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뉴스가 날아왔다. 가야고분군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희소식이다. 그때 두 귀를 쫑긋하게 세운 까닭은 경남 합천의 옥전고분군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지정 이전이나 지정 이후에나 여전히 같은 고분군이다. 하지만 이튿날부터 명함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게다가 바뀐 문패의 대문 앞에 서면 누구나 태도까지 달라지기 마련이다. 지역사회의 단체는 옥전고분군 가는 길에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축하하는 현수막을 경쟁하듯 내걸었다.
가야문화권인 합천군에 주민등록을 올린 지도 몇 십 년이 되었다. 자칭 답사 마니아임에도 불구하고 등잔 밑은 어두운 법이다. 구불구불한 길을 달려 찾긴 했는데 그동안 가지 못했던 핑계를 둘러대기 더없이 좋은 곳이다. 지역에서 대중교통편이 흔한 대구 혹은 진주 또는 거창으로 가는 번잡하고 익숙한 도로변이 아니라 일부러 따로 와야만 하는 한적한 길이기 때문이다. 하긴 고분을 조성할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황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관문으로 두 강의 뱃길을 이용한 교역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이제 물길은 길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도로가 대세가 되면서 저절로 변방이 된 것이다.
이른 가을날의 아침이슬을 밟으며 고분공원을 천천히 걸었다. 큰 능(陵)만 해도 족히 서른 개는 넘겠다. 가야 시대의 지배층 봉분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 사대부 묘도 있고 서민들의 나지막한 무덤까지 함께 어우러진 곳이다. 또 주민들이 들어와서 농사를 짓는 밭과 작은 과수원도 보인다. 과거가 겹겹이 쌓인 곳이지만 동시에 현재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1985년부터 십여 년 이상 발굴한 유물은 공원 입구에 새로 지은 합천박물관에 모셨다.
가야고분군은 7개 지역을 한 단위로 묶어서 등재했다. 혼자 하기 힘들면 여럿이 힘을 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묶음으로 세계문화유산 등록은 이미 몇 번의 선례가 있다. 조선왕릉은 40기를, 한국의 산지승원도 전국 일곱 개 사찰을, 서원(書院) 역시 아홉 곳을 모았다. 가야 고분군은 고대국가가 중앙집권화로 넘어가기 이전의 한반도 지방분권의 옛 문명 방식을 보여주는 가장 독보적인 증거로서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공인받은 것이라 하겠다.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 낮은 언덕에 형성된 옥전(玉田)은 우리말로 바꾸면 구슬밭이다. 지배층의 부장품으로 애용되던 목걸이와 귀걸이의 수많은 옥구슬 파편 조각들은 자연적인 비바람 혹은 인위적인 도굴 등으로 인하여 노천에 그대로 드러난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이런 광경을 예사로 보면서 살던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구슬밭’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인근에는 초계 정씨의 시조를 모신 옥전서원도 있다. 1789년 조선 정조 때 세운 건물이다. 삼백여 년 전에도 ‘옥전’이라 칭했다. 구슬이 많이 나오는 곳이라는 지명답게 박물관에는 출토된 옥구슬 꾸러미를 다량으로 소장 전시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구슬의 재료는 옥과 유리 등 귀한 보석류다. 합천 읍내 황강변에 있는 사찰 연호사(烟湖寺) 법당의 뒷면 바위에는 1928년 새긴 기도문이 남아 있다. 끝마무리는 옥구슬을 바치는 내용이다. ‘형자필향(亨子苾香)하오며 주산지양(珠散之煬)하나이다<향을 살라 재(齋)를 모시면서 옥구슬 뿌려 공양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