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에서 미·중 경제 디커플링(Decoupling·결별) 여론이 무성하지만, 양국 무역 관계는 여전히 긴밀하게 얽혀 있고 미국 기업과 소비자는 중국 상품을 선호한다.” 작년 미·중 무역액이 6906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미국 정부 발표가 나온 2월 7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워싱턴발로 이렇게 보도했다. 탈중국은 소수 미국 정치가들의 의견일 뿐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홈페이지도 이 보도를 게재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발표한 월 단위 무역 통계만 들여다봐도 현실은 이 보도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중국의 대미 수출이 작년 9월 이후 6개월째 급감하는 추세인 것이다. 상반기 월별 20% 전후에 이르렀던 대미 수출 증가율은 9월 들어 3.9%로 고꾸라졌고, 10월부터 올 2월까지는 5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올 2월에는 대미 수출이 27.5%나 줄었다.
중 국유 은행 연구소 “디커플링 초기 단계”
중국 연구 기관들은 이미 이런 현실을 체감하고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4대 국유 은행 중 하나인 중국은행(Bank of China) 산하 중국은행연구원은 2월 28일 자 보고서에서 “작년 하반기 세계 경기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지만, 미국은 다른 무역 상대국보다 수출 감소가 가장 먼저 시작됐고, 감소 폭도 컸다”면서 “초기 단계의 미·중 경제 디커플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를 보면 작년 하반기 대미 수출 타격이 컸던 분야는 완구(-55.1%), 가구(-38.4%), 플라스틱 제품(-28.7%), 방직(-19.6%) 등이었다.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집하면서 중국 내 공급망이 흔들리자 수출 주문이 베트남, 멕시코, 인도 등지로 넘어간 것이다. 작년 상반기에는 인도, 베트남 등지에 오미크론이 유행하면서 수출 주문이 중국 쪽으로 몰렸지만, 오미크론이 진정되자 정상적인 흐름을 되찾은 것이다. 보고서를 쓴 왕징(王靜) 연구원은 “애플, 델 등이 인도, 멕시코, 베트남 등 경쟁국으로 생산 기지를 옮기는 등 미·중 간 기술 분야 디커플링 흐름이 뚜렷한 상황”이라면서 “수출 주문이 다른 제조업 국가로 넘어가는 추세가 강화되고 중국의 대미 수출은 제약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산 비율 22%→17%
글로벌 화물 운송 기업 DHL이 3월 발표한 ‘2022 DHL 글로벌 연결 지수’ 보고서의 진단도 비슷했다. 이 보고서는 “작년 글로벌 무역과 자본, 인적 교류는 팬데믹 이전보다 높은 수준으로 회복되는 흐름을 보였지만 미·중 관계는 여러 분야에서 디커플링이 현실화됐다”고 썼다. 상품 수출과 수입, 특정 자본 흐름 등 11분야 중 8개에서 미·중 간 이동량이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전쟁을 시작하기 직전인 2017년 미국 상품 수입 중 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22%였지만 작년 1~9월은 그 수치가 17%까지 떨어졌다. DHL은 “광범위한 분야에서 미·중 간 전형적인 디커플링 패턴이 나타났다”고 했다. 다만, 그 정도는 아직 제한적이며 적대적 블록끼리 교역을 단절하는 수준에 이른 것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미국의 대중 수출도 영향을 받고 있다. 중국 수입에서 미국산 제품이 차지하는 비율 역시 2015년 9.9%에서 작년엔 7% 선까지 하락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지난 5년간 계속된 무역 전쟁으로 미국 공산품의 대중 수출 역시 크게 줄었다”면서 “대표적인 대중 수출품이었던 자동차와 항공기 등은 수출 품목에서 거의 사라졌고, 반도체와 반도체 생산 장비 등도 대중 제재로 수출이 급감했다”고 했다. 이 연구소는 “작년 미·중 무역액이 사상 최고를 기록한 것이 양국 간 디커플링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오해를 낳았다”면서 “두 나라 경제는 점점 상호 의존도가 낮아지는 추세”라고 했다.
EU 대미 수출 중국 추월
중국의 대미 수출이 줄어들고 있지만, 유럽연합(EU)의 대미 수출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작년 EU의 대미수출은 2021년보다 12.8% 증가한 5533억달러로 2019년 이후 3년 만에 중국(5368억달러)을 앞섰다. 미·중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과 EU의 밀착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인도, 베트남, 멕시코 등도 미국 수출이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
중국 내에서는 미·중의 탈중국 흐름에 가속이 붙으면서 수출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중국 수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점차 감소하는 추세이지만 작년에도 그 비율은 16.2%에 달했다. 대미 수출이 줄면 소비, 투자와 함께 3대 성장 축을 구성하는 수출이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국 동방증권은 3월 초 발간한 미·중 무역 관련 보고서에서 대미 간접 수출 전략을 제안했다. 이 증권사는 “미국의 공급망 재편이 캐나다, 멕시코 위주의 니어쇼어링(nearshoring·인접국 생산)과 우방국 중심의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생산 기지 우방국 이전) 등 두 축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라면서 “저부가가치 제품은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첨단 기술 제품은 한국과 EU 등을 거쳐 미국에 간접 수출하는 방식으로 탈중국에 따른 충격을 줄여야 한다”고 썼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알타시아가 중국의 대안”]
“미·중 경쟁으로 공급망 재편이 본격화되면 수년 내에 한국 등 아시아 14국이 중국의 대안으로 부상할 것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3월 3일 한국 등 아시아 14국으로 구성된 ‘알타시아(Altasia)’라는 신조어를 제시하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알타시아는 ‘아시아 대안 공급망(alternative Asian supply chain)’을 줄인 말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알타시아는 미·중 간 지정학적 갈등의 결과물”이라면서 “글로벌 제조업체들은 새로운 생산기지를 찾아 아시아의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알타시아에는 경제 발전 단계가 서로 다른 14국이 포함된다.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은 상대적으로 경제 발전 수준이 높은 나라이다. 인도와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은 인구 대국이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캄보디아, 라오스 등 아세안(ASEAN) 국가도 다수 포함된다. 이코노미스트는 “한 나라가 중요한 수출 허브인 중국을 대신하긴 어렵겠지만, 14국이 힘을 합치면 경쟁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알타시아 14국의 전체 노동력은 14억300만명으로 중국(9억5000만명)을 웃돈다. 고등교육을 받은 25~54세 인구 역시 15억5000만명으로 중국(14억5000만명)보다 많다. 인도, 태국, 베트남 등은 모두 시간당 임금이 3달러 이하로 임금 경쟁력도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작년 기준 중국 제조업 평균 임금은 시간당 8.31달러였다. 14국을 합친 대미 수출 규모도 중국과 비슷하다.
다만, 일부 국가들은 인프라와 물류시스템 등이 부족하고, 무역 관련 규제가 많은 점 등을 문제로 꼽았다. 이코노미스트는 “문제가 적잖지만 글로벌 제조업체는 중국을 대신할 대안 생산기지를 찾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면서 “수년 안에 알타시아에서 기회를 찾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