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페라리도 있어요?” “페라리는 458 있고,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S도 있고….”

한 유명 학원 강사가 학생들이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 묻자 이에 대해 대답하는 ‘라이브 방송’ 내용의 일부다. 그는 수천만원짜리 가방을 보여주고 “한도 없는 신용카드를 쓴다”고 했고, ‘통장 잔액은 얼마냐’고 묻는 학생 질문에 자신의 인터넷 뱅킹 계좌를 열고 잔액을 보여줬다. 한눈에도 11자리 숫자가 찍힌 것이 보였다. 한동안 중·고등학생 사이에서 엄청난 화제가 됐다는 영상이다.

또 다른 강사는 서울 강남 미술품 경매 현장에 자주 나타나는 VIP로 알려졌다. 그는 재작년에 17억원에 출품된 일본 작가 쿠사마 야요이의 그림을 36억원에 낙찰받았고, 그림을 손에 넣자마자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해당 이미지를 올리며 자랑했다.

지난 2월 모건스탠리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작년에만 168억달러(약 20조9000억원)에 달하는 명품을 구입하면서 1인당 명품 소비 1위 국가에 올랐다. 1인당 구매 금액이 미국은 물론 명품을 많이 소비하는 나라로 알려진 중국보다 많았다. 이 덕분일까. 국내 한 백화점은 올해 처음으로 매출 3조원을 넘길 예정이다. 영국 해러즈 런던, 일본 한큐 우메다, 프랑스 갤러리 라파예트보다 매출이 많다. 프랑스 인구는 한국보다 25%, 일본 인구는 한국보다 139%가 더 많은데도 말이다.

팽창한 건 명품 시장뿐만이 아니다. 미술품 거래 시장은 지난 3년 사이 3배로 부풀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21년 국내 미술 시장 규모는 1조원에 육박했다. 2020년 3291억원, 2019년엔 3812억원 정도였다. CNN은 “한국은 부유한 수집가 계층이 늘어나는 미술계의 잠자는 거인 같은 시장”이라고 했다.

거품이 어쩌다 이렇게 커졌을까. 주식 시장에서 개미들만 물을 먹고 돈 버는 자는 따로 있듯, 이 광풍을 부풀리고 이끄는 이들도 따로 있진 않은가. 코로나 이후 제품을 사자마자 가격이 오르면 다시 내다 파는 리셀(re-sell) 시장이 커졌고, 예술품 구매에도 문턱이 낮아지면서 젊은 소비자들도 너도나도 재테크로 명품과 예술품 구매에 뛰어들게 됐다고 흔히 분석하지만, 한 갤러리 관계자는 “꼭 그게 전부는 아니다”라고 했다.

“거품 낀 돈이 흘러들면 거품 낀 시장이 되거든요. 지난 몇 년 사이 미국 화가 앨릭스 카츠 같은 누가 봐도 좋고 싫음이 크지 않은 작가들 작품 가격이 말도 안 되게 올랐어요. 미술에 대한 안목을 차근차근 길러온 사람들이 아니라, 코인과 주식, 부동산으로 불로소득을 갖게 된 사람들, 스톡옵션으로 큰 돈 번 IT 관계자와 학원 강사 같은 이들이 주요 고객이 되면서 값이 터무니 없이 오른 거죠. 김창열·이우환 같은 유명 작가 작품 가격은 더 뛰었고요. 롤렉스 시계는 요즘 아예 물건도 보기 어려워진 것과 비슷해요.”

최근 기사를 보면서 그의 말을 새삼 떠올렸다. 무허가 투자 자문사를 차리고 주가 조작 행각을 벌였던 라덕연 H투자자문대표에게 검찰은 유명 화가의 그림 22점과 고가 시계 4점을 압수했다. 라덕연의 시계는 바쉐론 콘스탄틴과 파텍 필립, 롤렉스였고, 그에겐 카츠·김창열·호크니 작품이 있었다. 누군가는 라씨를 보면서 나도 저런 시계와 그림을 갖고 싶다고 부러워하고, 함께 일확천금을 벌 꿈을 꿨을까.

한 스위스 시계 회사 임원이 들려준 말이 예사롭지 않다. “다들 내면이 황폐해서 그래요. 그러니 자꾸 아이들 학원에, 좋은 학교 가라고 몰아붙이고, 소비하면서 겉치레만 신경 쓰는 거예요.”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상황이 분명 정상은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