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 친노, 노무현 경호실장으로 불려온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자신이 “겉은 21세기, 속은 조선시대 (여자)”라며 웃었다. 외며느리인 그는 시어머니를 17년간 모시고 살았다. ‘관종’이라는 세평과 달리 숫기도 없고 앞에 나서는 걸 매우 싫어했지만, 노무현을 만나고 삶의 방식이 달라졌다고 했다. 그는 참여정부 때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냈다.
최근 출간한 ‘어떻게 민주당은 무너지는가’(테라코타)는 자신이 20년간 지지해온 민주당을 직격한 정치비평서다. “우리 정치, 특히 민주당이 이대로 무너지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고 했다.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과반이라도 얻으려면 “이재명 대표가 민주당을 염치없고 상식 없는 당으로 만든 강성 지지자들과 절연하고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했다. 이래경 혁신위원장 논란과 관련해서는 “정치를 잘 모르는 사람이 오면 이재명의 아바타가 된다. 적어도 이 대표에게 쓴소리를 하고 대안을 제시할 사람을 영입했어야 한다”고 했다.
◇ 文 대통령이 위기의 일차적 책임
-민주당을 왜 그렇게 공격하나.
“이대로는 민주당이 총선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이 민주당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쇄신할 절호의 기회라고 본다.”
-민주당 위기의 일차적 책임이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있다고 했다.
“조국 교수를 장관으로 임명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염치와 상식을 잃어버린 결정적 계기가 됐다. 조국 사태만 없었다면 민주당의 20년 집권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조국 교수와는 친분이 있나.
“직접 만난 적은 없다. 거의 10년간 노무현 연구를 해온 교수 그룹이 있는데 조국 교수의 유죄 판결이 난 후에도 계속 음모론을 제기하니 과연 학자가 맞나, 이성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인가 의구심이 들었다. 죽을 때까지 갈 모임이라고 생각해 연말이면 집으로 초대해 밥 해먹이며 교류했던 모임이 여럿인데, 조국 사태로 다 깨졌다.”
-조국 교수가 조기 사퇴하지 않은 걸 안타까워했다.
“스스로 사퇴했다면 가족의 사생활까지 까발려지지 않고 재기의 명분도 얻었을 것이다. 나도 민주당을 위해 총대 메고 비판은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미안하고 아프다. 매일 자기 전 기도한 적도 있다. 조국 교수가 혹시 안 좋은 마음이라도 먹을까 봐.”
-염려와 달리 조국 교수는 매우 잘 지내는 것 같더라. 딸 조민씨는 유튜브도 시작했다.
“일반 국민들에겐 철없는 행동으로 보일 거란 생각에 안타깝다. 나는 사실 조국 교수가 정치적으로 재기할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조용히 잊혔다가 모두가 궁금해할 때 딱 나와서 명예 회복하길 바랐다. 그런데 SNS만 중단했지, 북토크를 하면서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보도되니 국민에겐 한 번도 잊힌 적이 없는 거다.”
-조국 교수가 총선에 나오면 민주당은 참패할 거라고 했더라.
“참패라기 보다는 여야 경쟁이 심한 지역구에선 민주당이 어려워질 거란 뜻으로 말한 거다. 그러면 의석의 과반을 채우기 힘드니, 현재 170석에 견주면 참패로 보이지 않겠나.”
◇ 권리당원 공천권이 대깨문·개딸 양산
-민주당이 총선에서 이기려면 공천 룰을 바꿔야 한다고도 했다.
“지금 반명(反明)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뭘까? 공천 탈락이다. 그런데 이해찬 당대표 시절이던 2020년 총선에서 권리당원들에게 50% 공천권을 주는 바람에 사달이 났다. 그들이 의원들을 압박하고 바른말을 못 하게 하면서 민주당을 염치없고 상식 없는 정당으로 만들었다. 금태섭의 경선 탈락이 과도한 두려움을 가져오면서 의원들이 당원들 눈치만 보게 된 것이다.”
-당원에게 공천권을 준 것이 잘못됐다는 건가.
“나도 당시엔 그게 나쁜 결정인 줄 몰랐다. 유럽은 공천권을 100% 당원이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데 우리는 왜 대깨문, 개딸을 양산한 걸까.
