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75회>

1985년 11월 21일, 제네바 회담. 왼쪽 소련 고르바초프 총서기, 오른쪽 미국 레이건 대통령. /Bettmann Archive


세계는 지금 제2차 냉전 중인가?

미·중 갈등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2020년 여름 트럼프 정권의 장관급 핵심 인사 네 명은 돌아가면서 차례로 “스탈린의 후예인 시진핑”의 중국은 국제질서의 규범을 파괴하면서 초강국이 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쓰는 독재국가라 규탄한 바 있다. 내전 같은 선거를 치르고 가까스로 정권이 교체되었음에도 바이든 행정부는 전 정권의 대중국 강경 노선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미국 헌정사에는 국가적 위기 상황이나 국익과 직결된 중대 사안에선 당리당략과 노선 차이를 넘어 대타협을 이루는 양당 정책(bipartisan policy)의 오랜 전통이 있다. 최근 미국 의회는 적어도 중국 문제에서만큼은 만장일치의 양당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 하원은 지난 3월 중국의 개도국 지위 박탈 법안과 위구르족 제노사이드를 막는 장기 적출 중지법에 대해선 99.5% 이상의 찬성률을 보였다. 중국 문제에서만큼은 미국의 여야와 조야가 대동단결한 형국이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 호주, 한국, 일본 등 전 세계 반중 정서가 갈수록 강화되는 추세다. 최근 EU 집행부는 러시아의 무기 생산에 협조한 7개 중국 회사에 대한 제재 법안을 제출했다. 캐나다는 위구르족 제노사이드 제재 법안을 주도한 국회의원에 대한 중국 측의 보복성 압력에 거세게 항의하며 중국 대사를 추방했다. 이탈리아는 ‘일대일로’ 탈퇴 의사를 내비쳤다. 세계 각국은 단순히 정서적 반중(反中)에 머물지 않고, 중국 체제를 비판하는 비중(批中)의 이념 공조, 군사·외교적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억중(抑中)의 국제 연대를 이루고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자 안보 회담(쿼드, Quad)은 일례에 불과하다. 최근 캐나다 정부는 미국과 영국이 호주의 핵잠수함 건조를 지원하는 목적으로 결성한 오커스(AUKUS) 동맹에 가입하려 하고 있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2001년 “반테러”의 명분으로 결성된 “상하이 협력 기구(SCO)”의 핵심 축은 시작부터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협력이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인 2022년 2월 초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막식에 나타난 푸틴은 시진핑과의 “전략적 브로맨스(bromance)”를 전 세계에 과시했다. 중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배경 삼아서 러시아가 국제적 고립을 감수하면서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했음은 이미 국제사회의 상식이다. 이제 세계는 앞으로 수년 내 중국이 실제로 대만 침공을 감행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지 않는다 해도 군사 위협만으로 이미 싸늘한 전운이 세계를 감싸고 돈다.

여러 분석가가 지적하듯, 지구는 지금 제2차 냉전(Cold War 2)을 치르고 있는가? 실제로 신냉전이 진행 중이라면, 앞으로 세계는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까? 40년에 걸친 미국의 집요한 봉쇄 전략으로 1990년대 초 구소련이 극적으로 해체되었듯 중국 역시 국제적 고립, 경제적 쇠락, 정치적 해체의 길을 가고 있는가? 아니라면, 중국 중심의 새로운 세계 질서가 나타나고 있는가?

2021년 11월 15일 백악관에서 중국의 시진핑 총서기와 화상으로 회담하고 있는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 /Alex Wong/Getty Images


오웰이 예측했던 냉전, 결국 자유 진영의 승리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2개월 후, 1945년 10월 19일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은 “당신과 원자폭탄”이란 제목의 시론에서 인류 최초로 “냉전”의 도래를 예측했다. 절대무기를 갖고 있어 침략당하지 않는 강력한 전체주의 국가가 주변국과 영원한 “냉전” 상태에서 평화 아닌 평화가 영구히 지속된다는 주장이었다. 오웰이 최초로 “냉전”이란 개념을 제시했을 때, 사람들은 그의 놀라운 통찰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한국전쟁 발발 한 해 전인 1949년 소련은 자체적으로 핵무장에 성공했다. 핵을 거머쥔 스탈린은 미국과 힘의 균형을 이뤘다는 확신 아래 마오쩌둥의 참전 약속을 받아낸 후 38세 김일성의 남침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한국전쟁은 초강국 사이의 갈등이 제3차 세계대전을 대신해 양대 진영 사이의 참혹한 국지적 대리전으로 표출될 수 있음을 보여준 중대한 사건이었다. 오웰의 예측대로 그 후 40년 세계는 양대 진영으로 갈라져서 냉전을 치러야만 했다.

