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17일 인천 부평역 북부광장에서 열린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 규탄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단 뒤에 '오염수 방류는 방사능 테러'라고 주장하는 구호가 적혀 있다. /뉴스1

후쿠시마 방류수 소동을 보면서 몇 년 전 읽은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을 떠올렸다. 카너먼은 행동경제학 창시자로, 심리학자이면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의 이론은, 인간 인지 구조의 기본 모드는 노력과 수고 없이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직관에 지배되는 ‘시스템1′이라는 것이다. 시스템1은 과학적 사고와 거리가 멀고 자주 오류와 편향에 빠진다. 반면 ‘시스템2′는 속도가 느리지만 두뇌 에너지를 써서 심사숙고한다. 예를 들면 연말정산 신고를 할 때 시스템2가 등장한다. 일상 생활에선 시스템1만 갖고 충분하고 효율적이다. 그러다가 복잡하고 중요한 일을 만나면 시스템2가 주도권을 넘겨받게 된다.

시스템1은 골치 아픈 두뇌 활동은 피하고 인상과 직관만 갖고 순간적으로 판단(Fast Thinking)하려 한다. 특히 통계와 수치에 약하다. 사고사(死) 숫자는 당뇨병 사망의 4분의 1밖에 안 되지만, 사람들은 사고로 죽을 확률이 당뇨병 사망보다 300배 높다고 인식한다. 민주당의 후쿠시마 오염수 반응은 시스템1에 의존한다. 한국은 일본의 이웃이다. 따라서 후쿠시마 방류수는 한국에 바로 영향을 끼칠 걸로 본다. 그러나 과학에 따르면 방류수는 태평양을 한 바퀴 돌아 맨 나중 한국에 온다. 삼중수소 확산 시뮬레이션을 보면, 한국 바다의 기존 삼중수소 양은 L당 0.172베크렐인데 후쿠시마 방류로 그 17만분의 1인 0.000001베크렐이 추가된다. 민주당에선 그 수치를 무시하고 “우물물에 독극물 풀기”라고 외치고 있다.

시스템1엔 시간과 노력을 절감하는 이점은 있다. 두뇌를 덜 작동시켜 에너지 소모를 줄여준다. 카너먼은 이걸 ‘최소 노력의 법칙(Law of the Least Effort)’이라고 불렀다. 그렇다 보니 시스템1은 제한된 정보가 전부인 양 성급하게 결론을 낸다. ‘눈에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What you see is all there is)’, 이른바 WYSIATI의 규칙이다. 자신들의 고정 관념을 망칠 것 같은 추가 정보는 굳이 원하지 않는다. 성주 사드 전자파가 인체 보호 기준의 0.189%도 안 된다는 환경영향평가 결과에 대해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솔직히 이 결과를 100% 믿을 수 있느냐”고 했다. 내 신념에 맞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일종의 확증 편향이다. 민주당 대변인은 “IAEA(국제원자력기구)는 원전 진흥 기구라서 IAEA가 내놓을 결론을 금과옥조처럼 맹신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다. 이렇게 미리 방어막을 치는 것도 유리한 정보만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다.

시스템1은 선입견으로 형성된 호불호의 감정에 지배받는다. 후쿠시마 삼중수소 방류 예정량은 연간 22조 베크렐이다. 한국 원전 단지는 그것의 10배, 중국 원전은 50배 삼중수소를 배출한다. 그런데도 이재명 대표는 국장급 공무원인 중국 대사를 관저로 찾아가 후쿠시마 방류에 대한 한중 공동 대응을 논의했다. 카너먼은 기존 신념이 좌우하는 시스템1의 생각 모드를 “감정이란 꼬리가 합리적 개의 몸통을 흔드는 격”이라고 했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방류 문제로 수산시장, 횟집을 찾는 발길이 뜸해졌다. 방류가 시작되면 더 심해질 것이다. 식품엔 보통 대체품이 있다. 소비자들은 좀 찜찜하면 다른 것을 먹으면 된다. 국회 1당이 총동원령을 내려 “방사능 테러”라고 외치고 다니니 찜찜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면 개인 개인의 사소한 선택이 쌓여 시장의 패닉으로 발전한다.

그런데 민주당은 혹시 시스템1이 아니라 시스템2를 작동시켜 이 상황을 일부러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안을 부추겨 수산업계의 피해를 조성한 후, ‘일본 대변인 정부, 원자력 중독 정부 때문’이라고 덮어씌우는 전략은 아닐까 하는 말이다. 설마 그렇겠느냐 하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대장동은 윤석열 게이트’라고 믿는 국민이 많다는 걸 보면 의심을 완전히 씻을 수 없다. 만에 하나 그런 거라면, 사람을 밀어 물에 빠뜨려 놓고서 내가 아니라 다른 이가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정치가 고상하지 않은 건 익히 알지만, 자국민을 일부러 수렁에 빠뜨리는 정치라면 정말 혐오할 수밖에 없다.

후쿠시마 방류수와 우리 수산물은 아무 관련 없다는 것이 과학의 목소리다. 설령 후쿠시마 오염수를 일체 정화 처리 없이 30년이 아니라 1년 안에 한꺼번에 방류하고 우리가 먹는 원양 수산물을 모두 후쿠시마에서 멀지 않은 바다에서 잡은 거라고 가정하더라도, 한국인의 방사선 영향은 흉부 X레이를 한 차례 찍는 것의 1000만분의 1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국민들이 시스템2, 과학 정신에 스위치를 올려야 한다. 국민이 열심히 수산물을 먹어준다면 수산업계가 능히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