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최근 도쿄의 도심 개발을 취재하고 온 후배 기자에게 들은 얘기다. 후배는 도쿄 중심가에 있는 건축사무소 니켄세케이(日建設計)로 가려고 택시를 잡았다. 니켄세케이는 메이지 시대인 1900년 창립한 일본 최대의 건축·설계 전문 기업이다.

행선지를 말하자 40대 택시기사는 “세계 최고의 건축 회사로 가네요. 건축가인가요?”라고 후배에게 물었다고 한다. 택시기사는 “최신 일본 건축을 보려면 마루노우치나 시부야로 가시라. 아자부다이힐스에 가면 헤더윅이 만든 건물도 있어요”라고도 했다. 토머스 헤더윅은 영국의 건축가 겸 디자이너다. 천재성이 번득이는 작품이 여러 분야에 걸쳐 있어 ‘우리 시대의 다빈치’로 불린다.

헤더윅은 서울시의 한강 노들섬 디자인 공모에 1조5000억원짜리 설계안(案)을 낸 인물이기도 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 천재의 설계안에 끌리면서도 다른 출품작에 비해 높은 공사비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고 들었다. 필자도 최근에야 접한 ‘헤더윅’이란 이름을 도쿄의 택시기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화제에 올렸다. 서울 시민의 관심사는 ‘집값’인데 도쿄의 택시기사는 ‘건축’을 얘기하고 있었다.

도쿄는 20년 넘게 이어진 고밀도 순환 개발로 지금도 변신 중이다. 2002년 도시재생특별조치법을 시행하고, 특구(特區)로 지정된 지역 안에서 용적률을 거래할 수 있는 ‘용적률 이전 제도’를 도입해 규제 개혁을 한 게 출발점이었다. 도쿄역과 롯폰기에서 시작된 개발은 인근 지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서울은 규제 때문에 엄두도 못 낼 기발하고 혁신적인 건축물들이 문화재와 녹지공간을 품으며 올라갔다. 이제 도쿄 도심은 상전벽해가 됐다.

‘한국은 일본을 우습게 아는 세계 유일한 나라’라는 말이 있다. 거기에는 일본이 준 역사적 고통에 대한 감정도 작용했지만, 글로벌화된 정보통신 혁명 시대에 일본인보다 한국인이 더 경쟁력이 있다는 자신감도 녹아 있다. 일본은 규범과 관행에 얽매여 폐쇄적이며 개성이 존중되지 않은 고루한 사회이고, 그에 비해 한국은 개방적이고 역동적이며 진취적인 사회라는 것이다.

서울과 도쿄라는 두 도시를 놓고 볼 때 과연 그런가. 일본에 입국한 외국인은 2003년 520만명에서 코로나 직전인 2019년 3188만명으로 늘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3188만명의 절반인 1518만명이 당시 도쿄를 찾았다. 코로나 사태에서 벗어난 도쿄의 밤거리는 지금 세계 곳곳에서 온 젊은이로 넘쳐나고 있다. 레스토랑과 카페에서는 영어가 반(半)공용어가 됐다고 한다. 후배와 택시기사의 대화도 영어로 이뤄졌다. 20년 쌓인 도쿄의 ‘개벽’은 도시의 기풍(氣風)을 바꾸는 지점까지 왔다. 지금 일본은 우리가 알던 일본이 아니란 얘기다.

도쿄의 ‘파격’은 택시기사가 가보라고 권유했던 도쿄역 앞 마루노우치 개발에서 시작됐다. 도쿄역은 문화재다. 그런데도 일본인들은 그 앞에 글로벌 금융지구를 조성해 초고층 건물들을 올렸다. 서울에서는 ‘문화재 규제’ 때문에 상상도 못할 일이다. 단적인 예가 서울역이다. 서울역은 도쿄역을 설계했던 일본 건축가의 일본인 제자가 설계한 건물이다. 그런 서울역이 문화재라는 이유가 개발을 막고 있다. 밤이 되면 서울역 주변이 슬럼화한 지 오래다. 이런 사례는 수두룩하다.

본지는 이번 주부터 이런 현실을 지면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이를 본 국내의 전문가는 “나도 도쿄와 서울의 격차를 알았지만 눈치가 보여서 말을 안 했다”고 했다. 이게 지금 우리 모습이다.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극일(克日)이든 반일(反日)이든 공허할 뿐이다.

오늘도 광화문은 민노총 파업 집회의 확성기 소리로 요란하다. 파업 이유 중 하나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저지’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