1945년 2월 얄타회담. 왼쪽부터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 미국의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소련의 스탈린(Joseph Stalin). /공공부문

냉전 시대 미·소 경쟁은 민생 경제, 과학기술, 정치이념, 문화예술 등 모든 방면에서 전면적으로 일어난 명실공히 체제 전쟁이었다. 냉전 시기 미국이 지속적인 과학기술의 발달, 대학의 성장, 경제 발전의 결과 소련을 따돌리고 압도적인 세계 최강의 부국으로 성장했지만, 1970년대까지도 미국 지식계와 정부의 많은 전문가는 소련의 지속적 발전과 미국의 쇠락을 예언하고 있었다.

학계의 비관적 전망과는 달리 1980년대 들어서자 레이건 행정부의 유화책에 부응하여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했다. 그 결과 소련 내부에서 정치 개혁과 경제 개방의 요구가 거세게 일어났고, 동구에서 시작된 자유화의 열풍은 70년 공산당 일당 독재에 짓눌려온 소련 인민을 일깨웠다. 급기야 러시아, 우크라이나 및 발트해 연안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에서 일어난 민주화 물결이 1991년 12월 26일 구소련 제국을 해체했다.

제1차 냉전의 시대는 그렇게 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공산주의 대 자유주의의 충돌, 명령경제 대 시장경제의 경쟁, 전체주의 대 민주주의의 투쟁, “닫힌 사회” 대 “열린 사회”의 대결은 그렇게 후자의 대승리로 막을 내리는 듯했다. 자본주의가 내적 모순 때문에 붕괴하고 사회주의로 진화한다는 마르크스의 예언과는 정반대로 개인주의와 시장경제에 기초한 입헌적 자유주의와 선거 민주주의가 인간 사회 제도적 진화의 종결점이라는 장밋빛 낙관론이 널리 퍼져나갔다.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운동이 대학살로 막을 내렸을 때, 중국 밖의 많은 분석가는 머지않아 중국도 민주화를 거부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그러한 예상과는 정반대로 중국은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면서도 경제성장을 지속해서 급기야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급성장하는 이변을 이어갔다. 그 결과 세계는 지금 중국 문제로 시름하고 있다.


제2차 냉전의 장기화, 중국의 점진적 쇠락 전망

구소련과 달리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전 세계 대다수 나라들과 경제적 공조 관계를 확대해왔다. 소련의 경제력은 최고조일 때에도 미국의 절반에 못 미쳤지만, 중국은 이미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해 있다. 최첨단의 과학기술 측면에서도 중국은 미국을 바싹 뒤쫓고 있다. 구매력 평가 지수(PPP)로 보면, 중국의 국내 총생산량은 2014년 이후 이미 미국을 추월했다. 바로 그러한 관점에서 팬데믹이 터진 이후에도 미국의 여러 논객은 미·중 갈등을 제2차 냉전으로 보는 매파적 시각을 비판했다. 중국 문제가 심각할 순 있지만, 오늘날의 중국을 과거의 소련제국과 동일시할 수는 없는 데다 지금에 와서 중국과의 공생을 포기할 수 없다는 현실론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이미 7, 8년 전부터 제2차 냉전이 진행 중이었다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세계 여러 나라가 현 상태로 중국과의 공조를 계속 이어갈 수 없음을 인지했다 할까. 구소련처럼 오늘날 중국은 일당 독재의 레닌주의 국가이며, 핵무기로 전 인류를 파괴할 수 있는 군사적 초강국이다. 대내적으로 중국은 최첨단의 감시 장비로 전 인민을 통제하는 반자유적 전체주의 국가이며, 대외적으로 자유민주적 질서에 맞서는 팽창주의적 제국이다. 또한 중국은 반인류적 정치 범죄, 심지어는 제노사이드를 자행한다고 의심받고 있으며, 홍콩의 자유를 억압하고, 대만에 대한 흡수 통일을 공공연히 선언하면서 국제질서를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작금의 국제정세가 제2차 냉전이라면, 과연 중국은 승리할 수 있을까? 중국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여 과거 역대 중화 제국의 조공 체제와 같은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출현할 가능성이 있을까? 세 가지 이유에서 그렇게 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첫째, 중국 경제가 계속 밝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세계 제2위의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 경제의 실상은 이렇다. 인구절벽으로 경제활동 인구가 급감 추세에 있고, 천문학적 빈부격차로 전국적으로 인구 40%에 달하는 6억명의 빈곤층을 떠안고 있으며, 도농 및 지역 격차는 줄어들지 않는다. 또한 탈공조화(decoupling)에 맞물려 외국 기업은 날로 떠나가는데,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경제 개혁을 거부하고서 “국진민퇴(國進民退)”의 낡은 길로 퇴행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그러한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경제를 이끌어갈 순 없다.