“유럽은 정당 역사가 수백 년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 손잡고 정당에 가서 학습하고 고등학교 때부터 선거운동을 하면서 정당인으로 길러진다. 반면 우리는 그냥 당대표가 좋으면 1000원 내고 가입한다. 교육도 거의 안 한다. 정당 가입의 문턱은 낮은데 권한은 엄청나다는 뜻이다. 다수가 곧 정의인 한국 사회에서 당원들이 공천권까지 행사하게 되면서 정책토론은 사라지고, SNS에서 세 사람이 찬성하면 진리가 되는 삼인성호(三人成虎)가 돼버렸다. 문 정부를 비판한 나를 수백 명이 몰려와서 비난하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되듯, 10만~20만이 서초동에 모여 조국을 지지하면 정의가 된다.
-그게 민주당을 무너지게 한 계기가 됐다는 건가?
“유권자는 서초동 지지자들보다 10배, 20배 많은 숫자다. 국지적 여론이 민심과 동일하다는 착각을 일으켜 당이 망가지는 단초가 됐다.”
-운동권과 거리가 먼 MZ 세대의 지향성을 이해하지 못한 게 패착이라고도 했다.
“‘내가 정의인데 지지 안 해?’라는 운동권 마인드, 흑백논리 탓이다. 윤석열을 찍은 20대 남성을 ‘이찍남’이라고 비난한 것이 대표적이다. 2030 남성의 결집이 정권 교체의 동력이 됐다.”
-이재명 대표는 공천 룰을 바꿀 수 있을까.
“현재 민주당의 문제는 서울·부산 재보궐 선거, 대선, 지방선거에서 참패를 하고도 그걸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 대표는 오히려 권리당원의 권한을 더 강화하는 중이다. 똑같은 실수를 세 번 하고도 배운 게 없다는 뜻이다.”
조 교수는 책에 “민주당은 3연패 후에도 언론 탓, 검찰 탓, 기울어진 운동장 탓을 한다. 이는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는 것”이라고 썼다.
◇ 명분을 목숨보다 중시한 정치인 노무현
-책 전반에 걸쳐 노무현 정부는 성공적이었음을 강조하더라.
“철이 난 이후 이해충돌은 철저히 피하고 살아왔다. 유학 시절 배운 가장 중요한 덕목이 integrity, 즉 전문직 윤리다. 내가 몸담았던 정부에 대한 옹호였다면 그렇게 못했다. 다만 노무현 정부에 대해 친노조차 제대로 복기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참여정부의 실패론에 기초해 반면교사 한 문재인 정부가 그런 경우다. 문 정부가 노무현 정책을 그대로 계승했다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었다.”
-노무현 14주기에 여야 모두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외쳤다. 노무현 정신이 대체 뭔가?
“이념이 아닌 원칙과 상식의 정치, 진영의 이익보다 국민과 국가의 이익을 우선한 것, 정치에서 명분을 목숨보다 중요시한 것.”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지지율은 좌우 모두에서 높지 않았다.
“세 가지 이유다. 우선 열린우리당 거버넌스로 당정 협력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처럼 당대표와 최고위원 선거가 분리되지 않았던 그때는 2등 최고위원이 당 대표를 계승할 수 있어서 대표가 일곱여덟 번이나 바뀌었다. 언론 환경도 나빴다. 거의 전쟁 수준으로 언론 개혁을 하는 바람에 진보 언론조차 호의적이지 않았다. 민노당의 원내 진입도 참여정부의 지지율을 떨어뜨렸다. 열린우리당과 차별화하려고 노회찬 심상정 같은 스타 정치인들이 연일 참여정부를 때렸다.”
-시민 단체도 참여정부는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운동권 출신의 구좌파가 대부분인 그들은 자기들이 노무현을 당선시켰다고 생각하는데 노무현은 신좌파적 정책을 펼치니 배신당했다고 여겼다. 노무현을 신자유주의자라 비난했는데, 사실이 아니다. 노 대통령은 한미 FTA의 과실로 국민과 나눌 수 있는 복지 패키지를 만들고, 시장의 자유는 보장하되 공공 영역의 민영화는 거부했다. 시장을 자유롭게 한 다음 세금을 많이 걷어서 복지로 재분배하는 데 중점을 뒀다.”
