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점심 무렵 서울 광화문의 한 패스트푸드 식당. 입구에 들어서자 70대 어르신 한 분이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 불쑥 신용카드 한 장을 들이밀었다. “노인네가 되니 커피 한 잔도 못 시키겠네….” 무슨 소리인지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가 난처한 표정으로 가리킨 것은 역시나 키오스크 기계. 일부 어르신들에겐 마치 장벽처럼 느껴진다는 바로 그 기계다.
“뭘 드시고 싶으셨어요?” “블랙커피.” “아메리카노 말씀이죠?” 그가 내미는 신용카드를 대신 받아들고 기계에 꽂았다. 커피 메뉴를 찾으려고 하는데, 나 역시 당황하고 말았다. 생각보다 커피 메뉴가 잘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헤아려 ‘디저트’ 메뉴를 찾았고, ‘커피’ ‘아메리카노’ 버튼을 겨우 발견했다.
뒷사람이 기다린다는 생각에 황급히 주문하려는데 이번엔 어쩐지 ‘결제’가 잘 눌러지지 않았다. 뒤통수에 땀이 다 났다. 주문 후 신용카드를 어르신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저도 어려운데요.”
한동안 소셜미디어를 달군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누군가 키오스크로 주문하다 뜻대로 되지 않자 주먹을 날려 기계를 부순 사진이다. 모니터가 무참하게 박살 난 사진엔 수백 개의 댓글이 붙었다. ‘니맘 내맘!’ ‘10대인 나도 열 받는데 60대 이상은 오죽하겠어?!’
모래알처럼 많은 댓글은 결국 같은 메시지를 향하고 있었다. 저 조잡한 키오스크를 잘 다루지 못한 건 내 잘못도, 어르신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이다. 사용자 환경·경험(UI·UX)이라는 어려운 표현까지 갈 것도 없겠다. 버튼 하나 찾기 힘들게 만든 제조사에 1차 책임이 있고, 이런 문제적 기계가 보완 없이 급속히 보급될 때까지 팔짱 끼고 내버려 둔 업계와 정부에 2차·3차 책임이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대개 키오스크 앞에서 쩔쩔매는 어르신을 볼 때마다 고령층의 디지털 문해력 문제 정도로만 치부한다. 글자 다 읽을 줄 알고, 손가락 열 개 멀쩡한 나 같은 사람도 종종 쓰기 어렵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말이다.
작년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전국 외식업체 중 키오스크를 쓰는 경우는 6.1% 정도지만, 서울로 좁혀보면 사용률은 8.5%로 뛰었다. 프랜차이즈 외식업체는 15.6%, 피자·햄버거·샌드위치 업종은 21%나 됐다. 큰 가게일수록 키오스크가 있을 확률은 더 높다. 매출 5억원이 넘는 가게에 키오스크를 들여놓은 경우는 12.9%였다. 돈 많이 버는 가게일수록, 이런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하는 집단은 고객에서 점점 더 배제하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최근엔 미용실, 주유소, 빨래방까지 키오스크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누구 집 엄마가 미용실 키오스크에 디자이너 이름과 상담 시간까지 입력하라고 뜨는 통에 나와버렸다는 사연은 이미 비일비재하다. 어린이, 휠체어 탄 장애인, 시력 나쁜 이들에게도 키오스크는 종종 고문 기계나 다름없다.
치솟는 인건비, 심각한 인력난에 대한 대응책이 키오스크였다면, 이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평등한’ 개발이 시급한 때다. 은행 ATM 기계의 진화 과정도 참고했으면 한다. 돈 못 뽑겠다고 헤매는 어르신, 요즘 별로 못 봤다. 어르신과 장애인을 위해 은행 ATM 기계들이 글씨를 키우고 음성 정보를 다듬은 덕이다. 작은 기술이 때론 인간의 존엄을 되찾아줄 수 있다.
이 와중 한 프랜차이즈 업체가 고령층 고객에게 키오스크 사용 교육을 시키겠다고 보도자료를 낸 걸 보니 다시 속이 터진다. “저기요, 어르신들 디지털 공부 시킨다고 괴롭히지 말고, 그쪽 매장 기계부터 쓰기 쉽게 바꾸시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