둘째, 현재 중국은 공산당 일당 독재의 전체주의 체제라는 점이다. 헌법에는 자유, 인권, 민주, 법치가 명시되어 있지만, 중국은 당정 분리도 이루지 못한 반자유적 인권 탄압국이다. 중국공산당이 선전하는 중국 모델은 군국주의 일제, 나치독일의 제3제국, 스탈린 시대 구소련의 선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중국식 디지털 전체주의는 일당 독재를 유지하는 미봉책일 순 있어도 중국 중심의 국제화 전략으로선 실패를 면할 수 없다.

셋째, 중국은 세계 질서를 이끌 수 있는 인류적 보편 이념을 창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중국공산당이 창당 100년 만에 “초심을 잊지 말자, 사명을 되새기자”며 내세운 구호는 놀랍게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었다. 계급 정당이 민족 정당으로 둔갑한 이 기묘한 현실은 중국공산당의 이념적 자가당착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계급투쟁의 창을 들고 민족 부흥의 방패를 찌르는 격이다. 이는 중국이 세계를 향해 건설적 비전과 보편적 가치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증거다. 중국 밖의 사람들은 시진핑의 “중국몽”을 위협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비대한 대륙 국가 중국은 현재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진(秦)나라의 단명이 증명하듯, 인류적 보편 이념을 창출하지 못하는 제국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신장 테케스 현 구치소에서 삭발당한 위구르인들이 간수의 감시 아래 열을 맞춰 노래를 제창하고 있다. “공산주의 희생자 기념재단(The Victims of Communism Memorial Foundation),” 2022년 5월 24일 공개. /https://victimsofcommunism.org

구소련이 냉전에서 패배한 이유는 정치체제, 경제구조 한계 등 여러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지만, 가장 근본 원인은 “공산주의”라는 잘못된 이념에 있었다. 개인의 재산권을 박탈한 후 무산계급 독재로 공산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발상 자체가 인간의 본성을 짓밟는 무지막지한 폭력이었다. 중국은 여전히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을 전면에 내걸고 공산당 일당 독재로 운영되는 레닌주의 국가다. 그런 나라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외치며 일대일로(一帶一路)의 미명 아래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모색하는데, 과연 전 지구에서 몇 나라나 과거의 조공국처럼 오늘날의 중국을 종주국으로 떠받들겠는가?

2021년 6월 28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앞두고 갈라쇼에서 시진핑 총서기가 최고위 간부들과 함께 당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고 있다. /Ng Han Guan/AP/File

20세기 인류사를 돌아보면, “열린 사회”의 민주주의가 혼란스럽고, 비효율적이고, 불안정한 면모를 끊임없이 보여왔지만, “닫힌 사회”의 독재 권력보다 더 질기고 탄력적인 생명력을 발휘해 왔다. 그러한 시각에서 보면, 제2차 냉전의 결말도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중국공산당이 통치하는 중국이 현재의 미국을 대신해서 중국 중심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세울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문제는 이미 경제적·군사적 초강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구소련보다 더 완강하게 버티면서, 더 집요하고 저돌적으로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교란하고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 점에서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제2차 냉전은 제1차 냉전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난해하고, 소모적인 지구전일 수도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