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대구시장(왼쪽)과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6일 대구시청 산격청사에서 면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이날 홍 원내대표는 "영남과 호남의 주요 거점도시 연결을 통해 지방도시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며 정기국회 내 '달빛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 처리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최악으로 평가받는 21대 국회가 진기록을 남겼다. 여야 협치를 내팽개쳐 놓고는 느닷없이 헌정 사상 최다 공동 발의 법안을 탄생시켰다. 국민의힘 109명, 민주당 148명, 정의당 1명, 무소속 3명 등 261명이 무더기로 이름 올린 ‘달빛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일사천리로 심의 중이다.

애초 대구(달구벌)와 광주(빛고을)를 잇는 달빛철도 건설이 2021년 6월의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 계획’에 들어간 것부터가 이례적이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2년간의 연구 끝에 2021년 4월 22일 공청회에 공개한 잠정안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다른 철도 사업에 비하면 시급성이 떨어져 후순위인 24개 추가 검토 사업에 들어있었다. 두 달 뒤인 6월 발표된 확정안에서 24개 추가 검토 사업 중 유일하게 달빛철도만 ‘발탁’됐다.

당시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용섭 광주시장이 달빛철도 건설을 촉구하는 건의문을 총리한테 전달하고 그 며칠 뒤 2038년 아시안게임 공동 유치를 발표했다. 해당 지역 언론조차 “이전까지 두 도시 모두 아시안게임 유치와 관련해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는 점에서 다소 놀랍다” “대회 유치의 성사 여부를 떠나 달빛철도사업을 국가 사업으로 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을 정도다.

2년 전 확정된 4차 국가철도망의 44개 신규 사업 대부분은 사전타당성 조사, 예비타당성 조사 등 절차대로 순서를 기다리는 중이다. 대구와 광주는 영·호남의 정치적 힘을 무기로 또 욕심을 부렸다. 4차 계획에는 ‘단선·일반철도’ 건설을 전제로 4조5158억원의 예산이 잡혀있는데 홍준표 대구시장과 강기정 광주시장이 그보다 2.5배(11조2999억원) 더 드는 달빛고속철도 건설을 들고 나왔다. 총선이 다가오니 아예 예비타당성 조사도 면제해 주자고 여야 의원 261명이 특별법안에 숟가락을 얹었다.

고속철도 놓으면 84분, 일반 철도로 고속 운행하면 그보다 2분 더 긴 86분 걸린다는 사실이 알려지니까 고속철도를 고집하지는 않겠다고 약간 물러섰다. 그렇지만 대구와 광주가 주장하는 ‘복선·일반철도’ 건설에 최소 8조7110억원이 든다.

영·호남의 맹주 도시가 의기투합한 ‘달빛철도’는 크게 두 가지를 시사한다. 우선 대구와 광주는 ‘지방 균형 발전’ 차원이라는데 국가 전체의 철도 예산과 건설 계획을 보면 절대 그런 얘기가 안 나온다. 힘센 지자체의 불공정한 새치기에 가깝다. 국제 행사 간판 내세워 공항 등 SOC 예산 따오기가 주 목적이었던 새만금 잼버리와도 닮은꼴이다. 도로 투자에 밀려있던 철도 투자가 친환경적 교통 수단으로 재평가되면서 2000년 이후 확대됐지만 그럼에도 연간 나라 전체 철도 투자는 10조원이 채 안 된다.

우리나라의 수송 분담률은 철도가 11.5%(2021년)에 불과하고 도로가 88.3%로 월등 높다. 대구와 광주 사이에도 40년 전 건설되고 8년 전 2조원 예산을 더 들여 확장한 고속도로가 있다. 하루 통행량(2만2322대)이 전국 고속도로 평균(5만2116대)의 절반도 안 돼 기차 없다고 아시안게임 못 치를 것도 아니다.

둘째로 더 근본적 고민은 철도 놓아주고 아시안게임 치른다고 대구와 광주에 얼마나 도움 되겠느냐는 사실이다.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41조원 넘게 돈을 썼다. 그 중 37조원이 경기장 짓고 도로·철도 놓는 인프라 건설에 쓰였다. 수입은 1조원에 불과한 적자 행사였다. 2026년 일본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은 예산 10억달러(1조3000억원)로 치르는데 그조차 전면 재검토 중이다. 건설비가 2배 넘게 뛰어 선수촌 건립도 포기하고 경기장 주변 호텔을 활용한다. 수영·다이빙·승마 등은 350㎞ 떨어진 도쿄로 가서 경기 치르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4년 전 대전·세종·충남·충북이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2030 아시안게임 유치를 공동 추진했다가 무산됐다. 표면적 이유는 제출 기한 내에 유치 의향서를 못 냈기 때문이지만 지역 내 반대 여론도 적지 않았다. 적자에 탈도 많았던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을 타산지석 삼아 “명분도 실익도 없는 무분별한 국제대회는 철회해야 한다” “시민의 삶이 우선이다”는 반응들이 있었다. 대구와 광주가 곱씹어 봐야 한다.

지금 대구와 광주는 2028년에 결정되는 2038 아시안게임을 위해 철도 놓고 경기장과 선수촌 짓는 데 돈과 힘을 쏟아도 될 만큼 한가한 처지가 아니다. 젊은이들이 빠져나가고 아기가 안 태어난다. 발밑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영·호남의 교육·일자리·의료·문화 허브 기능을 하면서 인구 급감도 멈추고 주변 지자체와 광역 경제권을 형성해 지속 가능한 공생 방안을 찾는 것이 훨씬 시급하고 중요하다.

그런데 얼마 전 비수도권 대학이 100곳 넘게 경합해 10곳이 선정된 ‘글로컬대학 지원사업’에서 대구와 광주의 대학은 선정이 못 됐다. 정치적 입김을 배제하고 외부 전문가가 심사하니 기득권 내려놓은 대학, 지자체도 적극 협력해서 혁신안을 만든 곳들이 선정됐다. 정치 근육을 실룩이며 새치기로 ‘달빛철도’를 건설한들 그런 비전 결여된 ‘꼰대’ 마인드로는 달빛이 먹구름에 가리는 캄캄한 미래를 피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