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74회>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2년 11월 15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기간중 가진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연합뉴스

중국 외교부 전랑(戰狼)들의 입이 연일 꽤 거칠다. 윤석열 대통령이 중국을 향해 무력으로 대만해협에 군사적 긴장을 고조하지 말라고 했더니 중국 외교부 대변인 왕원빈(汪文斌)이 “불용치훼(不容置喙)”라고 했다. “참견을 허용하지 않겠다”, 곧 끼어들지 말란 뜻이다. 한국 외교부가 격하게 항의하자 이번에는 외교부장 친강(秦剛)이 나서서 “완화필자분(玩火必自焚)”이라 했다. 직역하면, “불 갖고 놀면, 필히 스스로를 태운다”는 뜻이다.

한국 언론들은 “훼(喙)”자가 새의 부리나 짐승 주둥이를 의미한다며 이례적인 인격적 모욕이라 여기고, 자분(自焚)을 “불에 타 죽는다”로 번역해서 마치 현 정부의 실책으로 한·중 사이 큰 외교적 충돌이 벌어진 듯 보도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우선 “용훼(容喙)”란 단어는 국어사전에도 나오고, 요즘도 노인들이 “참견하다”라는 의미로 곧잘 사용하는 오래된 한자어일 뿐이다. “완화필자분”도 “불장난하면 덴다”는 속담일 뿐이다. 물론 중국같이 덩치가 큰 나라의 외교적 수사로선 촌스럽고 거칠기 짝이 없지만, 본래 중국 외교 술어가 그렇게 투박하고 공격적이다. 중국 외교사의 중대한 문서들을 보면, 과격한 투쟁의 용어로 점철되어 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들은 일상적으로 그런 용어들을 남발한다. “불용치훼” “완화필자분” 등은 외국 정상이나 언론이 홍콩, 대만, 신장, 티베트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중국의 콤플렉스를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알레르기 일으키듯 즉각 내뱉는 중국 외교의 상투어일 뿐이다. 최근 몇 가지 사례를 보면, 홍콩의 자유를 언급하는 독일·영국 등에 대해서도 중국 외교부는 “불용치훼”란 말을 썼고, 시진핑은 바이든을 만나서도 대만을 언급할 땐 “완화필자분”이란 표현을 썼다.

막말 수위를 높이는 전랑 전술

이제 중국의 외교부장이 나와서 “불장난하면 덴다”고 했으니 그 위협의 수위가 제법 높아졌다. 그래도 안 통하면 부총리급 ‘외교 담당 국무위원’ 정도가 “불의를 자꾸 행하면 필시 자멸한다(多行不義 必自斃)”고 할 듯하다. 협박처럼 섬뜩하게 들리지만, 놀라거나 분노할 일은 아니다. 중국의 외교 교본에 다 나와 있는 상투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2021년 12월 29일 중국 외교부는 베이징에서 통과한 국가보안법으로 홍콩의 인권과 자유가 침해되는 점을 비판한 외국 기자단을 향해서 “불의를 자꾸 행하면 필시 자멸한다”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홍콩 외국 기자회 등은 흑백을 혼동하고 시비를 전도하여 공공연히 열악한 언론을 퍼뜨리고 사특하게 홍콩의 법치와 자유를 폄훼하고, 망령되이 홍콩 특구 경찰의 합법적 법 집행을 방해했으며, 공개적으로 중국에 반대하고 홍콩을 어지럽히는 분자들을 비호했다. 홍콩에서 발란반정(撥亂反正·혼란을 뿌리 뽑고 잘못을 수정함)의 역사 대세는 절대로 막을 수가 없다. 그 어떤 외부의 간섭과 비방도 당랑거철(螳螂拒轍·사마귀가 앞발을 들고 수레를 멈추려는 짓)일 뿐이다. 제힘을 헤아리지 못하면 실패하고 만다.”

중국 외교부장 친강, 2021년 10월 21일/CFP

외국 기자들에게 저토록 격하고 무례한 말을 내뱉는 중국 외교부의 행태를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삶은 소 대가리” 같은 막말로 대한민국 국가원수를 모독하는 북한 “뉘우스” 여자 앵커의 바로 그 극적인 표정과 말투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공산권 국가는 본래 “자산계급 타도”, “적인(敵人) 섬멸” 등 무시무시한 계급혁명의 언어로 권력을 탈취했다. 북한, 중국 모두 정부 대변인의 발표문은 늘 그렇게 작위적이고, 연극적이고, 공격적이다.

