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조영래는 장기표를 두고 “세상이 다 취해도 홀로 깨어 있으려고 하는 그 지나친 순수함이 병이요, 죄”라고 했다. 장기표 아내 조무하는 “남들은 ‘영원한 재야’라며 존경하지만 내가 볼 땐 그냥 바보”라고 했다. ‘모두가 행복한 정치’를 하겠다며 안 되는 길로만 골라 가는 바보 장기표가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깃발을 들었다. 지난 22일 가칭 ‘특권폐지당’ 창당 발기인 대회를 열고 신당 창당을 공식화했다. 그는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를 발족해 입법 촉구 등 여러 활동을 했지만, 지금 국회에는 기대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7번 출마해 7번 낙선. 제도권과는 인연이 없는 것 아니냐고 하자 “때가 왔다”고 했다.
◇내년 총선 화두는 특권 폐지
-’특권폐지국민운동’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뜨거워 창당을 결심한 건가.
“법률을 만들거나 개정해야지, 우리가 맨날 거리에서 외쳐봐야 국회의원 특권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절감했다. 내년 4·10 총선에서 특권 폐지를 사명으로 여기는 국회의원들을 배출할 것이다.”
-특권 폐지만을 목적으로 한 정당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특권 폐지를 매개로 한국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꿀 새로운 정치 세력을 만들 것이다. 대한민국의 현 상황을 봐라. 저출산, 자살률 등 기적처럼 나라가 붕괴할 수도 있는 위기다. 정치가 이걸 반전시켜야 하는데 기성 정치 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금태섭 신당, 이준석 신당에 장기표 신당까지 얹겠다는 건가?
“정치 혁신, 국회 혁신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지금처럼 큰 때가 없었다. 현실 정치가 지금처럼 국민에게 배격받은 때도 없었다. 다른 신당들은 나처럼 밀어붙이지 못한다. 나는 그들처럼 제도권 정치인들과 이해관계가 전혀 없어 특권 폐지 운동도, 정치 혁신도 할 수 있다.”
-’창당 전문가’란 비아냥이 있을 만큼 장기표의 개혁 시도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매번 실패했고.
“세상은 때가 와야 한다. 그때가 지금이다. 이번엔 실패하지 않는다.”
-정당은 돈과 조직이 있어야 만들 수 있을 텐데.
“때를 만나면 돈이 들어오고 사람도 몰려든다. 그렇잖아도 요즘 내 일과의 3분의 1은 돈 구하러 다니는 일이다(웃음).”
-장기표는 1급수라 물고기가 모여들지 않는다던데.
“내가 1급수라는 건 착각이다. 나는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다. 이번에는 윤리, 도덕이 반듯한 정치 세력이 나와 여야 없이 카르텔로 엮여 있는 한국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도덕 없이 능력만 있으면 그게 도둑놈이지 뭔가. 도둑들이 판치는 정치판을 국민들이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다.”
-신생 정당이 의원 1명 당선시키는 건 하늘의 별 따기일 텐데.
“어쩌면 당선보다 내년 총선에서 특권 폐지 붐을 일으키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특권폐지당이 불씨를 지피면 거대 양당도 동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연봉은 세계 1위, 실력은 꼴찌
-특권 폐지 운동은 윤석열 대통령 스승이라는 송상현 서울대 명예교수도 극찬했더라. 이걸 왜 시작하게 됐나.
“공직자가 특권을 누리면 안 되고 사익을 추구해선 안 된다고 나는 오래전부터 주장해왔다. 근소한 차이로 낙선했지만, 지난 총선 김해에서 출마했을 때도 국회의원 특권 폐지가 내 공약이었다. 공직자는 영어로 퍼블릭 서번트(public servant), 즉 공복(公僕) 아닌가. 종까지는 아니라도 머슴, 국민의 머슴이다. 국민의 심부름꾼이 되겠다 해놓고 특권을 누리면 되겠나. ”
-187가지나 된다는 특권을 들여다보니 왜 그렇게 의원 배지를 달려고 하는지 알겠더라.
“파렴치할 정도다. 연봉이 1억5500만원으로 미국 일본 독일 다음으로 높은데, 국민소득 대비로는 최고로 높다. 죄 짓고 재판을 받고 있거나 교도소에 있어도 월급이 나온다. 김남국처럼 잠적해 국회에 출석하지 않아도, 최강욱 이재명 노웅래 등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어도 월급이 나온다. 연봉은 세계에서 가장 높지만 일은 꼴찌 수준으로 못한다. 서울대 연구 자료에 따르면 국회의원 연봉 대비 의회 경쟁력에서 우리나라는 27국 중 26위였다.”
-연봉 외에 ‘의정 활동 지원비’라고 해서 1억2000만원이나 되는 돈도 받더라.
“입법 및 정책 개발비, 정책 자료 발간 및 의원 정책 홍보비, 업무 추진비, 사무실 소모품비, 의원 차량 유류비, 의원 차량 유지비 등 셀 수도 없고 중복되는 것도 허다하다.”
-문자 발송비 지원 명목으로 700만원도 받더라. 그래선지 홍보성 문자가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온다.
“그뿐 아니다. 설과 추석엔 400여만원씩 휴가비가 나가고, 강원도 고성의 국회수련원은 배우자의 직계존·비속 형제자매까지 사용하는 특권을 누린다. 해외 시찰비도 연간 2000만원을 지원받는다.”
-특권 중 특권은 후원금이라고 했다.
