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공개된 탄소중립위원회의 ‘2030 온실가스 감축안(案)’은 문재인 정부에서 결정한 내용을 수정한 것이다. 문 정부 때와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이란 목표치는 같지만 탈원전 폐기 등을 반영해 로드맵을 손봤다. 골자는 기업 감축 부담을 800만t 덜어주고 대신 신재생 전력과 국제 감축 부문에서 각각 400만t씩 더 줄인다는 것이다.
만일 태양광 증설로 400만t 감축을 달성하자면, 40㎢(1200만평) 부지에 태양광을 꽉 채워 600MW급 석탄발전소를 대신해야 한다. 굉장한 부담이 된다. 국제 감축의 경우 개도국 온실가스를 줄여준 후 우리 감축 실적으로 가져오는 방식이다. 문 정부에선 이걸로 연 3350만t 실적을 올리겠다고 했는데, 탄소중립위는 목표를 3750만t으로 늘렸다. 현재 수도권매립지공사가 132억원 투자로 몽골 울란바토르 매립장에 메탄가스 포집·소각 설비를 설치해 매년 5만6000t씩 10년 동안 56만t 감축 실적을 가져오겠다고 계획한 시범 사업이 있다. 이런 사업이 670개 있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몽골 사업 단가(t당 2만3000원)를 적용하면 매년 8600억원이 필요하다. 파리협약 체제에선 개도국도 자기 실적을 쌓아야 하는 데다 선진국들이 개도국 사업을 놓고 경쟁을 벌이게 될 것을 감안하면 단가는 갈수록 비싸질 것이다. 그래서 기존 목표(연 3350만t)도 사실은 아득하다. 그런데 여기에 400만t을 더 얹은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기업 감축 부담을 줄여줬기 때문이다. 산업부는 “석유화학 업종에서 당초 기대했던 바이오 나프타 원료 확보가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더 결정적으론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가 70억달러(9조2000억원)를 투자해 울산 온산공단에 짓는다는 에쓰오일의 ‘샤힌(shaheen·아랍어로 ‘매’ 의미) 프로젝트’ 부담이 크다고 한다. 단일 사업으론 최대 규모 외국인 투자다. 2026년 완공 후 플라스틱 원료인 에틸렌 등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게 된다. 아람코는 에쓰오일 최대 주주(지분 63.4% 보유)다. 샤힌 프로젝트로 추가 배출되는 온실가스 양은 연 330만t이라고 한다. ‘2030 40% 감축’을 더 어렵게 만들고, 30년 이상의 설비 수명을 감안할 때 ‘2050 탄소중립’ 목표도 위협하는 프로젝트다.
외국 자본 70억달러는 단기적으론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3년여 건설 기간 동안 최대 1만7000명에게 일자리가 공급된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달 9일 기공식 참석도 경제 부양 효과를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납득되지 않는 것은, 이 프로젝트가 문 정부 시절 추진됐다는 점이다. 문 정부는 ‘2050 탄소중립’, ‘2030 40% 감축’ 목표를 내걸었다. 그렇게 탄소 중립을 선언한 정부가 무탄소 에너지인 원자력 퇴출을 고집하는 것도 어리둥절했는데, ‘탄소 폭탄’으로 비판받게 될 샤힌 프로젝트까지 추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들어 우리가 경제 라이벌로 의식하는 나라가 대만이다. 우리와 1인당 GDP가 거의 똑같고, 인구 밀도가 높고, 수출 지향형 산업 경제에다, 반도체 강국이고, 적대국의 군사 위협을 이고 사는 점도 같다.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도 차이가 없다. 그런데 대만은 2030년 온실가스 목표를 배출 정점 2017년에서 30% 감축으로 설정했다. 원래의 감축 목표는 25%였는데 작년 연말 5%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감축 목표를 배출 정점 2018년 대비 40% 감축으로 잡았다. 박근혜 정부 때의 26.3%에서 13.7%포인트나 끌어올렸다. 그러고선 임기 종료 6개월 전 유엔에 보고했다. 이 목표치는 파리협약의 ‘후퇴 금지’ 조항에 따라 더 조일 수는 있어도 늦출 수는 없다.
선진국들은 1997년 체결된 교토의정서 규제를 받아 그때부터 온실가스를 줄이는 정책을 펴왔다. 우리는 20년 늦게 출발했다. 파리협약의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는 각국이 스스로의 상황, 현실, 능력, 우선순위에 맞는 목표와 정책을 선택해 실천하는 것이 원칙이다. 알아서 목표를 정하라는데 문재인 정부는 늦게 합류했으면서도 훨씬 앞서 달려가는 선진국 그룹과 같은 수준 목표치를 채택했다. 만일 대만처럼 감축 목표를 30%로 잡았더라면, 10%포인트에 해당하는 7270만t의 배출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30% 감축도 어렵긴 하지만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었다.
국민연금 개혁은 자기 정부에 부담 된다고 퇴짜 놓은 것이 문 정부다. 그 문 정부가 후임 정부들에 부담을 안기는 온실가스 목표는 폼 나게 한 상 차려놓고 떠났다. 그 목표 달성을 더 까다롭게 만드는 샤힌 프로젝트까지 얹어 놓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