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국회에서는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이 있다. 민주당은 사실상 부결(否決)을 예고한 상태다. 실행되면 헌정사에서 두 번째가 된다.
첫 번째는 1988년 7월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이었다. 노태우 정권 출범 직후에 ‘2차 사법 파동’의 여파였다. 전두환 정권이 임명한 김용철 대법원장을 당시 헌법 개정에 따라 노태우 대통령이 재임명하려 하자, 소장 판사들이 궐기해 사퇴를 이끌어 냈다. 후임으로 지명된 ‘정기승 전 대법원 판사 카드’도 여소야대 정국에서 무산됐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사법부 독립, 명분이 확실했다.
지금 민주당은 이균용 후보자의 도덕성, 준법 의식, 균형 감각의 부족을 부결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누구를 대법원장 후보자로 선택하더라도 민주당은 이를 부결시키고자 할 것이라는 얘기를 이균용 후보자가 지명되기 전부터 들었다. ‘김명수 대법원’ 내부 사정에 밝은 한 법조인은 당시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키고 대법원장 대행 체제를 내년 초까지 끌고 가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했다.
내년 2월 대법원은 상당한 규모의 일선 법원장과 수석부장 판사들을 교체해야 한다. 만약, 그때까지 대법원장이 공석이면 민변 회장 출신인 김선수 대법관이 대법원장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대법원장이 공석인 지금, 대법원장 권한대행인 안철상 대법관이 내년 1월 1일 민유숙 대법관과 함께 임기 만료로 퇴임하면 다음 선임이 김 대법관이다.
김선수 권한대행 아래에서 ‘김명수 대법원’의 논란 많은 법관 인사를 담당했던 김상환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내년 2월 인사 판을 짜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일선 판사들 사이에서는 “‘알박기’ 인사를 통해 ‘김명수 체제 시즌2′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 법원행정처가 대법원장 권한대행이 여러 권한을 행사하는 쪽으로 법률 검토를 지시했다가 내부 반대에 부딪혔다는 얘기도 들린다. 윤석열 정부도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사법 정의의 최후 보루로 불리는 대법원장 자리가 이처럼 노골적으로 법원 내·외부의 정치적 계산 한복판에 있었던 적은 없었다. 이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맞닿아 있다. 이 대표 사건 말고도 법원이 압수·구속영장 발부와 유무죄를 판단할 민주당 관련 사건들도 적지 않다.
이 대표는 대장동·위례 특혜 사건, 성남FC 제3자 뇌물 사건, 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 사건으로 기소돼 있고 재판 위증교사 사건, 백현동 특혜 사건,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기소를 앞두고 있다. 이 여러 사건이 몽땅 무죄가 나오는 걸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이 대표로서는 2027년 대선 전까지 확정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에 사력을 다해야 하는 처지다. 지금 진행 중인 재판에서도 이 대표 측은 시간을 최대한 끄는 전략으로 임하고 있다.
민주당은 오늘 본회의 직전 마지막으로 득실(得失)을 따져 볼 것이다. 이 대표 영장 기각의 기세 때문에 “대법원장감이 아니다”라는 목소리가 크겠지만, 막상 부결이 되면 ‘당대표 생존을 위해 사법 공백을 만들었다’는 비판이 커질 것이다. 이것이 판사 사회를 자극할 수도 있다. 그저께 대장동·위례 사건 재판부가 이 대표 측이 건강 악화를 이유로 낸 공판 연기 요청을 불허해 이 대표는 오늘 오전 법원에 출두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곧바로 ‘김명수 체제’와 대척점에 있던 새로운 후보자를 지명한다면 그때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모로 이 대표의 선택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