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에 연루된 무소속 윤관석·이성만 의원 체포동의안이 지난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모두 부결되자 이성만 의원이 이재명 대표 자리로 찾아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이덕훈 기자

KBS 9시 뉴스를 빼지 않고 보려 한다. 호불호를 떠나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의 대표 뉴스이기 때문이다. 일본과 영국의 ‘오늘’을 알기 위해 NHK와 BBC 뉴스를 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뉴스 판단은 언론사마다 다를 수 있다. A신문이 1면 톱으로 다룬 기사를 B방송이 단신으로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6월 12일 KBS와 MBC의 메인 뉴스는 이런 상식에서 너무 벗어났다.

그날 국회에선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윤관석·이성만 의원에 대한 체포 동의안이 부결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 현역 의원 5명에게 체포 동의안이 제출됐다. 그중 민주당 의원은 전원 부결되고 국민의힘 출신 의원 1명만 가결됐다. 야당 내부에서조차 방탄을 넘어 철갑 수준으로 방어막을 쳤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KBS 9시 뉴스는 톱 뉴스부터 연속 다섯 꼭지를 도쿄전력 오염수 문제를 다뤘다. ‘도쿄전력 오늘부터 시운전’ ‘어민은 고사 위기, 상인들은 걱정 태산’을 다루더니 앵커와 기자가 나와 정부가 어민 피해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어 다시 ‘홍콩은 일본 수산물 검역 강화’ ‘국회 대정부 질문, 오염수 안전성 논쟁’이었다. 다섯 꼭지에 두 특파원이 등장했다. KBS에 해외 특파원이 많은 것은 수신료라는 재정적 뒷받침 때문이다.

정부는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오염수를 일본이 방류하도록 놔둬선 안 된다. 국민이 안심할 때까지 설명해야 한다. 과학적 안전 기준을 검증하는 것은 언론의 의무다. 그러나 KBS 뉴스의 초점은 안전성에 있지 않았다. 일본은 검증되지 않은 오염수를 곧 방류할 것이고, 정부는 일본 대변인 노릇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몰아갔다. 여기에 과학이 설 틈이 없다. KBS만 보고 있자면 소금 사재기가 당연하다. 소금을 만드는 과정에서 물이 증발하기 때문에 삼중수소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과학은 KBS의 관심 밖이다.

KBS는 12번째에 이르러서야 ‘윤관석·이성만 체포안 부결’이라는 제목으로 방탄 국회를 다뤘다. 뉴스에서 방탄 국회가 사실상 증발한 것이다. 이런 보도를 업계에선 ‘면피성 보도’라고 한다. 그냥 보도했다는 기록만 남기는 것이다. 뒤이어 수신료 분리 징수 문제에서 자사 입장을 강변하는 두 꼭지를 내보냈다. 같은 날 MBC 뉴스데스크는 KBS 뉴스보다 더했다. 톱뉴스부터 네 번째까지 모두 도쿄전력 오염수 뉴스였고, 방탄 국회 뉴스는 KBS보다 훨씬 뒤로 밀린 17번째로 다뤘다. 대신 방통위원장에 내정도 안 된 이동관 특보를 비판하는 뉴스로 네 꼭지를 채웠다.

KBS와 MBC가 진보라서 그렇다는 데 사실 그것도 아니다. 다음 날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보면 안다. KBS와 MBC가 진보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특정 정파의 입장에서 뉴스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한겨레는 1면 머리기사로 ‘돈 봉투 의혹 감싼 방탄 민주당’을 보도했고, 경향신문도 1면에 ‘체포안 부결, 혁신 걷어찬 민주당’이라는 제목으로 비중 있게 보도했다. 공영방송만 뺀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이 방탄 국회를 1면이나 주요 뉴스로 다뤘다. 6월 12일은 KBS와 MBC만 딴 나라 뉴스를 만든 날이었다. KBS와 MBC가 이런 지는 몇 십년 됐다. 진보 좌파 정부에선 그들의 박자에 맞추고 보수 우파 정부에선 그들의 입맛에 맞췄다.

내가 대선 때 1번을 찍었는지 2번을 찍었는지 상관없이 수신료는 통장에서 빠져나간다. 신문이나 민영 방송은 시장에서 독자의 선택을 받지만, 공영방송 수신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지금 공영방송에선 절반 가까운 국민이 숨 쉴 공간이 없다. 야당의 스피커가 된 공영방송 라디오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다. 메인뉴스가 이 지경이다. 중립이나 공정 같은 어려운 말이 아니다. 수신료로 먹고사는 공기업 직원들의 염치와 상식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