“국회의원은 1년에 1억5000만원을 후원금으로 받을 수 있고,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원까지 받을 수 있는데 선거에서 15% 이상 득표하면 선거 비용 전액을 국고에서 환급까지 받는다. 더 큰 문제는 총선이 아닌 대선이나 지방선거가 있는 해에도 국회의원이 3억원까지 후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돈을 어디에 쓰겠나. 재선을 위한 자기 선거운동에 쓴다. 정치 신인들이 국회로 진출하기 힘든 이유다.”
-보좌진도 9명이나 되는 줄 몰랐다.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은 국회의원 1명당 보좌진이 2~3명에 불과하다. 스웨덴은 국회의원 2~3명에 보좌진이 1명이다. 대한민국은 국회의원 1명당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연봉, 의정 활동 지원비, 보좌진 급여를 합해 한 해 8억원이 넘는다.”
-혜택은 누리면서 일은 안 하는 의원에게 책임을 물을 방법은 없나?
“그래서 특권폐지당 공약에 주민투표로 의원직을 박탈하는 ‘국민 소환제 도입’을 넣을 것이다.”
◇특권 내려놓겠다는 의원 7명뿐
-국회의원 자신들도 과도한 특권을 누린다고 생각하나?
“특권 폐지 운동을 시작하니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다선 국회의원이 우리가 무슨 대단한 특권을 누리냐며 발끈하더라. 여야 당대표, 원내대표에게 특권 폐지에 대한 의견을 들으러 가겠다고 하니 경찰이 막아섰다. 월급을 400만원으로 줄이고, 1억원이 넘는 의정 활동 지원비를 폐지하고 보좌진은 3명으로 축소하고 불체포 특권과 면책특권은 포기한다는 내용에 동의하냐고 의원 300명에게 질의서를 보냈다. 딱 7명만 동의한다는 답변을 보냈더라. 이게 우리 의원들 수준이다.”
-국회의원뿐 아니라 고위 공직자들의 전관 예우도 전관 범죄라고 비판했다.
“대법관을 지냈거나 법원장, 검사장을 지낸 사람들에 대한 전관 예우는 수사나 재판의 공정성 훼손을 넘어 법치주의를 파괴한다. ‘유전 무죄 무전 유죄’가 실제로 일어나 사법 피해자들을 만들어낸다. 법원과 검찰 고위직을 지낸 사람들은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없게 해야 한다.”
-양심에 맡겨야지 어떻게 법으로 강제하나.
“이걸 막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특권 카르텔은 사라지지 않는다. 곽상도 전 의원 아들의 50억원 수수를 무죄로 선고하는 걸 봐라. 총리, 헌재 소장 등 행정부 내 권력기관 출신 인사들이 대형 로펌이나 대기업 고문으로 취업해 과도한 수익을 취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특권이 사라지면 정치권에 진출하려는 인재도 함께 줄어들지 않을까.
“특권이 없어야 국가를 위해 진심으로 헌신하려는 사람들이 온다. 근로자 평균 임금을 받는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의 국회의사당 앞에는 의원들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가 빼곡히 서 있다. 선진국처럼 국회의원이 생계형이 아니라 봉사형이 돼야 한다. 그래야 힘들어서 임기 한 번만 지내고 물러난다. 우리처럼 죽을 때까지 국회의원 하려고 발버둥 치는 나라도 없을 거다.”
◇장기표는 몽상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명예훼손과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100만원을 선고받았더라.
“지난 대선 때 이재명 후보의 의혹을 공론화하며 대장동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집회를 했는데, 이것이 선거에 영향을 끼쳤다는 이유로 선거법 위반이 됐다. 벌금 납부를 거부하고, 서울구치소에서 일당 10만원에 준하는 노역형으로 대신하겠다고 했더니 검찰이 집행을 보류했다.”
-벌금을 안 내면 통장을 강제 압류당할 텐데.
“어차피 통장에 5만7000원밖에 없다. 벌금을 내주겠다는 분이 많은데 내가 거절했다. 증거가 차고 넘치는 죄인은 권력이 있다는 이유로 잡아넣지도 못하면서 나처럼 돈 없고 권력 없는 사람에게만 죄를 묻는 게 옳은가. 도둑은 안 잡고 도둑 잡으라고 한 사람을 잡는 게 말이 되나?”
-그래서 특권 폐지 운동에 더 열심을 내는 건가.
“지난 4월 16일 출범식에 1000명 넘게 왔다. 예상도 못 한 숫자였다. 5월 31일 국회 포위 집회엔 5000명이나 참여했다.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국민의 열망이 이렇게 뜨겁다. 특권폐지당의 국회 입성이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이유다.”
-장기표를 몽상가라고 한다.
“특권 폐지가 몽상인가? 정치에 대한 나의 꿈과 소신이 몽상이 아니라는 걸 우리 국민이 알아줄 것이다.”
-선거 철만 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조무하 여사는 남편이 신당을 또 만든다는 걸 알고 있나.
“알리지 않으려다 창당 발기인 모집한다는 광고 문안 한 장을 집에 던지고 나왔다.”
-저녁에 한 소리 들으셨겠네.
“잘했다고는 절대 안 하지(웃음). 그러나 내 생각이 상당히 옳다. 아내 또한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할 것이다.”
☞장기표
1945년 경남 김해 출생.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전태일 분신 사건으로 노동운동에 투신했고, 이후 민주화 운동, 노동운동을 하며 수배 생활과 감옥 생활을 반복했다. 90년대 이후 7차례 총선에 출마하며 제도 정치권 진입을 시도했으나 실패, ‘영원한 재야’로 불린다. 지난 4월부터 특권 폐지 국민운동을 전개했고, 최근 특권 폐지당 창당 발기인 대회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