누구든 홍콩, 대만, 신장, 티베트 문제를 거론하면, 처음엔 “참견하지 마라”로 받고, 그다음엔 “불 갖고 놀면 덴다”로 치고, 그래도 안 되면 “불의를 자꾸 행하면 자멸한다”로 또 때린다. 그만큼 수위를 고조시켜도 통하지 않으면, 공산당 기관지에 “물위언지불예야(勿謂言之不豫也)”란 표현이 나올 것이다. “예고하지 않았다 말하지 말라”, 곧 무력 도발 직전에 선전포고로 사용되는 표현이다. 중국 외교 술어 중에서 가장 엄중한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

실제로 1962년 중·인 국경 충돌, 1969년 중·소 무력 충돌, 1979년 중·월 전쟁 직전에 중공 기관지들은 이 표현을 사용했었다. 그때는 “예고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고 한 후에 군사 작전을 감행했으니 실제로 선전포고의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시진핑 정권 들어선 중국 외교 전랑들과 기관지 필간자(筆桿子, 문필가)들이 하도 많이 그 표현을 써먹어서 약발이 떨어졌다. 2013년 11월엔 일본, 2017년 8월엔 인도, 2018년엔 미국, 2018년 12월엔 캐나다, 2019년엔 다시 미국을 향해 중국 언론들은 “말로 예고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 호통을 쳤다. 대만을 향해선 이미 2020년에 두 번, 2021년에 한 번 그 표현을 우려먹었다.

중국식 전랑 외교의 언어적 한계가 이미 드러났다. 과거에 실제로 선전포고성 발언으로 사용됐던 표현이 이제는 화날 때마다 내뱉는 외교적 공갈 협박이 돼버렸다. 중국 외교의 “막말 전술”이 다 들통났다는 얘기다. 바로 그 점을 직시해야 중국 외교부 전랑들의 공격을 멋지게 되치기로 받아칠 수 있는 묘수를 찾을 수 있다.

“언쟁(言爭)” 대신 “논전(論戰)”으로 대응해야

그 묘수란 바로 언쟁을 논전으로 바꾸는 전술이다. 중국의 “막말 전술”에 휘둘려 무익한 “언쟁”에 빠지지 말고, 중국 측 주장의 허점을 파고들어 막말의 근거를 허무는 논전을 펼쳐야 한다. 막말하는 외교부에는 공식적으로 엄중하게 “외교의 프로토콜을 지켜달라” 요구하면 끝이다. 대신 중국의 가장 아픈 곳, 약한 곳을 제대로 때리는 일침견혈(一針見血)의 정공법이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중국을 향해 무력으로 대만해협의 현상을 바꾸려 하지 말라고 충고하면서 국제사회와 함께 대만의 현상 유지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특히 양안(兩岸) 문제가 “단순히 중국과 대만만의 문제가 아니고 남북한 간의 문제처럼 역내를 넘어서서 전 세계적인 문제”라고 한 점이 중국 외교부의 역린을 건드렸다.

2021년 10월 10일, 대만 군대가 타이베이에서 열병식을 하고 있다./AP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한국과 북한은 주권국이며 두 나라 모두 유엔 회원국이나 대만 문제는 순전히 중국 내정이며, 중국 핵심 이익 중의 이익으로서 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국인 스스로의 일”이라면서 대통령을 향해 그 문제의 “불용치훼”란 표현을 썼다.

일단 휘발성 강한 “불용치훼”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자 중국 외교부의 허술한 논리는 뒷전에 묻히고 말았다. 한국 대통령의 지극히 상식적인 발언을 중대한 외교적 실언으로 둔갑시킨 후, 상대국을 격분시켜 언쟁으로 만들려는 판에 박힌 수법이다. 과격한 발언으로 주변국의 입을 막아 아예 대만 문제를 거론할 수 없게 하려는 의도인데, 문제는 그 논리가 터무니없이 허술하다는 점이다.

