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왼쪽)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9월 15일 공개된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북스'에서 신간 '디케의 눈물'을 출간한 조국 전 법무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조 전 장관은 윤석열 정부를 '신검부' '대한검국'이라고 비판했다. /노무현재단 유튜브

간첩 혐의로 두 차례 구속됐던 골수 주사파 민경우는 86세대 무용담은 걸러서 들어야 한다며 웃었다. 특히 고문·폭행담은 열 배, 스무 배쯤 과장된 것이라고 했다. “같은 시기 군대 폭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었고, ‘박종철 사건’ 이후 고문이 급속도로 사라졌는데도, 86세대 신화화를 위해 공권력의 악마성을 끊임없이 재생시킨다고 했다.

운동권이 제도권에 대거 입성한 문재인 정권 들어 86세대 신화 만들기는 절정에 올랐다. 문 정부 출범 직후 개봉된 영화 ‘1987′이 대표적이다. 학생운동을 절대선으로 띄우기 위해 치안본부 대공처장(김윤식)을 빨갱이 척결에 광적인 사명감을 가진 악의 화신으로 묘사했다. 형사들이 아무 때나 교회, 신문사에 난입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도 등장한다. 87년 내내 거리에서 살았다는 민경우는 “올림픽을 1년 앞둔 1987년의 대한민국이 무법 천지였겠냐”며 “문 정권의 86세대는 70년대 유신 투쟁을 한 선배들의 고초를 자신도 똑같이 겪었다는 과대망상으로 스스로를 영웅화하고 보수 진영을 악마화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적폐 청산이 진행됐다. 강준만 교수는 이를 ‘퇴마 정치’라 명명했다.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는 퇴치해야 할 또 하나의 ‘악마’가 탄생했다. 조국 법무장관 임명에 반기를 든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정권 초기 특수부를 앞세운 적폐몰이에 무려 4명이 자살했을 땐 침묵했던 이들이, 조국 사태가 터지자 ‘검찰 개혁’을 외치며 서초동으로 몰려간 이유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검찰 악마화는 더욱 격화하고 있다. 그 선두에 대깨문이 ‘검찰 개혁의 희생양’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라 추앙했던 조국 전 장관이 있다. 딸 조민이 기소됐을 때 “차라리 나를 남산으로 끌고 가 고문하라”는 과대망상성 발언을 했던 조 전 장관은, 이달 초 ‘대한검국에 맞선 조국의 호소’라는 부제를 단 책을 출간한 뒤 최강욱 전 의원,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의기투합해 대통령 탄핵 분위기를 띄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발언 수위가 북한의 ‘정치적 미숙아’ ‘외교 백치’ 수준을 능가한다. 최강욱은 “전두환의 하나회에 버금가는 윤석열의 ‘신검부’가 법치주의를 완전히 도륙하고 있다”고 했다. 조국은 “용산이 전체주의에 장악됐다. 검찰권이라는 무력을 가진 윤 정권과 국민의 충돌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며 제2의 촛불을 암시했다. 유시민은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 ‘전쟁’을 선포했다. “이건 게임이 아니라 상대를 말살하려는 전쟁”이라고 규정한 그는 “기싸움에서 밀리면 진영은 무너진다. 당대표직 내려놓지 말고 옥중 출마, 옥중 결재하라”고 선동했다.

조국의 허언대로 “깨어나 보니 일제시대”에 살고 있다고 믿는 걸까. 이들의 황당한 폭주엔 믿고 의지하는 광신도 팬덤이 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조폭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배신자 색출 광풍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민경우는 “주사파는 합리와 이성을 배제한 사이비 종교였고, 한 사람이라도 내 편으로 전취(戰取)하기 위한 선전·선동 기술은 지금도 대물림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거대 야당의 퇴마 정치는 성공하기 힘들 것 같다. 조국은 검찰이 국민들 공포의 대상이 됐다고 했지만, 검찰이 무서워 못 살겠다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공포로 치자면, 검찰보다 백주 대낮의 묻지 마 폭행범과 스토킹 살해범들이 훨씬 무섭다. 이들을 한 방에 퇴치하지 못하는 검찰의 무능과 나약함에 혀를 차는 중이다.

압수 수색을 백 번 했든 말든 그건 죄 지은 사람들 사정이다. 혐의가 너무 많아 ‘직업이 피의자냐’는 말까지 듣는 이재명 대표 아니던가. 신검부, 대한검국이라는 얄팍한 조어 선동에도 더는 속지 않는다. 한·미·일 군사 협력을 깨기 위해 반일 감정이란 약한 고리를 흔들어 후쿠시마 오염수를 선동했던 것처럼, 당대표 구속을 막고 총선 정국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반검찰, 반독재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는 걸 이미 많은 국민들이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혁신하지 않으면 내년 총선에서 백전백패 한다”는 친노 중에 친노 조기숙 교수의 말은 옳다. 지금이 그 절호의 기회다. 검찰을 비난하기 전에 수많은 민주화 동지들이 왜 눈물을 삼키며 민주당을 떠나갔는지 이제라도 귀 기울여야 한다. 65년생 투사 조국은 “정의의 여신 디케가 검찰 폭정에 눈물을 흘린다”고 했지만, 65년생 투사 민경우는 “친구야, 이제 좀 솔직해지자. 정의란 사실 앞에 정직한 것”이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