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문화특보 임명에 ‘올드맨의 귀환’이란 조롱이 나오자 유인촌은 코웃음을 쳤다. “올드맨? 아직 꿈도 많고 에너지도 넘치는데?” 장관 퇴임 후 굴착기 면허부터 땄다. 소년원 아이들에게 연극을 가르쳤다. 작년 가을엔 자전거로 유럽 2000km를 종주했다. 돌아오자마자 대작 ‘파우스트’에 돌입했다. 가슴에 돈키호테를 품고 산다는 일흔두 살의 유인촌은 “낡은 이념에 치우친 문화 산업 전반에 쇄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내가 블랙리스트 원조?
-진보 진영은 이동관 방통위원장과 묶어 ‘언론·문화계 탄압 기술자’라고 한다.
“그분들은 변한 게 없다. 문체부 장관에 취임한 직후 동아마라톤 행사에 갔더니 한 진보 언론이 내가 점령군처럼 서 있다고 썼더라. 난 장관이기 전에 모든 마라톤 대회를 뛰었던 애호가로 개막식에 나간 것뿐인데도. 또, 장관 마치고 이해랑 탄신 100주년 연극 ‘햄릿’으로 무대에 복귀했더니 ‘이 뒤틀리고 뒤틀어진 세상’이란 대사를 트집 잡아 자기가 뒤틀린 세상 만들어 놓고 저런 대사를 한다고 비아냥대더라(웃음). 어떻게 해야 이분들과 대화가 될 수 있을지 참 암담하다.”
-장관 시절 진보 예술인들을 탄압하셨나?
“내가 그들을 탄압했다면 지금까지 우리 문화·예술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난 척박한 예술 환경을 개선하고 지역 문화를 살리려고 장관이 된 사람이다.”
-취임 후 기관장들을 쫓아냈다고 해서 지탄을 받았다.
“서울시장이 이명박에서 오세훈으로 바뀌었을 때 내가 서울문화재단 대표였다. 같은 보수당이라도 새로운 시장은 새로운 사람들과 일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의를 표했다. 장관이 됐을 때도 그런 맥락에서 가볍게 말한 거다. 새 정부와 생각이 다른 기관장들은 더 있으라고 해도 안 있을 거라고. 근데 다음 날 신문에 ‘지난 정부 기관장 물러가라’는 제목으로 나오더라.”
-블랙리스트의 시작이 유인촌 장관이라고 한다.
“증거는 없다면서 그냥 우긴다(웃음). 그렇게 믿고 싶겠지. 누가 조사 좀 해주면 좋겠다. 내가 장관할 때 지원 배제 명단이나 특혜 문건은 없었다. 나 역시 어떤 특혜도 받지 않았다. 청문회 때 민주당에서 1973년 문화예술진흥원이 생긴 이래 2008년까지 유인촌을 지원한 기록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는데 단 한 건도 없었다. 오히려 퇴임 후 연극계로 돌아왔을 때 나와 일했던 스태프들이 지원을 한 차례도 받지 못했다. 그게 블랙리스트 아닌가.”
-작가 임옥상은 화이트리스트인가.
“200여 점이면 전국 공공 미술 분야를 싹쓸이한 수준이다. 과연 실력만으로 수주를 따냈을까. 그런데도 자기들은 늘 정의롭단다. 나는 ‘상식적인 진보 우파’라 자처했는데 근래는 진보란 말을 떼버렸다. 진보라는 말 자체가 아주 더러워졌다.”
-진보 우파?
“예술가란 과거를 되새기고 현실의 밑바닥까지 성찰하며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나는 왕 역할을 많이 했지만 ‘임금도 땀 흘리지 않으면 밥 먹지 마라’고 했던 조광조 같은 개혁적 인물에게도 끌렸다. 그런데 요새는 진보란 말을 꺼내기도 싫다. ‘파우스트’에 악마 메피스토의 대사가 있다. ‘인간 세상에 내려가 보니 나보다 더 나쁜 놈들이 많아서 졸지에 실업자가 될 판’이라고. 요즘이 딱 그런 세상 아닌가? 죄 지은 사람이 더 당당하고, 억울하다며 악다구니한다.”
