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 /연합

2001년 9·11 테러를 조사한 미국 의회 진상 조사 보고서는 정보 당국에 기습 공격을 저지시킬 수 있는 기회가 10번이나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뉴욕의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과 국방부 건물을 공격하여 3000여 명의 인명 피해를 발생시켰던 항공기 자살 테러 사건을 막을 수 있는 사전 징후를 정보 당국들이 여러 차례 놓쳤다는 것이다. 국가안전보장국(NSA)은 테러 발생 9개월 전에 항로를 답사하기 위해 쿠알라룸푸르를 방문한 테러 분자 세 명의 통화를 감청하였으나 각 정보기관에 전파하지 않았다. 중앙정보국(CIA)은 6개월 전에 태국으로부터 테러범이 LA행 비행기에 탑승했다는 정보를 받고도 연방수사국(FBI)과 공유하지 않았다. FBI는 미심쩍은 이슬람 비행 훈련생을 조사하지 않고 단순 추방하여 용의자 추적에 실패하였다. 요컨대, 통합된 정보 공유 체제의 미작동으로 미국 본토는 전대 미문의 테러 참사를 당했다.

9·11 테러는 정보기관의 사전 위기 경고 소홀로 인한 정보 실패(intelligence failure) 유형이다. 빨간색 경고등이 작동되지 않은 사례는 부지기수다. 1941년 제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진주만 공격, 1973년 이집트의 이스라엘 기습 작전인 욤 키푸르 전쟁이 있으며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등은 국가정보학 교과서에서 사례 연구로 다루어진다.

위기 경고도 최종적으로 휴민트(HUMINT)가 판단하기 때문에 일부 실패는 불가피하다. 정보 실패는 대부분 정책 실패에서 비롯된 정부 실패(government failure)에서 기인한다. 우선 정보 분석의 정치화 현상이 단초가 된다. 정책 결정권자의 구미에 맞게 분석 보고서를 맞춤형으로 작성한다. 2002년 CIA는 이라크 사담 후세인이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공격 의도에 맞춘 오판 보고임이 훗날 드러났다.

정보 실패를 국가정보학이라는 학문적 견지에서 들여다보는 것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때문이다. 창과 방패의 양측 전략을 정보전의 관점에서 판단해보자.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첨단 ICT 시대에 어떻게 S급 첩보에 해당하는 하마스의 침공 계획을 놓칠 수 있었는지는 미스터리다. 고가의 아이언돔(iron dome)으로 방어망을 구축했지만 사전에 인지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가자지구 병원 폭격에 관해 하마스의 통화를 감청해서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모사드(Mossad)인데 2년간 준비해온 공격 첩보를 입수하지 못한 원인 분석은 타산지석 차원에서 불가피하다.

필자는 최근 1년 동안 뉴욕타임스 국제면에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 관련 기사가 빈번하게 보도되는 것을 유심히 지켜봤다. 과거 민주평통 사무처장 재직 시절 이스라엘 정보 당국자들과 회동한 적이 있다. 그들은 평통이 재외 동포를 포용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 정책에 관심을 보여서 필자도 상대적으로 이스라엘의 해외 유대인 관리 정책을 주목하였다. 미국 하버드에서 박사 과정까지 수학하고 귀국하여 1988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2022년부터 세 번째 총리직을 수행한 그가 강경 극우 정책을 추진하였지만 재임 기간 부패 혐의로 기소되고 총리 퇴진 시위가 있었다는 부정적인 뉴스도 심심찮게 나왔다. 심지어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부 무력화 정책이 그의 부패 혐의에 대한 ‘방탄용 입법’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지난 7월 이스라엘의 저명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교수가 네타냐후가 사법부 권한을 무력화하는 법안을 재추진하는 것을 극렬 비난하는 데에 매우 놀랐다. 그는 “헌법도, 상원도, 연방 구조도 없는 이스라엘에서는 중앙정부 권력 견제 방안은 대법원뿐”이라면서 “정부의 대법원 장악이 성공한다면 이를 제한하는 메커니즘은 없게 된다”고 우려했다. 하라리의 명저인 ‘사피엔스’는 필자에게 미래 예측의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내부에 심상치 않은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시민사회는 거세게 반발하였다. 예비군 4000여 명이 사법 조정안에 반대해 예비군 복무 거부 서한에 서명했다. 이스라엘군 영웅인 특수부대 샤에테트13 사령관 출신 네보 에레즈 예비역 대령도 동참했다.