-노무현은 이념에 경도돼 있지 않았다는 뜻인가.
“노무현은 확실한 진보다. 그러나 정책은 다르다. 정책학은 인간의 욕망을 자연스럽게 본다. 공산주의가 왜 망했나. 인간의 욕망과 어긋났기 때문이다. 북유럽 국가들이 시장 원리를 존중하고,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유지하면서 최저임금제를 하지 않는 것도 인간 욕망을 억누르는 정책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문 정부의 소주성, 최저임금제, 부동산 정책이 성공하지 못한 건 시장의 반격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준다. 20대 이후 공부를 한 적이 없는 586 출신 정책결정론자들이 21세기 변화된 경제환경을 이해하지 못 한 채 국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하는 구좌파 정책으로 후퇴한 탓이다. 노동이 축소되는 시장에서 노동을 중시하는 정책으로 회귀했고, 부동산 정책 실패로 자산 양극화만 더욱 심화시켰다. 최근 여의도를 지나다 한노총에 걸린 플래카드를 봤다. ‘최저임금은 올리고 물가는 낮추고!’ 얼마나 환상적인가. 그런데 이런 정책은 없다. 무책임한 노조는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정책 하는 분은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친구였고 분신이라던 문재인과 노무현의 차이는 뭘까.
“노무현이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는 것이다. 덕분에 공산주의나 구좌파에 경도됐던 운동권 물이 들지 않았다. 주사파나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도 없었다. 그래서 실용주의 노선을 걸을 수 있었다.”
◇ 총선, 혁신하는 쪽이 이긴다
-’여자 진중권’이란 별명도 있더라.
“굉장히 싫어한다.”
-진중권 교수를 싫어하나?
“진중권 교수는 위트와 해학이 넘치는 훌륭한 논객이지만 정치에 대한 전문 지식은 없다. 조국과 민주당에 대한 입장은 나와 비슷할 때가 많지만 상대를 비웃고 놀리는 듯한 태도가 불편하다. 나는 돌직구는 던지되 상대가 정말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애정을 가지고 비판한다.”
-책에 강성 팬덤에 올라타 정치 선동가로 활약한 김어준씨에 대해서도 썼다.
“돌아가신 김동길 교수가 내가 학생일 때 이대에서 격주로 설교를 하셨다. 지금도 기억나는 말씀이, 자기 머리에 맞는 모자를 써야지 자기 머리보다 큰 모자를 쓰면 모자가 눈을 가린다는 것이다. 벼슬도 자기가 감당할 만한 벼슬을 써야지, 감당할 수 없는 벼슬을 쓰면 망하는 지름길이란 뜻이다. 자기 실력 이상으로 뜨면 꼭 추락하게 돼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술잔도 7부만 채우라는 말처럼. 진영의 치어 리더 역할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김어준이 당내 선거에 개입해 킹 메이커 역할을 자처하면서 분열을 부추겼다.”
-문재인 정부의 이데올로그였던 김어준이 신기를 잃고 유시민의 언설이 신뢰를 잃게 된 계기는 박근혜 탄핵이라고도 썼더라.
“적은 사라졌는데 여전히 적을 상정하고 우리의 도덕적 잘못을 옹호하는 건 상식에 어긋난다. 중도층과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의 신뢰를 잃은 건 당연한 결과였다.”
-노무현 대통령이라면 강성 팬덤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노사모는 이성적인 사람들이었다.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에도 이제부턴 대통령을 견제하고 감시하겠다고 했던 노사모다. 노 대통령이 검찰과 언론에 당하는 걸 보면서도 어떤 조직적 대응도 하지 않았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조직적 대응에 명분이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노사모와 대깨문은 다른 성격의 집단이라고 보나?