1. 대만 문제는 ‘글로벌 이슈’ 맞아

첫째, 국제사회의 그 누구도 “대만 문제도 북한 문제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이슈”라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가 없다. “산업의 쌀” 반도체 생산대국인 대만은 이미 세계 경제의 중요한 한 축이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세계 경제는 대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양안의 현상 유지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차이나”라는 큰 공룡을 달래고 어르고 눌러야만 하는 국제사회 공동의 큰 숙제다. 대만은 국제경제의 중요한 허브이며, 대만인 절대다수의 의지에 따라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자유 진영의 전초기지다. 따라서 양안 문제는 정확히 남북한 문제만큼 중대한 국제적 이슈이다. 대만이 유엔 회원국이 아니라서 남북한 문제와 다르다는 중국 외교부의 지적은 국제 현실을 무시한 1차원적 형식논리일 뿐이다.

2. 대만, 중화인민共 영토인 적 없어

둘째, 중국은 노상 “대만은 예로부터 중국 영토의 나눌 수 없는 일부였다”며 대만이 이미 중국의 부속 영토인 듯 우겨대지만, 역사적으로 대만은 “중화인민공화국”에 복속된 적이 단 한 순간도 없다. 대만은 1683년에야 청 제국에 정복되었고, 청일전쟁의 결과 1895년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일제 패망 후엔 중화민국(中華民國)의 영토가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중화민국은 대만을 포함한 전 중국 영토의 합법적 정부로서 유엔 창립회원국이자 상임이사국이었다. 다만 국공내전의 결과 대륙을 잃었기에 대만으로 그 영토가 축소됐을 뿐이다. 그런데 중국은 “대만이 예로부터 중국 영토였다”는 비역사적 주장 위에서 대만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라고 논리적 비약을 한다. 물론 중국 정부는 대만뿐 아니라 신장 지역도 고대부터 중국의 영토였다고 우겨대지만, 그 주장의 허구성은 전 세계가 알고 있다.

2016년 1월 16일 대만 민진당 당사 앞에서 대만 독립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대만은 대만이다, 중국이 아니다”란 구호를 외치며 시위하고 있다./AFP

3. ‘하나의 중국’ 정책과 원칙은 별개

셋째,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대부분 국가가 채택한 ‘하나의 중국 정책(One China Policy)’은 중국이 내세우는 ‘하나의 중국 원칙(One China Principle)’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중국이 말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르면, 대만은 중화인민공화국의 부속 영토이므로 하나의 중국에 흡수되어야 한다. 반면 ‘하나의 중국 정책’이란 양안 관계를 현상으로 유지한다는 전제 위에서 대부분 국가가 현실적으로 채택하는 실용주의 외교 노선일 뿐이다. 유엔은 ‘하나의 중국 정책’에 따라서 대만을 회원국으로 승인하지는 않지만, 대만이 중국의 한 부속 영토라고 단정하지도 않는다. 세계 대다수 국가가 그렇게 대만에 대한 전략적 애매함을 유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대만의 인구는 2400만명 정도로 호주와 거의 같고, 국민총생산은 세계 21위이며, 군사력은 세계 23위인 데다 민주적 선거로 정권을 창출하는 유엔 회원국 190여 그 어느 나라에 견줘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 독립적 정체(政體)이기 때문이다. 국제법상 대만의 지위가 독립국이 아닌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유엔 회원국이 아니라는 점밖에 없다. 그러한 대만을 침략하여 무력으로 점령하려는 시도는 현실적으로 대규모 국제전을 부를 수밖에 없다. 그런 전쟁을 막기 위해서 바이든 미 대통령은 분명하게 대만 수호를 공언했다.

앞으로도 중국의 외교 전랑들은 틈만 보이면 정해진 중국식 외교 매뉴얼에 따라서 “참견 말라”, “불에 탄다”, “자멸한다”, “이미 예고했다” 등등 막말 협박을 이어갈 것이다. 그런 막말에 당황하거나 분노하지 말고, 외교 전랑들의 허술한 주장을 팩트와 논리로 하나하나 격파하는 지성을 발휘해야 한다. 중국 외교 전랑들이 왜 습관적으로 험한 표현만 골라 쓰나? 그들 자신이 논리의 빈곤을 느끼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