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애초 미인의 초상은 실제 모델을 앞에 놓고 그린 것이 아니었다. 제아무리 뛰어난 미인도 어딘가 결점이 있기 마련인지라, 고대 화가는 이 여자의 눈, 저 여자의 코, 또 다른 여자의 입 등을 끌어모아 조화로운 이상형을 완성해냈다. 그렇게 만든 초상을 통해 가령 눈은 어때야 하고, 코는 어때야 한다는 식의 기준이 자리 잡았다.

문학은 미술보다 유리한 측면이 있다. 시각적으로 그려진 미인에 대해서는 이렇고 저렇고 이의를 제기해도, ‘미인’이란 단어 자체는 반론이 불가하다. ‘미인’이라 하면 미인인 줄 아는 것이고, 구체적으로 어떤 미인인지는 각자 머리에 떠올리면 된다. 귀에 들린 멜로디보다 들리지 않은 멜로디가 더 달콤하듯(존 키이츠), 형언되지 않은 아름다움이 더 유혹적일 수 있다.

그러나 문학의 숙명은 들리지 않는 것을 듣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에, 시인은 무모한 줄 알면서도 여인의 아름다움을 경쟁적으로 서술해왔다. 호메로스는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헬렌에게 ‘흰 팔’과 ‘아름다운 금발’을, 이탈리아의 시인 페트라르카는 영원한 연인 라우라에게 ‘황금빛 머릿결’과 ‘깊고 빛나는 눈’과 ‘천사의 걸음걸이’를 부여했다. 단테가 읊은 구원의 여인상 베아트리체는 ‘별보다도 밝게 빛나는 에메랄드 색 눈’과 ‘천사의 목소리’를 지녔다. 여신과 마돈나에 비유된 저 경이로운 자태의 공통분모가 서구 미인의 전형이다.

얼핏 바비 인형과도 겹쳐지는 이 전형에 반기를 든 것은 현대의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낭만주의 시인들이었다. ‘어떤 소설을/ 펼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그녀의 초상. 무척이나 아름다워/ 나도 한때 사랑했건만,/ 이제는 너무나 지겨워졌다.’(푸시킨) 낭만주의 예술관에 걸맞게, 미인에게도 독창성과 개성이 필요했다. 그래서 남들이 다 말하는 아름다움이 아닌 아름다움, 대칭적 조화가 아닌 조화로움을 드러내기 위해 부정 어법을 선택했다. 무엇이 아름다운가보다 무엇이 아름답지 않은가를 말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에 등장하는 타티아나, 무수한 미녀를 압도하는 그녀의 아름다움은 이렇게 묘사된다.

‘서두름 없이/ 차갑지도 수다스럽지도 않았고,/ 누구에게도 불손한 시선 주는 법 없이/ 억지로 관심 끌려 하지 않았고,/ 남들 같은 가벼운 찡그림도 없었고,/ 남들 따라 부리는 교태도 없었다.’ ‘아무도 그녀를 미인이라 칭할 수/ 없겠지만, 그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틀어 발견되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vulgar(천박함)라고 시인은 이어서 썼다. 번역 못 하겠다고 너스레 떨며 영어 단어 그대로 인용했다.

이후 문학에서 미인의 전형은 그리 유효하지 않아 보인다. 틀에 매인 정형성(즉 상투성)은 풍자 대상이 될 뿐이다. ‘vulgar(나도 번역하고 싶지 않은 말)’하게 느껴진다. 여성의 육체적 매력을 익히 잘 알아 두려워한 톨스토이는 그래서 그랬는지 소설 속 표준 미인들을 미워하며 아예 죽여버렸다. ‘전쟁과 평화’의 대리석 미인 엘렌을 알 수 없는 병으로 급사시키고, 안나 카레니나는 철로에 뛰어들게 했다. 그가 사랑한 여성 인물(샘솟는 생명력의 나타샤, 사려 깊은 눈길의 마리아)은 미인 아닌 미인들이다.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의 소냐 역시 예쁘다 하기에는 지나치게 창백하고 야위었으며, ‘백치’ 속 팜파탈 나스타샤에게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비범한 아름다움이 있다. 더 할 길 없는 고통을 품은 아름다움이다. ‘닥터 지바고’의 파스테르나크를 매혹한 것도 고통과 타락의 상처를 수반한, 말하자면 흠집 난 여성의 아름다움이다.

러시아 문학을 포함해 모든 문학의 회랑은 저마다 살아 있는 입체적 미인상으로 풍요롭다. 그곳에서는 아름답지 않은 여인도 쉽게 아름다워진다. 그녀는 가식을 거부하고, 진부함을 외면한다. 유행을 불러올 수는 있어도, 유행을 따르지는 않는다. TV·광고에서 접하는 복제판 아름다움과 정반대다.

소유나 정복 혹은 텅 빈 자기과시의 덫에서 미인을 해방하는 힘은 그러므로 언어에 있다. 새롭게 말할 수 없다 싶은데도 새롭게 말하려는 문학의 관성은 나만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미인을 닮았다. 순수문학만이 아니라, 때로는 대중문화 언어가 상식의 허를 찌르며 상상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록스타 신중현의 노랫말을 보라.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 그 누구의 애인인가 정말로 궁금하네.’(‘미인’) 과연,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