“중국 공안의 한국 기자 폭행사건에 대한 발언을 사과하고 1년반 쉬었다가 2018년 5월 책을 출간하면서 인터뷰를 하게 됐다. 그때 문 대통령의 원 팀이 다양성을 죽이고 민주적인 의사소통을 방해해서 정책의 실패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더니 ‘네가 뭔데 문재인을 가르치느냐’면서 욕하는 사람들이 몰려오더라. 전문직 중심의 노사모가 매우 이성적이고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었다면, 후기 문파는 대선 재수시절 문 후보를 지켰던 초기 문파와 달리 포퓰리스트 성향이 강했다.”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해선 호평 했더라.
“우리 아들이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에 스무번 넘게 나간 친문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돌아섰다. 자기를 이해하려면 이준석을 공부하라고 하더라. 포퓰리스트에 갈라치기 주범이라고 비판을 받지만 이준석이 마음에 드는 건, 독재를 합리화하려는 국힘의 유산에 딱 선을 긋는 모습이었다. 그가 마산, 광주, 순천, 제주에 가서 사죄의 마음을 전달하는 걸 보면서 4·3추념식에 가서 원한을 풀고 해원하려는 노무현 대통령이 떠올랐다. 돈 안 드는 선거, 따릉이 타고 다니는 탈권위주의 모습도 좋았고. 이준석을 여성혐오, 장애인 혐오라고도 비난하는데 부당한 딱지 붙이기다. 그러면 장애인이 잘못된 일을 할 때는 아예 침묵해야 하나. 정책과 정치 싸움은 구분해야 한다. 내가 볼 때 이준석은 정치인 중에 정책 얘기를 제일 많이 하는 정치인이었다. 여러 면에서 노무현을 닮았는데 가장 큰 차이는 너무 덕이 없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떻게 평가하나.
“야당을 존중하지 않고 일방적인 건 사실이다. 노무현처럼 역사의 판단을 믿고 내 소신껏 가본다, 여론이 반대해도 내가 옳은 일이면 개혁을 하겠다는 배포는 있어 보인다. 그래도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과반이 돼서 윤 대통령의 독주를 견제해줬으면 좋겠다.”
-총선은 어떻게 전망하나.
“혁신하는 당이 이긴다. 둘 다 실패하면 국힘이 유리하다고 본다. 초반의 학습효과로 대통령 지지율이 오르고 있고 내년 총선은 임기 2년 차라 심판 분위기가 생기진 않을 것이다. 더구나 국힘에는 지난 대선에서도 봤듯 선거 운동할 줄 아는 전문가들이 있더라. 구도나 전략상 이대로 간다면 윤 대통령과 국힘에 유리하다.”
-제3의 신당이 뜰 수도 있다고 예고했던데.
“나는 늘 3당 반대론자였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가 친정 체제를 밀어붙이면 앉아서 그냥 죽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국힘에서도 공천 혁명을 시도할 경우 이탈자들이 꽤 있을 것이다. 현역 의원들이 양쪽에서 무더기로 나오면 국고 보조금도 상당히 받을 수 있으니 신당 가능성은 꽤 있다고 본다.”
-신당이 결성되면 참여할 의사도 있나.
“난 정치가 체질에 맞지 않는다. 돌려 말하지 못하는 직설이 생활화돼 있어 정치에 성공할 수 없다. 다만 민주당이 새로운 정치로 다시 집권하는 걸 봐야 논평을 멈추고 정치판을 뜰 수 있을 것 같다. 정 안 되면 신당이라도 해서 노무현이 바라던 대연정이 실현되는 걸 보고 싶다.”
-현실 정치에 뛰어든 걸 후회하지 않나.
“나는 학자로도 성공할 수 있었다. (박사 학위 받은) 인디애나대학에선 ‘히스토리’로 불릴 만큼 인정받았다(웃음).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인연으로 정치로 빠져서 20년 하다 보니 위대한 학자가 되긴 틀렸고,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정치가 제발 잘되는 꼴을 죽기 전에 보고 싶다. 그래서 나는 발언한다.”
☞조기숙
1959년생으로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아이오와대에서 정치학 석사를, 인디애나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 이화여대 교수로 임용됐고, 2005~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의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일했다. 현재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포퓰리즘의 정치학’ ‘왕따의 정치학’ ‘대통령의 협상’ 등 여러 저서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