그래픽=김하경

외부의 적은 멀리 있어도 존재가 파악되지만, 내부의 적은 가까이 있으나 가늠하기 어려웠다. 유대인 공동체의 본산인 텔아비브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파열음을 극단주의 무장 세력 하마스가 놓치지 않았다. 첨단 AI 기술에 의한 영상 정보(IMINT)와 감청 등 신호 정보(SIGINT)를 피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땅굴 메트로를 이용하는 뉴하이브리드 군사작전을 구사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철저한 위장 평화 전술을 구사하여 이스라엘의 의심을 풀게 하였다. 모사드뿐만 아니라 국내 정보 기관인 신베트(Shin Bet), 군(軍) 정보기관인 아만(Aman)의 창끝을 무디게 하였다. 사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정보력은 미국의 CIA, 영국의 MI5, 프랑스의 DST, 독일의 BfV, 러시아의 KGB 등 선진국 정보기관과 비교해도 최상급이었다.

가자지구 시가전이 시작된 후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의 전쟁 의도에 대해 어떤 보고도 받은 적이 없고, 모든 정보기관이 하마스가 도발을 단념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는 등의 책임 회피성 입장을 ‘X’(옛 트위터)에 올렸다가 여론의 포화를 받고 해당 게시물을 내렸다. 그는 “내가 잘못했고 내가 한 말은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고 사과한다”며 “모든 안보기관의 수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꼬리를 내렸다. 최고 정보 사용자(user)의 공개적인 정보기관 책임론은 금기 사항이다. 정보기관 책임론은 곧 총리의 관리 책임이기 때문이다. 지난주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무려 76%가 총리의 퇴진을 원하였고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막지 못한 책임은 네타냐후 총리가 44%, 군 지휘부는 33%에 그쳤다. 전쟁 중에 장수를 교체하지 않는다는 병법의 불문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전쟁 중 총리 퇴진 요구다.

최근 미국 뉴욕타임스는 “7일 새벽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해 올 때까지 네타냐후를 깨울 만큼 심각한 상황이라고 생각한 참모는 아무도 없었다”고 참사 당일의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정보 실패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모든 정보기관이 하마스의 공격 능력을 과소평가하여 무전 도청을 1년 전에 중단했다고 한다. 네타냐후의 사법부 무력화 정책에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정보의 정치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동시에 이스라엘의 모든 정보 자산이 ‘친이란 헤즈볼라’에 집중되었다. 정보 자산의 레이더 방향이 하마스의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에 휘둘려 정반대로 향했다. 정보 당국자들이 의회를 방문해서 기습 가능성을 브리핑했지만 귀를 기울이는 의원들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스라엘의 3대 정보기관들은 하마스의 공격 가능성을 총리실에 보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빈번한 공격 가능성 경보에 무덤덤해지는 ‘늑대 소년 효과’와 함께 국내 정치의 분열에 따른 정보 당국의 보고 혼란이 치명적이었다. 정보력과 군사력을 과신하는 오류가 발생하였고 방심과 자만심이 정치 분란과 연계되면서 정보 실패로 귀착되었다. 추후 하마스 기습 공격에 대한 진상 조사 보고가 이뤄지면 다양한 정보 자산의 위기 경보 시그널이 작동되지 못한 원인이 밝혀질 것이다.

북한의 기습 공격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못지않다. 기습 공격의 질과 양적 측면에서 한반도는 중동에 버금간다. 1999년과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1·2차 연평해전,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포 포격 등 예측 불가의 공격은 부지기수다. 40km 북측 지점에 적의 방사포 1천문이 수도권을 겨냥하고 있다. 하마스의 공격 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피해는 이스라엘과는 규모가 다를 것이다. 텔아비브의 국내 정치 분열에 따른 정보 실패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분명하다. 국가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은 물론 군과 경찰 등 부문 정보기관들이 정보의 정치화 현상에 휘둘리지 않고 전문 역량을 발휘하도록 정치권이 종합 정보 시스템을 구축해주어야 한다. 정보기관 역시 정보 보고의 정치화 현상을 조심하면서 국가 안위 관련 징후를 포착하고 위기 경고음을 울리는 멸사봉공의 역할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스라엘판 9·11 테러에서 새겨야 할 징비록(懲毖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