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의 자서전 ‘위대한 거래’를 읽었다. 1990년대 초 고(故)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 선언을 한 당시, 그가 비서실장을 지냈기에 삼성과 관련한 재밌는 비화(祕話)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눈길을 끈 것은 박근혜 정부 때 마사회장을 지낸 탓에 적폐로 몰려 엄청난 시련을 겪은 대목이었다. 2016년 10월 최순실 사건이 그의 딸인 정유라의 승마 불법 지원으로 비화하자, 박근혜 정부의 핵심 인사이자 마사회장인 현 전 회장도 논란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그를 나락으로 몰아간 것은 가짜 뉴스였다. 그해 11월 더불어민주당의 김현권 전 의원은 국회 본회의 현안 질의에서 현 전 회장의 아내(전영해)를 ‘최순실의 핵심 3인방’으로 지목했다. 현 전 회장이 극구 부인했지만 김 전 의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라디오 인터뷰 등을 통해 가짜 뉴스를 확산시켰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 전 회장은 허위사실 유포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2018년 11월 ‘김 전 의원의 발언을 허위로 볼 수밖에 없다’며 현 전 회장에게 7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법원 판결이 나기까지 2년 동안 현 전 회장과 가족들은 만신창이가 됐다. “현 전 회장이 최순실과 수시로 통화하는 사이” “전영해는 최순실 핵심 3인방” 같은 기사가 수십, 수백 건씩 쏟아져 나오면서 그와 그의 아내는 졸지에 박근혜 정부를 망친 사람으로 심지어 주변에서까지 손가락질을 당했고 그의 아내는 공황장애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고 한다.

현 전 회장은 언론을 향해 뜨끔한 지적도 했다. 그는 “거짓으로 상대방을 욕보이고 죽이고 농락하라.(책임을 피하려면) 모든 말의 끝에 ‘의혹’ 또는 ‘수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이면 끝이다. 그러면 언론은 기사 제목에 ‘의혹’이라는 단어를 빼버리고 이를 기정 사실로 만든다”고 썼다. 검찰은 당시 11시간이나 현 전 회장을 조사하고, 그의 스마트폰을 제출받아 디지털 포렌식까지 했지만 “최순실과 일면식도 없다”는 그의 말대로 어떤 흔적도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그를 향한 고소·고발이 줄을 이었다. 그는 마사회 자체 감사 3회, 고용노동부의 특별감독, 농식품부 감사 2회, 감사원 감사 2회를 받았고 무려 10여 건의 고소·고발 사건에 대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마사회 직원 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부하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한 간부도 지병이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그 난리를 치고도 단 한 건의 혐의점도 찾지 못했다.

책 내용이 믿기지 않을 정도여서 그를 만났다. “유서를 쓰는 심정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로 책을 마무리한 것과 곤욕을 치를 게 뻔한데도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책을 출간한 이유도 궁금했다. 그는 “작년 11월 검찰 조사가 최종 종결됐으니 5년 내내 시달린 것”이라면서도 “내가 당당한데 뭐가 무섭겠냐”고 답했다. 이어 “우리나라가 가짜 뉴스로 누구든 죽일 수 있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을 막는 게 정치인의 의무이며, 가짜 뉴스 유포는 국회의원의 면책 특권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느닷없이 기업인들이 날벼락을 맞은 경우가 유독 많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책임자였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의 친구인 강남훈 전 홈앤쇼핑 사장도 그런 케이스다. 그가 잘못한 것을 굳이 꼽으라면 검찰에서 물러난 이인규 변호사를 홈앤쇼핑 사외이사로 선임한 것이다. 이로 인해 강 전 사장도 각종 고소·고발에 시달렸고 결국 채용 비리로 8개월 실형 선고까지 받았다. 그는 2021년 5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긴 했지만, 회사에서는 이미 불명예 퇴진을 했고 암까지 걸려 건강이 급속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잔혹함에 많은 사람이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렸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적폐로 몰아 쫓아내고 그 사람의 배우자나 친구까지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다. 온갖 가짜 뉴스도 동원했다. 그랬으면서도 기관장 자리를 붙들고 버티는 문재인 정부 인사들을 보면 기가 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