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판. 지금의 가상 화폐 시장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말은 없는 것 같다. 가상 화폐는 글로벌 금융 위기로 세계 경제의 붕괴를 초래한 기존 금융권에 대한 안티 테제(antithesis)로 출발했다. 2009년 초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개발자는 모든 거래 내역을 모든 거래 참가자의 장부에 분산 저장하는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 화폐 비트코인을 선보였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은 중앙은행 체제 아래 대형 은행과 일부 빅테크 기업이 부(富)를 독점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는 새로운 시스템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룩한 이상(理想)과 블록체인 기술은 뒷전에 밀리고 가상 화폐가 도박 플랫폼의 매개체로 전락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상 화폐 시장은 똑똑하고 약은 소수(少數)가 ‘지금이 아니면 뒤처진다’는 공포감에 뛰어든 다수(多數)를 마음껏 착취하는 약육강식의 시장으로 변질돼 버렸다.
현재 국내에는 27개의 등록 거래소에서 625종(種)의 코인이 거래되고 이용자는 627만명에 이른다. 문제는 가상 화폐 거래 질서를 유지하고 투자자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남국 의원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가상 화폐 거래를 한 혐의가 입증되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는 견해가 많다. 일부 좌파 세력이 검찰 수사를 ‘김남국 망신 주기’라고 뻔뻔하게 맞서는 것도 이런 맹점 때문이다.
우선 가상 화폐가 어떤 기준과 절차를 거쳐 상장되는지 공통된 기준이 없다. 상장 가격과 발행 물량도 발행 주체가 마음대로 결정하고, 개별 거래소의 자체 심사만 통과하면 그만이다. 상장 심사에서 가장 핵심은 코인 발행 주체가 제출하는 프로젝트 백서(사업계획서)와 기술력인데, 코인 백서는 전문가들조차 이해하기 힘든 기술 용어가 난무하거나 황당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 태반이다. 또 일반 투자자들은 코인 발행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기술력은 어느 정도인지, 혹은 사기꾼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봐야 홈페이지 하나가 전부다. 이러니 국내엔 특정 거래소에만 단독 상장된 코인의 종류(389종)가 유달리 많다. 이 ‘듣보잡’ 코인들이 시세조종의 먹잇감이 된다.
투자자 보호의 첫 단추인 공시 규정조차 없으니 코인 발행 주체가 텔레그램 리딩방을 개설하거나 유튜브를 통해 거짓·과장 정보를 흘리며 맘대로 시세조종을 할 수 있다. 몇몇 큰손이 코인 가격을 끌어올린 뒤 고점에서 팔아치우는 펌핑과 덤핑(pumping & dumping)이 난무해 코인 상장 30분 만에 가격이 1000배나 치솟았다가 곧바로 폭락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가격 그래프는 뾰족한 피뢰침 모양을 그리기 일쑤다.
코인 거래를 관리·감독해야 할 거래소는 더 가관이다. 국내 3대 거래소인 코인원은 임직원들이 지난 3년간 뒷돈을 받고 상장해준 코인이 무려 46개에 이르는데도 아무런 제재 없이 운영을 하고 있다. 또 김남국 코인으로 유명한 ‘위믹스’ 코인의 발행사인 위메이드(게임회사)의 대표는 위믹스 코인을 상장한 거래소 ‘빗썸’의 경영 전반을 관장하는 사내 이사를 맡기도 했다. 주식 시장이라면 플레이어가 심판까지 맡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가상 화폐 시장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벌어진다.
이런 광기의 시장은 외부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테라·루나 사태와 미국 거래소 FTX의 파산을 겪으면서 한국 가상 화폐 규모는 2021년 말 55조원에서 1년 만에 19조원으로 쪼그라들었고, 수십, 수백만 명의 피해자들을 양산했다. 정말 의문인 것은 문재인 정부가 왜 이 난장판 시장을 방치했느냐다. 테라·루나 사태 이전에도 수많은 전조(前兆)가 있었고 가상 화폐 업계에서도 줄기차게 제도 마련을 요청했지만 미적거리기만 했다. 많은 사람이 문 정부의 무능 또는 부동산 폭등에 낙담한 2030세대를 의식한 포퓰리즘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간호법·노란봉투법 등 온갖 법을 밀어붙이는 다수당 민주당이 왜 가상 화폐 관련법에는 소극적이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김남국 사태가 정·관·벤처업계의 치부를 드러내는 코인게이트로 비화하는 것도 시간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