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보유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나와 취재진의 질문을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뉴스1

‘돈 봉투 살포’ 스캔들은 민주당 안에서도 비판이 많지만 유독 송영길 전 대표를 싸고 돈 사람들이 있었다. 김민석 정책위 의장과 우상호 의원이 대표적이었다. 김 의장은 송 전 대표가 “청빈까진 아니어도 물욕이 적은 사람”이라 했고, 우 의원은 “의혹이 부풀려졌다”고 했다. 위기에 몰린 동료를 손절하지 않고 뜨거운 동지애로 감싸주었다.

세 사람은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을 뜻하는 ‘86 그룹’ 운동권의 맏형 격이다. 연세대 81학번 송영길과 우상호, 서울대 82학번 김민석은 각각 총학생회장을 지내며 격렬했던 80년대 학생운동의 한복판을 지켰다. 그리고 나란히 정계에 입문해 서로 돕고 밀며 최고참 반열에 올랐다. 운동권 출신의 전형적인 정치 궤적이었다.

기득권에 대한 저항 정신이 운동권의 정체성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크게 도덕적이진 않았다. 첫 사달은 운동권의 성지(聖地) 광주에서 터졌다. 2000년 5·18 전야제를 위해 광주에 간 86 정치인들이 망월동에서 참배한 뒤 단란 주점에서 접대부 술판을 벌인 일이 드러난 것이다. 사태의 전말은 뒤늦게 술집에 합류한 임수경 전 의원에 의해 공개됐는데, 여기에 송영길·우상호·김민석이 나란히 등장한다. 임수경이 목격한 현장은 이랬다.

“문을 열자 송영길 선배가 아가씨와 어깨를 붙잡고 노래를 부르고 계셨다. 김민석 선배는 양쪽에 아가씨를 앉혀두고 웃고 이야기하느라 제가 들어선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마이크를 잡고있던 송영길 선배님은 저를 보고 같이 노래를 부르자는 듯이 손짓을 하셨고 (중략) 순간 누군가 제 목덜미를 뒤에서 잡아끌며 욕을 했다. ‘야 이 X아, 니가 여기 왜 들어와. 미친 X.’ 믿고 싶진 않지만 이 말을 한 사람은 우상호씨였다.”

당시 이들 나이 30대였다. ‘5·18 광주’를 정신적 뿌리로 여기는 이들이 정치를 시작하자마자 다른 날도 아닌 5·18 전날에 흥청망청 술판을 벌였다. 젊은 나이에 거머쥔 권력의 맛에 얼마나 취했는지 알만 했다. 임수경의 폭로는 큰 파문을 낳았다. 야권의 대주주인 광주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정치생명에 중상을 입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끄떡없이 위기를 건너뛰어 출세 코스를 질주했다. 386이 486·586이 되고 예순이 넘어서도 86 그룹은 한 번도 정치 무대의 중심에서 벗어난 일이 없다.

‘민중’을 팔아 정치 자산으로 삼았지만 삶의 방식까지 민중적이진 않았다. 김민석 의원은 불법 자금 7억원을 받은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고 5년간 선거에도 나오지 못했다. 민정당 연수원 점거로 투옥됐던 김의겸(고려대 82) 의원은 재개발 건물 투기로 ‘흑석 선생’이란 불명예를 달았다. 사노맹 사건으로 6년 복역한 은수미(서울대 82) 전 성남시장은 수사 기밀을 거래한 혐의로 법정 구속됐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6개월간 수감됐던 조국(서울대 82) 전 법무장관은 자녀 입시 서류 위조 등으로 내로남불의 상징이 됐다.

나는 이들이 진심으로 기층 민중을 위했는지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운동권 86이 주축이던 문재인 정부는 서민의 삶을 개선하긴커녕 도리어 못살게 하는 정책을 폈다. 소득 주도 성장으로 하위층 일자리를 없애고, 부동산 규제로 ‘미친 집값’을 조장했으며, 불평등과 자산 격차를 심화했다. 민중을 자립시키기보다 세금 지원에 손 벌리며 살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서민층을 ‘정부 의존의 가두리 양식장’에 가둬두려는 정책을 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결코 억측이 아니다.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설계한 김수현(서울대 80) 전 정책실장은 “집이 없는 사람이 진보적 투표 성향을 갖는다”고 했다. 조국 전 장관은 “모두가 용이 될 필요는 없다”며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로 살아가라고 주문했다. 그렇게 국민에겐 집 없이 궁핍하게 사는 민중적 삶을 권유하면서도 자신들은 뒤에서 온갖 기득권을 누렸다.

41세 김남국 의원은 조 전 장관의 정치적 후광을 업은 ‘조국 키즈’의 대표 주자다. 2019년 조국 수호 집회에서 활약한 공로로 민주당 공천을 받아 38세에 일약 금배지를 달았다. 그는 조국의 검찰 개혁 어젠다를 이어받아 ‘검수완박’에 총대 멨지만 알고 보니 넘겨받은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구멍 난 신발을 신네, 라면만 먹네 하더니 코인 투기에 수십억을 굴리는 위선의 DNA도 물려받고 있었다.

김 의원에게 국민이 분노하는 것은 단지 돈 출처가 어디냐, 특혜는 없냐 같은 사법적 문제만은 아니다. 투기꾼처럼 돈벌이에 혈안이 됐으면서도 천연덕스럽게 거지 코스프레를 하는 그 이중성이 가증스럽다. 86 운동권은 민중을 팔아 권력을 벌고, 조국 키즈는 가난을 마케팅해 이익을 챙긴다. 세대를 뛰어넘어 위선도 유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