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사진은 전북 부안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행사장에서 천막과 임시 설치물이 철거되는 모습. 이 부지는 갯벌을 졸속 매립해 농지로 용도 변경한 바람에 야영지로 적합하지 않았고, 잼버리 파행 운영 후 용처도 정해지지 않았다. 오른쪽 사진은 순천시가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위해 저류지에 조성한 넓은 잔디 광장. 무료로 개방돼 시민들이 언제든 찾아가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연합뉴스·순천시

10년 만에 다시 열린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개장 5개월 만에 관람객 600만명을 넘었다. 전남 순천은 인구 28만명에, 면적은 서울의 1.5배나 되는 도·농 복합시다. 지방 도시 순천의 도전이 성공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작은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당선된 노관규 시장은 엑스포 유치전에 들뜬 여수, 포스코가 있는 산업도시 광양 옆에서 초라해지는 순천의 미래를 고민한 끝에 “생태도시를 만들겠다”고 했다. “명태, 동태도 아니고 생태? 천지사방 산과 들인데 생태도시는 무슨...” 부정적 반응 일색이었다. 그래도 남들 안 가는 길에 도전했다. 기업이나 국제 행사 유치 대신 ‘흑두루미 1000마리 유치’를 시정 목표로 잡았다. 당시 순천만습지에는 멸종 위기 흑두루미가 한 해 167마리쯤 왔다. 전 세계 흑두루미 1만5000마리 가운데 1만여 마리가 찾는 일본 이즈미시(市)에 견학 가 흑두루미가 먹이 먹으러 내려앉다 전깃줄에 걸려 죽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순천만 농민들을 설득해 전봇대 282개 뽑는 일부터 했다. 그 자리에 친환경 농업을 했다. 농민들이 철새 먹이를 주며 순천만습지 지킴이를 했다. 정성을 쏟으니 겨울철 흑두루미가 3500마리 넘게 왔다. 다른 철새들도 몰려 장관을 이뤘다. 한 해 13만명이던 관광객이 300만명으로 늘었다.

또 고민이 생겼다. 도시는 팽창하고 관광객 급증으로 철새 도래지가 위협받았다. 사람 사는 도시와 철새 사는 순천만습지 사이에 ‘에코 벨트’를 만들기로 했다. 그것이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였다. 정부 예산 타내려고 국제 행사를 유치한 게 아니었다. 국내에 정원 문화가 생소해 시장과 순천시청 공무원들이 정원이 발달한 유럽 등지를 발 부르트도록 다니며 배웠다. 송전 철탑 12개를 지중화하고 정원을 조성했다. 하지만 노 시장이 재선 임기를 안 채우고 총선 출마한 바람에 2013 박람회는 후임 시장하에서 열렸다. 그래도 실무에 정통한 순천시 ‘지방’ 공무원들이 차질 없이 치뤄냈다.

국회의원 낙선하고 10년 야인 생활 끝에 지난해 노관규 시장이 무소속으로 당선돼 복귀했다. 2023정원박람회를 9개월 남긴 시점이었다. 생태도시 비전을 제시했던 시장, 정원박람회를 치러본 순천시 공무원들이 짧은 시간에 박람회를 차질 없이 준비했다. 저류지에 넓은 잔디 광장을 조성하고 아스팔트 차도 1.2㎞를 덮어 시민들이 산책하는 잔디길로 만들었다. 더 넓고 근사해졌다.

멋진 경관보다 더 주목해야 할 건 순천시가 보여준 지방 행정의 놀라운 모범이다. 지자체장의 창의적 선택과 리더십, 지방 공무원들의 실행력과 헌신, 시민들 협조가 삼위일체를 이룬 덕분이다. 노 시장은 퇴직 공무원 최덕림씨에게 박람회 총감독을 맡겼다. 순천만습지 복원, 2013 박람회를 책임졌던 ‘지방 행정의 달인’이다. 조직위 운영본부장을 맡은 백운석 국장에게는 파견 공무원 75명 선발권을 줬다. 75명 가운데 절반이 10년 전 박람회를 치러본 경험자들이다. 이들이 팀을 이끌었다.

박람회 예산 2000억원 가운데 국비 지원은 7.5%, 전남도비는 15.5%다. 60% 이상을 순천시가 부담했다. 박람회 수익금까지 합해 77%를 자체 조달했다. 인근 여수, 광양에서 1인당 30만원씩 재난 지원금 뿌릴 때 노 시장은 “그 돈 받는다고 살림 펴는 것 아니다”라며 시민들을 설득했다. 순천 시민들이 포퓰리즘을 포기한 예산 800억원이 정원박람회에 투입됐다. 순천의 성공을 보려고 서울, 부산, 경기도 등 67개 지자체장을 비롯해 전국 160곳 지자체 공무원들이 다녀갔다.

전북도는 정반대로 갔다. 새만금 잼버리는 2006년부터 8년간 전주 시장을 지내고 2014년 전북도지사에 당선된 전임 송하진 지사가 유치했다. 일회성 국제 행사로 정부 SOC 예산을 끌어내는 구태의연한 방식이다.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도 아니다. 그마저도 대충 했다. 사기꾼 논리와 지역 이권이 판쳤다. 이스타항공 배임·횡령으로 징역 6년형을 선고받은 이상직 전 의원 같은 사람이 “잼버리 유치에 국제 공항이 높은 점수를 받는다”며 새만금공항을 주장했다. 지방 공무원들은 잼버리 핑계로 해외에 놀러갔다. 간척지가 널렸는데 근 2000억원 들여 갯벌을 졸속 매립했다. 벌레 들끓고 질척거리는 땅에 10여 일 사용하고 철거할 더러운 화장실, 부실한 샤워장이 세워졌다. 순천은 철새도 소중히 대접하는데 전북도는 비싼 돈 내고 참가한 세계 청소년들에게 바가지 씌워 불량 수련 상품을 제공했다. 부지 매립비와 잼버리 예산 합해 3000억원이 허투루 쓰였다. 감사원 감사가 시작되니 “전북도에 책임 떠넘기면 안 된다”고 성명을 냈다. 그럴 일이 아니다.

잼버리 파행은 정부 탓이라는 둥 또 지역주의 방패 뒤에 숨어 정치 공방만 벌이면 희망이 없다. 지방 행정의 ‘우등생’ 순천에 달려가 성공 요인을 배우고 그 잣대로 스스로 ‘실패 백서’부터 쓸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