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데이비드 회담에서 한·미·일 삼국 정상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은 대한민국이 과거와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모습이었다. 일방적인 도움을 받던 관계에서 미국·일본이라는 강대국과 함께 공동의 문제에 대응하는 대등한 관계로 변화한 것이다. 1951년 미일안전보장조약 체결과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형성된 동북아 안보 체제가 70년 만에 새로운 단계로 나아간 것이다. 한국전쟁 이전 이승만 대통령이 추진하던 태평양동맹조약 결성이 80년 만에 현실화했다고 볼 수 있다.

강대국과 대등한 자격 아래 동맹의 일원으로 참가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오랫동안 한반도라는 공간적 틀 속에서만 사고하고 행동해 왔다. 그 너머의 문제와 상황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둔감하게 반응하였다. 북한의 위협이라는 문제가 어렵고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일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우리의 태도는 많은 국가의 양해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국력이 신장하면서 이러한 태도는 점차 많은 국가에서 대한민국은 시야가 좁고 지역적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오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삼국 동맹으로의 발전은 우리에게 한 차원 넓은 상황 인식과 판단력을 요구한다.

그래픽=김성규

잘 알려진 것처럼 삼국 협력 체제 강화는 미국의 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국 결속 강화의 일환이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시기부터 미국은 중국에 대한 본격적인 견제에 나섰다. 겉으로는 관세 인상 같은 경제적 대응에 관심이 모였지만 정작 미국이 가장 주력한 분야는 경제 안보와 공급망 재편이었다. 2018년 이후 미국은 첨단 기술 보호와 관련한 수출통제개혁법(ECRA), 외국인투자위험조사현대화법(FIRRMA), 해외직접생산규정(FDPR) 등을 잇달아 개정하면서 첨단 기술 통제를 강화하였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군사력과 더불어 첨단 기술 분야에서의 우위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공급망과 관련한 다수의 행정명령을 발동하였으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미국이 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반도체, 이차전지, 핵심 광물 및 의약품 등 네 영역에 대해 100일 내에 분석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한 ‘미국 공급망 행정명령’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100일 보고서(100 Day Review)는 4대 영역의 공급망이 지정학적 리스크에 노출돼 있으며, 미국 내 제조 역량과 관련 인력이 부족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미국은 안보를 위해서는 연구·개발(R&D)뿐만 아니라 첨단 제조업 역량의 강화가 필수적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첨단 산업 가운데 미국이 최우선시하는 분야는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의약품, 인공지능, 양자 컴퓨터, 차세대 통신망 등 6가지다. 묘하게도 이들은 삼성과 SK 같은 대한민국 대표 기업들이 경쟁력을 보유하거나 강화하고 있던 분야였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 대기업들이 미국과 협력을 강화하고 대미 투자를 확대한다면 중국 견제를 위한 전략적 목표는 빠르고 확실하게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은 명확했다. 2022년 제정된 반도체법(CHIPs)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등은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한 것이었다.

한국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에 다른 어떤 기업들보다 빠르게 대처하면서 미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에 착수하였다. 리쇼어링 이니셔티브라는 연구 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2022년 한국 기업의 투자로 만들어질 것으로 예측되는 일자리는 3만5000개에 이르며, 이는 상위 10대 리쇼어링 투자국이 만들어내는 미국 내 일자리의 26%를 차지하는 압도적인 비율이었다. 한국 기업들의 신속한 투자를 통해 미국은 2021년 55GWh에 불과하던 자국 내 이차전지 생산 능력을 2030년이 되면 미국 내 신규 판매 차량의 절반을 전기 자동차가 차지하더라도 문제없을 정도인 1000GWh까지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이차전지 외에 반도체, 전기차 등에 대한 한국 기업의 투자 역시 미국의 중국 견제와 자국 내 첨단 제조업 육성이라는 전략적 목표 달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캠프 데이비드의 모습은 이러한 한국 기업들의 기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오랫동안 공을 들여온 미래 성장 산업의 결실이 대한민국이 아닌 미국의 일자리로 변화하는 것을 감내하게 되었다. 20년 만에 미국이 중국을 제치고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 시장으로 복귀하는 상황을 감안해 보면 우리 기업의 미국 투자 확대는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국내 첨단 산업 공동화와 좋은 일자리 축소라는 문제를 삼국 협력 체계 내에서 어떻게 풀어나갈지를 고민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새롭게 등장했다는 점도 명확하다. 강대국과 대등한 관계에 올라섰다는 명분에 걸맞은 실리도 찾을 수 있어야 협력 관계는 국민의 지지를 받고 지속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대한민국은 역사적으로 과감한 선택과 결단을 통해 발전해 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대부분의 신생 독립국이 수입 대체 전략을 국가 발전 전략으로 채택할 때 우리는 수출 주도 성장이라는 다른 길을 선택하면서 발전했다. 세계 경기 불황으로 인한 경제 위기가 심화되던 1981년 일본에서 100억달러 지원을 받는다는 과감한 판단을 통해 저리로 40억달러를 지원받으면서 중남미 국가와 달리 위기 국면을 탈출해 3저 호황 시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대부분의 서방국가가 중국에서 철수하던 상황에서 오히려 투자를 늘려 이후 중국을 통한 급속한 발전의 토대를 확보하기도 했다.

삼국 협력 체제 참여가 우리에게 도약의 기회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우리의 시각과 사고를 확장해야 한다. 동맹과 시야와 눈높이를 맞춰야만 동등한 입장에서 논의와 상호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넘어선 지역적 관계에 대한 적극적 참여는 이제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