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서 열린 구글 개발자 대회를 지켜본 네이버·카카오 임직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구글은 이날 자신들의 생성 AI(인공지능) ‘바드’를 공개하며 영어와 함께 외국어로는 처음으로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독재국가 중국·러시아를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구글이 1등을 못 하는 한국을 정조준한 것이다. 네이버의 한 임원은 “구글이 언어장벽을 뛰어넘어 그렇게 빠르게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하리라고는 상상을 못 했다”며 당황해 했다. 지난 10일 생성 AI 선두주자 ‘챗GPT’의 샘 올트먼 오픈 AI 창업자가 열광적인 환영 속에 방한해 국내 기업들과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윤석열 대통령까지 접견한 것도 국내 업계로서는 쓰라린 대목이었다. IT 업계에서는 “이러다가 검색 시장을 통째로 뺏기지 않을까” 하는 초조함이 감돌고 있다. 네이버는 이르면 8월에야 겨우 생성 AI 시험판을 선보일 예정이지만 카카오는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
생성 AI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작년 말 첫선을 보인 챗GPT는 5일 만에 사용자 100만명을 돌파하고 2개월 만에 1억명을 넘어섰다. 이전 최고 기록인 중국의 짧은 동영상 플랫폼 틱톡(9개월)보다도 훨씬 빠르다. 국내 검색 시장도 이미 잠식하고 있다. 네이버의 검색 점유율은 지난 1월 64.5%에서 6월 중순 56%로 뚝 떨어진 반면 구글은 36%까지 상승했다. 국내에서 존재감이 없던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빙(bing)도 챗GPT 탑재로 단기간에 점유율이 3%까지 올랐다. MS는 최근 챗GPT에 100억달러(약 12조원)를 투자하며 대주주가 됐다.
AI 경쟁이 국내 기업에 더 부담스러운 이유는 인프라 구축과 운영에 기존 검색의 100배에 이르는 자금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AI 경쟁이 기술력보다는 누가 더 많은 데이터와 컴퓨팅 파워를 확보하느냐는 규모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카카오의 고위 임원은 “AI 검색에서는 대당 3000만원이 넘는 엔비디아 GPU(그래픽 처리장치)가 동시 접속자 3~5명당 1대꼴로 필요하다”면서 “답변의 수준을 높이거나 사용자를 확대하려면 투자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말했다. 챗GPT도 인프라 투자에 최소 40억달러(약 5조1200억원)를 썼으며 하루 운영비만 70만달러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한 전문가는 “시가총액 세계 2위, 4위인 MS(2.58조달러)와 구글(1.57조달러)이 돈을 퍼붓기 시작하면 네이버·카카오는 감당이 안 될 것”이라며 “카카오가 포털 다음을 매각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지난 수개월 동안 똑똑한 ‘챗GPT’의 매력에 빠져 있었다면 이제는 현실 자각을 할 때가 됐다. 생성 AI는 모바일 시대를 장악한 구글 안드로이드나 애플 iOS 운영체제처럼 기존 산업을 철저히 파괴하면서 시장을 장악하는 파괴적 혁신을 시작했다. 이 경쟁에서 밀리면 인터넷 검색은 물론, 온라인쇼핑, 각종 앱 서비스 등 소프트 산업 전반에서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실제로 시장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연초 대비 주가가 45%나 치솟은 MS는 벤츠자동차에 챗GPT를 탑재하며 외연 확대에 박차를 가하는 반면, 코로나 시기 디지털 전환의 상징이었던 아마존은 AI 경쟁력이 밀리면서 주가가 고점 대비 30%나 하락했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여전히 포털 뉴스의 편향성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데이터 수집·활용에서도 각종 가이드라인 형태의 역차별적 규제를 국내 기업만 준수하는 게 현실이다. 매번 뉴스 편향성 시비를 일으키는 포털들도 반성할 일이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포털 기업들을 산업과 미래 경쟁력의 관점에서도 봐야 한다. 한 전문가는 “해외 빅테크 기업의 공세에 맞서려면 네이버·카카오·LG·SKT 등 AI 개발에 나선 기업과 판교 스타트업들의 역량을 총결집시키는 초거대 AI 생태계 구축에 나서야 한다”면서 “그런데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중에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IT 전문가가 없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대전환을 국정과제로 삼은 이 정부가 숙고해볼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