◇문화·예술도 경쟁해 살아남아야
-대통령은 왜 유인촌을 문화특보로 임명했을까.
“새 틀을 짜라는 것 아닐까? 특보를 맡은 이상 난 끊임없이 묻고 두드리고 저지를 것이다.”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나.
“내가 장관 했을 때가 12년 전이다. 그 사이 문화, 미디어 환경이 급변했는데 우리는 어떤가. 할리우드 작가와 배우들은 챗GPT와의 저작권 투쟁을 시작했는데, 우리는 넷플릭스 하나 컨트롤 못 한다. 지상파 3사를 봐라. 언젠가부터 정권의 나팔수가 되더니 요즘은 노영(勞營) 방송이라고 한다. 머리띠 두르고 정치 싸움만 하니 새로운 콘텐츠가 나오겠나. 지상파 3사가 투자해 만들었다는 플랫폼 웨이브도 망했다. 그 사이 넷플릭스는 막대한 자본 갖고 들어와 불공정 계약은 물론 인건비만 엄청 올려놨다. 문화 정책도 그저 살려달라는 이들에게 지원금 나눠주는 수준이다.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 장르의 칸막이를 없애고 융·복합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지원 정책을 바꾸겠다는 건가.
“문화·예술도 경쟁을 통해 살아남아야 한다. 쥐꼬리만한 예산을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주면 경쟁이 될까? 생계 보조형 지원은 그만해야 한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을 확실하게 밀어줘야 한다. 자본과 권력에서 독립하겠다는 영화들까지 왜 정부가 돈을 줘야 하나. 좁은 문을 만들어 철저히 선별해야 한다.”
-공정성 논란은 없을까.
“대신 도전할 기회를 많이 주면 된다. 간접 지원, 사후 지원, 인큐베이팅 지원으로 다양하게. 심사도 당사자들이 책임을 지는 책임심의관제로 가야 한다.”
-좌파 예술인들 몰아내려고 유인촌을 특보로 앉혔다는 말도 있다.
“하하! 호사가들 얘기다. 가장 자유로워야 할 문화계에서 이념 논쟁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속칭 좌파 예술인들도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술을 정치적 도구로 삼는 건 공산국가에서나 하는 일이다. 굳이 정치적 표현을 하고 싶다면 말릴 수 없다. 부모 말도 안 듣고 이 바닥에 나온 사람들이 누구 말을 듣겠나. 다만 정부 예산을 지원하라고 요구해선 안 된다. 나랏돈으로 국가 이익에 반하는 작품을 만드는 게 말이 되나.”
◇장관 퇴임 후 굴착기 면허 따
-저작권법 정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한글박물관 건립 등 장관 재임 시 한 일이 적지 않더라.
“장관 시절 날 무지하게 괴롭혔던 야당 의원이 ‘기관장 문제로 이미지가 나빠져서 그렇지 일은 정말 잘했다’고 하더라(웃음). 나는 늘 현장에 있었다. 지구 7바퀴 반을 돌았다고 할 정도로 주말이면 국도를 타고 전국을 누볐다.’
-’회피 연아’, ‘찍지 마’ 동영상은 아직도 유튜브에 돈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우승하고 돌아온 김연아 선수를 내가 안으려는 것처럼 악의적으로 편집한 영상이다. 유포자들을 다 고소했다. 이를 생중계한 KBS 영상이 나와 거짓으로 드러났는데도 날 공격했던 민주당 의원들은 사과 한마디 안 하더라.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덤빈다며. 어떻게든 망신과 모멸감을 주려는 게 이 나라 정치다. 후쿠시마 오염수 선동처럼 가짜뉴스가 여전히 판치는 현실에 화가 난다. ”
-장관 끝난 뒤 굴착기, 지게차 면허를 땄다는 게 사실인가.
“내 꿈이 숲속에 작은 문화 공간을 직접 짓는 거다. 땅 파는 것부터 배우려고 파주 중장비 학원 가서 굴착기와 지게차 운전법을 배웠다.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실습을 해보고 싶었는데 초짜들은 안 써준다더라(웃음).”
