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재 칼럼을 통해 한국과 한국인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더욱 커지게 만드는 다양한 역사적 그리고 현대적 변화에 대해 글을 써왔다. 그런데 한국의 동료들이 칼럼의 진정성에 의문을 표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서울 생활에 불만이 아예 없다고? 그럴 리가!”
사실, 서울이 무조건 좋기만 한 건 아니다. 그러나 주로 좋은 면에 대해 적는 이유가 있다. 우선, 한국에 손님으로 와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마음씨 좋은 주인장 덕에 여기서 먹고살 수 있는 것이다. 그 은혜를 괜한 불평으로 갚고 싶진 않다. 그리고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쓰는 칼럼에서 한국인들끼리 토론하고 결정해야 할 사안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현명치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모국을 포함한 그 어떤 나라도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기에 한국을 비판하는 것이 결코 편하지 않다. 그렇지만 ‘진정한 우정’이란 친구를 위해 허심탄회한 쓴소리도 할 줄 아는 것 아닌가! 그래서 오늘은 이 위대한 도시를 위한 ‘우정’을 조금 베풀어 보고자 한다.
서울의 경복궁에서 청와대를 거쳐 삼청동과 가회동까지 이어지는 구간이 눈부시게 발전했다고 적은 적 있다. 이 동네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그 웅장한 모습 이면엔 어지럽게 뒤엉킨 민간 개발의 민낯이 숨어 있다. 아름답게 복원된 고궁, 한옥, 그리고 세계적 수준의 박물관들로부터 몇 발짝만 더 가면 전혀 다른 경관이 펼쳐진다. 싸구려 티셔츠, 버블티, 뜬금없는 기념품 등을 파는 가게들이 규제 받지 않고 마구잡이로 들어서 있다.
물론 이러한 가게들이 필요하나 가게가 주변과 조화를 이루면 더 좋겠다는 뜻이다. 특히 한복(이라고 주장하는 의상)을 대여해 주는 가게가 많은데, 아이디어는 좋지만, 한복의 전통미를 해치는 게 아닐지 우려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한적하고 아름다워야 할 가회동의 좁다란 길목이 관광버스로 꽉 막힌 모습이다. 한때 선비와 양반이 사색을 즐기며 거닐던 공간이, 이제 셀카 삼매경에 빠진 시끄러운 관광객으로 가득 차버렸다니…한편으론 한국인 특유의 기업가 정신이 대단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서울의 아름다운 역사와 전통을 관광객에게 빨리 선보이려다가 오히려 해치게 되는 게 아닐까 걱정도 된다.
차라리 관광버스의 수를 줄이고, 동네 안에서 대부분의 영업이 이뤄지도록 하는 건 어떨까. 가령, 관광객들이 가장 즐겨 찾는 음식점은 그 동네에서 수십 년째 만두, 국수, 수제비를 파는 한식집이다. 한국산도 아닌 장신구를 판매하는 곳이 아니다. 최애 아이돌이 방송에서 추천한 떡볶이를 먹기 위해, 수년간 한자리를 지켜온 길거리 떡볶이 할머니 앞에 줄 서는 젊은 관광객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흐뭇해진다. 관광객 입장에선 버스를 타고 여러 문화유적지를 휙 스쳐 지나가는 것보다, 한국의 길거리를 직접 걸어보고, 한식을 천천히 음미하며, 오늘날 한국의 위상을 가능케 해준 역사를 느껴보는 게 훨씬 깊고 진한 여운을 남길 것이다. 어쩌면 관광버스가 관광객이 유의미한 경험을 할 기회, 서울이 좋은 추억을 선물할 기회를 뺏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걱정거리는 광화문 쪽 공공장소의 남용이 일상화됐다는 점이다. 물론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존중받아야 한다. 미국 외교관으로서 오랜 기간 해외에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지지해 왔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사실 광화문 집회들은 큰 규모가 무색하게 평화롭긴 하다. 정치 성향 불문하고 주변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경찰과 협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몇몇 집회들은 텐트를 세워두고 수년간 치우질 않는다. 광화문 행인의 길을 막고 풍경의 ‘옥에 티’가 되는데 어째서 이런 행태가 허용되는지 의문이다.
이러한 불편 사항은 서울의 대단한 아름다움에 비해 미미하긴 하다. 서울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균형이 약간 깨진 것뿐이다. 다시 균형과 특색을 찾을 수 있도록 사회지도층이 역할을 해주는 게 서울이 글로벌 문화, 무역 및·금융의 중심지로 떠오를수록 중요해지지 않을까. 어쩌면 ‘꼰대’ 같은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이곳에 머물며 한국의 세계적 부상에 계속 응원의 박수를 보낼 것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