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 인구 대국 중국이 올해 인도에 그 자리를 뺏겼다. 미국을 따라잡고 세계 1위 강대국이 될 것이라 야심만만이던 중국몽에 균열이 간 건 미국의 거센 견제 때문이 아니라 중국의 급속 노화 탓이 훨씬 크다. 14억 넘는 인구에서 근소한 차로 2위가 된 게 문제가 아니라 빠르게 늙어가는 인구 구성비가 진짜 문제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초반의 중국 중위 연령이 37.9세로, 국민소득 7만달러의 미국과 엇비슷해졌다. 부양해야 할 노인 인구가 2억명인데 지난해 태어난 아기는 1949년 중국 수립 이래 처음 1000만명이 안 된다. 중국 노동자의 평균 연령은 1985년 32.3세에서 2020년 39세로 높아졌다. 반면 인도는 중위 연령이 29세밖에 안 될 정도로 젊은 나라다. 그동안 중국 경제 낙관론을 펴던 국제 정세 분석가들이 일제히 중국의 미국 추월론을 접고 노동력 풍부한 인도와 동남아로 눈 돌리는 것도 다 인구 구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진짜 쇼크는 경제성장률이나 물가 상승이 아니라 인구 문제다. 인구학자 폴 몰런드에 따르면 세계 인구가 2억5000만명에서 10억명으로 4배 늘어나는 데 1800년 걸렸다. 10억명이 80억명 되는 데는 200년밖에 안 걸렸다. 그 200년 새 ‘인구의 힘’이 강대국 판도도, 나라의 운명도 휙휙 바꿨다. 프랑스 경제의 3분의 1도 안 되고 인구도 절반이던 영국이 산업화와 인구 급증으로 19세기에 세계를 제패했다. 미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한 것도 높은 출생률과 이민 유입으로 인구가 급증한 덕에 가능했다. 한국의 고도성장도, 중국의 경제성장도 풍부한 노동력이 성장 동력이 되어준 덕분이었다.
하지만 중국보다 더 먼저, 더 강하게 인구 쇼크가 덮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얼마 전 발표된 역대 최악 출산율 0.78명에, 신생아 수 24만9000명은 놀랍다 못해 충격 그 자체인데 늘 그렇듯 언론에만 요란하게 보도되고 그걸로 끝이다.
저출산 고령화는 산업화된 나라들의 피할 수 없는 메가트렌드이지만 사람마다 노화 속도가 다르듯 국가의 노화도 마찬가지다. 2012년 인구가 5000만명을 넘고, 국민소득도 2만달러를 넘자 정부는 세계 7번째로 ‘20-50 클럽’에 들어갔다며 신조어까지 만들어 자축했다. 지금은 국민소득 3만달러 넘는 ‘30-50클럽’이라 자랑하는데 맨 나중에 들어갔다가 제일 먼저 탈락할 판이다. 인구 5000만 붕괴가 초읽기다.
작년 또는 재작년에 중국 아기는 956만명, 미국 366만명, 일본 80만명, 독일 79만명, 프랑스 72만명, 영국 69만명이 태어났다. 미국도, 유럽도 선방했다. 우리의 경우, 2012년 48만여명이던 신생아가 10년 만에 반 토막 났다. 질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고, 집값 비싸고, 살인적 사교육비에 허리가 휘니 결혼과 출산 기피증이 더 심해졌다. 더 늦기 전에 인구와 경제성장의 방정식을 함께 놓고 저출산-저성장 탈출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말만 무성한 채 시간이 흘렀다.
초저출산을 단기간에 되돌리기는 힘들다. 일 가정 양립이 가능한 가족 친화적 사회로 틀을 바꿔나가야 하지만 시급한 물꼬는 혁신적 교육 개혁, 그것도 대학 개혁에서 터나가야 한다고 본다. 뒤떨어진 공교육에, 불안한 학부모는 사교육에 매달리고, 그 불안감을 노려 어처구니없게 ‘초등생 의대 준비반’까지 등장했다. 인구 팽창기에 우후죽순 늘어난 대학 구조조정을 교육부에 맡겨놓으니 경쟁력 없는 대학을 도려내는 대신 다 같이 정원 줄이며 함께 말라죽자고 한다. 대학은 ‘반값 등록금’의 포퓰리즘에 10년 넘게 묶여 고등교육 투자는 엄두도 못 낸다. 시도 교육청 예산은 남아돌아 교육감들이 돈 펑펑 뿌리며 연임, 3연임을 누리는데, 대학교육에 대한 재정 투자는 OECD 하위권이다.
이러니 대학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대학 나와도 무용지물이며, 아이 키우는 즐거움보다 비용과 고충이 훨씬 커졌다. 교육이 수요와 공급 원리에서 심각하게 어긋나 있고 자원의 효율적 배분도 전혀 안 되니 학부모와 학생들만 과잉 경쟁에, 헛수고와 헛비용으로 골병든다. 비싼 등록금 받고 좋은 교원과 좋은 학생을 유치할 수 있는 사립대는 독자 생존하거나 합종연횡해 살아가도록 규제 풀고, 경쟁력 없는 대학은 가차 없이 문 닫고, 한정된 교육 예산은 전국 곳곳의 거점 국공립대에 아낌없이 쏟아부어 입학도, 등록금 걱정도 없이 인재로 양성해주는 대학 공교육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그러면 자녀 키울 비용도, 고민도 한결 줄어든다.
좁은 땅에 한 해 100만명 태어날 때는 치열한 내부 경쟁으로 경쟁력도 갖출 수 있다. 하지만 25만명도 안 되는 신생아는 한 명 한 명이 귀하디귀한 금쪽이다. 출혈 경쟁으로 내몰거나 불행을 방치해 자존감 낮은 아이들로 자라게 해서는 안 된다. 2022년생 24만9000명은 중국 신생아의 2.6%다. 이 땅에 태어나 학교 다니면 중국과 비교해 상위 3% 안에 드는 최상위 인재로 다 키워내겠다는 정도의 의지와 투자로 교육 역량과 체제를 혁신해야만 미래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교육·연금 개혁을 다짐했는데 교육개혁의 그림도 안 보이거니와 교육부 손에 맡겨두는 개혁은 하나 마나일 것 같다는 걱정이 또다시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