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팩토리’는 미국 자동차 회사 GM의 폐쇄된 공장을 인수한 중국 기업 푸야오(福耀)가 2000명의 미국 노동자들과 원팀이 되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2020년 아카데미 수상작인데, 기업주는 악(惡), 노동자는 선(善)으로 그리길 좋아하는 한국 영화 풍토에선 나오기 힘든 작품이다. 노사 어느 편도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GM의 절반으로 깎인 임금, 열악한 작업 환경에 대한 근로자의 분노만큼 기업주의 고뇌도 담았다. 초등 학력이 전부지만 세계적인 자동차용 유리 제조 업체를 일군 차오 회장은 노조를 반대하는 자신에 비난이 쏟아지자 이렇게 묻는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많은 공장을 세웠다. 내가 평화를 앗아가고 환경을 파괴한 걸까. 내가 사회에 공헌한 사람인지 범죄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 다큐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부가 제작했다. 2017년 백악관을 떠난 이들은 ‘시골에 파묻혀 잊혀지기’나 ‘후임 대통령 비난하기’에 몰두하지 않고 “미래 세대를 위한 콘텐츠 제작”으로 진로를 정했다. ‘크립 캠프: 장애는 없다’, ‘우리의 위대한 국립공원’, ‘일: 우리가 온종일 하는 바로 그것’ 등 발표한 작품만 10편이 넘는다. 메시지가 한결같다. 전쟁과 기후변화, 민주주의 위기로 혼돈에 빠진 세상에서 혐오 대신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함께 살아갈 해법을 찾자는 것이다. ‘아메리칸 팩토리’ 제작을 결정한 것도 “세상의 문제를 흑백으로 나누지 않고 모두의 관점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라고 오바마는 말했다.
그 때문인지 오바마 부부의 인기는 퇴임 후에도 식을 줄을 모른다. 대선 후보로 끊임없이 호출되는 미셸 오바마의 행보는 더욱 강렬하다. 북투어, 팟캐스트를 통해 젊은이들의 멘토로 활약하는 그녀는 가난한 형편에 일도 하고 공부도 해야 하는 멕시코계 여고생에게 “별 볼일 없어 보이는 그 굴곡의 삶이 네가 가진 진짜 힘”이라 응원하고, 애리조나 원주민 청년들에겐 “어떤 상황에도 학교를 포기해선 안 돼. 네 삶과 성취로 널 증명해야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격려한다.
만나는 모든 이의 얼굴에 웃음꽃, 눈물꽃을 피우는 이 부부를 보면서 대중의 마음을 얻는 비결이 뭘까 생각했다.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데다 달변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정치인은 차고 넘친다. 진짜 비결은 ‘우리도 당신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겸손, 정확히는 겸손해 보이는 ‘태도’에 있다.
오바마는 고공에 매달려 자유의 여신상 횃불을 닦는 인부들처럼 대통령이란 자리에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다고 회고록에 썼다. 미셸은 백악관 직원들의 시중을 마다하고 두 딸의 방을 스스로 치우게 했다. 그들 역시 가짜 뉴스와 인신공격에 시달렸다. 버락은 이슬람 교도에 동성애자란 공격을 받았고, 미셸은 남편과 주먹인사를 하는 ‘성난 흑인 여자’로 묘사됐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자신을 혐오하는 국민도 끌어안아야 분열을 막고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오바마 재임 동안 백악관이 국민의 집(People’s House)으로 칭송받은 이유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용산으로 이전한 대통령실 이름을 ‘국민의 집’으로 명명하고 싶어했다. 국민의 집(folkhemmet)은 ‘국가는 모든 국민을 위한 좋은 집이 되어야 한다’는 스웨덴 복지국가의 이념이다. 누구도 특권의식을 갖지 않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으며, 독식하는 사람도, 천대받는 사람도 없는 집. 다분히 이상적이지만 윤 대통령 또한 이런 국가를 만들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집권 2년 차에 임하는 ‘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 “태도의 차이는 사소하지만 결과의 차이는 거대하다”는 말은, 윤 대통령이 롤모델 삼은 윈스턴 처칠이 했다. 무너진 안보와 외교를 재정비하고 국가 정체성을 바로세워야 했던 집권 초기엔 불도저처럼 강한 리더십이 필요했지만, 중산층도 우유 한 통 집어 들기 겁날 만큼 고물가가 민생을 강타한 시기엔 겸손과 포용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거대 야당의 횡포로 개혁은 시작도 못 했는데 ‘검찰 독재’라는 선동이 선거판을 흔들게 할 수는 없지 않나. 오만과 불통의 오명도 대통령 스스로 걷어내야 한다. 사과하고 책임지길 두려워하면 민심이 돌아오지 않는다.
축구대표팀의 A매치를 보다가 김민재에게 매료됐다. 그 철벽 가슴에 부딪혀 머리가 깨지더라도 영광이겠다 싶었다. 그러나 강철 수비만으론 골이 터지지 않는다. 이강인의 낮고 빠르고 유연한 드리블도 필요하다. 대통령도 그렇다. 역습의 기회는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