속엔 1940년대 중국 민중의 자유와 민주를 향한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노인들은 어려서 배운 그대로 “파시스트를 불태우고, 반민주 제도를 모두 없애는” 인민의 단결력을 믿고 시진핑 정권에 맞서는 용감한 투쟁을 연출했다.
무덤 속 마오쩌둥이 되살아나 노인들의 “백발 항의”를 본다면 과연 뭐라고 할까. 되살아난 마오쩌둥이 여전히 스스로 천명한 “마오쩌둥 사상”을 그대로 굳게 믿는다면, 다시 “조반유리!”를 외칠 수밖에 없다. “격분한 노인들이 들고일어났으니 다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그 정당한 이유란 무엇인가?
톈진서 117층 건물 올리고 8년째 건설 중단...빚더미의 지방정부
2월 27일 영국 시사지 <<이코노미스트>>는 공기(工期)를 훌쩍 지나 수년째 짓다 만 채로 멈춰 서 있는 톈진시의 “중국 117 타워” 건물의 뒷배경을 심층 보도했다. 2008년 공사가 시작되어 2015년 597미터까지 건물을 올렸지만, 2023년 3월까지도 이 건물은 완공되지 않은 채 텅 비어 있다. 중국의 여러 지방정부는 거액의 빚을 내서 일단 도로를 깔고 건물을 올리는 방식으로 경제성장을 추진해 왔다. 법망을 피해 거액의 급전을 융통하는 편법으로 중국의 지방정부 관원들은 흔히 “지방정부 융자 평대(平臺, 플랫폼)”라는 금융회사를 설립해왔는데, 그 미상환 채권이 무려 13조 6천억 위안(미화 2조 달러)으로 중국 전체 채권시장의 40%에 달한다.
지난 2월 28일 미국 <<블룸버그>>의 보도에 따르면, 현재 중국의 31개 성급(省級) 정부에서 최소 17개 성 정부가 심각한 재정난에 봉착해 있다. 중국 정부 통계를 분석해 보면, 2022년 미상환 채무액이 지방정부 소득의 120%를 넘어선 상태다. 중국의 지방정부는 인프라 건설에 거액을 투자해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성장을 추진해 왔다. 그 결과 재정 지출이 수입을 웃돌면서 심각한 정부의 위기가 발생했다. 특히 톈진은 공격적인 과투자로 빚이 소득의 거의 3배에 달하고 있다. 본래 지방정부는 빌린 돈으로 다양한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거기서 환수되는 이익금으로 빌린 돈의 이자를 갚아 정부의 살림을 챙기려는 계획이었지만, 3년간 지속되었던 제로-코비드 정책으로 엎쳐진 경제에 부동산폭락과 면세 확대까지 덮쳐서 지방정부가 빚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에 경제학자들은 중앙정부가 저리로 자금을 조달해서 지방정부에 급전을 싸게 빌려주는 방법으로 채무 부담을 완화해줘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또한 중앙정부가 국가개발은행 등 국책은행을 통해서 재정 지출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중국의 경제가 갈수록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는 상황이다. 중국경제는 2000년대 이래 고성장의 세월을 지나 이제 새로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과연 “중공표 중국 주식회사”는 순항할 수 있을까?
중국 경제 성장의 양면성 “멈춰도 걱정, 더 커도 걱정”
중국이 세계 제2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이래 세계 여러 나라에선 중국에 관한 두 가지 상반된 우려와 공포가 병존하고 있다. 한 축에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국가 부채가 늘어나면서 중국발 경기 침체가 몰려온다는 불안감이 만연해 있다. 이 불안감은 세계 경제의 대(對)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현실에 근거하고 있다. 중국경제의 성장 속도가 늦춰진다면, 중국과의 무역에 의존하는 세계 대다수 나라들 역시 심각한 침체 국면에 접어들 수밖에 없다는 현실주의적 우려다.
이와 반대로 다른 한 축에선 중국경제의 성장 질주가 중국공산당의 무단 독주를 강화하여 세계 질서를 교란한다는 불안감이 깔려 있다. 특히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중국 제조 2025″와 같은 국가 주도의 산업 개발 정책으로 중국이 AI를 비롯한 최첨단 산업에서 전 세계적 지배력을 확보할 때 발생하는 국제정치와 군사 방면의 위험을 묵과할 수 없다.
중국공산당은 이미 최첨단 장비를 동원해 전국을 감시하는 “1984″의 통제 시스템을 이미 구축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중국이 만일 미국, 유럽, 일본, 한국, 대만을 능가하는 최첨단 과학기술력을 갖게 된다면, 세계 질서는 심각한 위기에 빠져들어 전면적 재편을 피할 수가 없다.
요컨대 중국의 경제성장이 둔화해도 걱정이고, 쾌속 질주해도 걱정인 셈이다. 이러한 진퇴양난의 상황은 결국 이념과 체제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지난 40여 년간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의 나라 중국과 자유, 인권, 시장경제를 축으로 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이념과 철학은 불문하고 경제적 상생 관계를 유지해 왔다. 실제로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세계 경제의 추동력이었다. 문제는 세계 2위의 규모로 팽창한 중국경제가 인류의 보편가치를 거부하고, 국제사회의 규약을 무시하고, 자국민의 인권을 예사로 침해하는 중국공산당의 통제 아래 놓여 있는 현실이다.
백발 성성한 노인들이 거리에 나와서 “노예들아, 일어나라!” 외쳤다. 마오쩌둥의 말마따나 반란을 일으킴에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