-비행 청소년들과 7년째 자전거로 국토 종단을 하신다고.
“장관을 3년이나 했으면 여생은 봉사를 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의왕소년원에 가서 연극을 가르치다가 7년 전부터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자전거 종단을 한다. 첫해는 자전거 집어 던지며 성질을 부리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더라. 재범률도 뚝 떨어졌다.”
-71세에 자전거로 유럽을 종주해 화제다.
“유로벨로라고 유럽 전역을 연결하는 자전거 루트 17개가 있다. 방송사 PD였던 친구와 카메라를 장착하고 스위스에서 독일, 네덜란드로 이어지는 15번 길을 달렸다. 막판엔 체력이 달려 욕이 다 나오더라(웃음). 앞으로 뭔들 못 하겠나 싶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나 보다.
“우리 자전거 인구가 1300만이다. 그런데 제대로 된 자전거 길은 이명박 대통령 때 만든 4대강 외엔 없다. 유럽의 자전거 길을 조사해 보고 싶었다. 이정표는 물론 신호등도 따로 돼 있고, 자전거텔(숙박), 도시로 연결되는 길도 잘돼 있더라. TV나 유튜브를 통해 이 다큐를 곧 공개할 생각이다.”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지난 봄 LG아트센터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한 연극 ‘파우스트’에서 악마 역 박해수와 열연을 펼쳤다.
“스타가 된 배우가 다시 무대로 돌아오는 건 힘든 일이다. 그런데 이 친구는 모든 일정을 접고 연극에만 올인하더라. 연습 1시간 전에 와 있고 맨 마지막에 연습장을 떠났다. 보석을 발견했다.”
-이번엔 파우스트지만 과거엔 메피스토(악마)를 주로 연기했다.
“메피스토 연기는 즐겁다. 악에는 확실히 쾌락이 있다(웃음). 인간 파우스트가 힘들었다. 신이 되고 싶어 하는 인간, 끝없이 욕망하는 인간. 겉으로 드러나는 희로애락의 표현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인물이라 괴로웠다. 내가 메피스토를 연기할 때 윤주상이 파우스트를 연기했는데, 그때 왜 윤주상이 그렇게 고통스러웠했는지 알 것 같더라(웃음). 다이아몬드를 캐는 심정으로 연기했다.”
-인생작은 6번 연기한 햄릿일까?
“홀스또메르. 폐기 처분된 경주마의 눈으로 인간 세상을 풍자하는 작품이다. 이 연극을 본 한 남자가 내게 편지를 보냈다. IMF 때 사업이 망해 자살하려고 했는데 당신 연극을 보고 나서 다시 살기로 했다고. 꼭 성공해서 당신의 후원자가 되겠다고.”
-연기와 정치, 뭐가 더 어려운가?
“내겐 연기가 훨씬 어렵다. 100점을 맞는 게 불가능하니까. 물론 정치도 어렵지만 거긴 성과물이 있지 않나. 그런데 연기는 다르다. 95점까진 할 수 있는데 나머지 5점을 채우려고 발버둥 치다 끝내 못 하고 떠나는 게 연기다.”
-고생은 안 하고 살았을 것 같다.
“내가 피란 중에 태어났다. 한겨울 어머니가 연탄난로에 물을 팔팔 끓여서 찬밥을 끓이던 장면이 기억난다. 한 공기만 넣어도 양이 불어나서 온 식구가 먹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김치 한 가지도 볶음김치, 조림김치로 바꿔가며 도시락을 싸주셨다. 내 창의력의 원천은 어머니 도시락이다(웃음).”
-나이 듦이 좋은가?
“그럴 리가. 한 20년만 뒤로 갔으면 좋겠다. 아직 별도 따고 달도 따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모자라다.”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돈키호테!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며,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유인촌
1951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나와 1974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전원일기’ ‘야망의 세월’ ‘조선왕조오백년’ 등 다수 드라마에 출연했고, KBS 역사스페셜도 진행했다. ‘햄릿’ ‘파우스트’ ‘맥베스’ ‘리어왕’ ‘문제적 인간 연산’ 등 연극에 가장 열정을 쏟았다. 이명박 정부 때 문체부 장관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