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맥 박리 환자 헬기 이송 장면/ 사진=이대서울병원

지난 10월 중순 오후 6시쯤,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응급센터에 80세 남자 환자가 실려왔다. 진단은 복부 대동맥류로, 응급수술이 필요했다. 배 안 가운데를 가로질러 내려가는 대동맥이 큰 꽈리처럼 부풀어 오르면서 터지기 직전이었던 것이다. 놔두면 대형 출혈로 사망에 이른다. 이에 송석원 심장혈관외과 교수가 환자의 대동맥류를 제거하고 인조혈관으로 갈아 끼우는 응급수술에 들어갔다.

상황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4시간 후 밤 10시쯤, 서울의 반대쪽, 중랑구의 한 병원에서 대동맥 파열로 응급수술이 필요하다며 60대 환자를 급히 보내왔다. 이 환자를 수술실로 옮기던 중, 이번에는 구로구의 중소 병원에서 복부 대동맥류 환자가 있어 응급수술이 필요한데 갈 곳이 없다며 보냈다. 한 시간 후에는 흉부 대동맥 종양 출혈로 사경을 헤매던 70대 여성 환자도 들어왔다. 다음 날 아침까지 대동맥 환자 4명의 수술이 줄줄이 이어졌다. 대동맥류 출혈 수술은 초응급 고난도 수술로 웬만한 병원이 하루에 하나 하기도 힘든데, 한꺼번에 밀려든 환자 4명을 모두 살린 것이다.

그래픽=김현국

◇초응급 대동맥 의료에 도전

이대서울병원은 지난 6월 대동맥 혈관 병원을 열었다. 대동맥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으로 우리나라에서 최초이자 유일하다. 여기에 송석원 교수를 포함, 심장혈관 흉부외과 의사 3명이 상시 포진하고, 주간은 물론 응급과 야간 혈관 수술을 커버하는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7명이 배치됐다. 요즘 웬만한 대학병원들이 응급 중증 필수 의료 분야 투자를 기피하고, 의료진 확보도 힘들어하는 상황에서, 대동맥 병상 50개를 갖추며, 필수 중증 의료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대동맥류 및 출혈은 분초를 다투는 초응급이다. 환자가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에 오는 도중 사망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이에 병원은 수술실 두 개를 대동맥 수술에 배당하고, 한 개는 다른 수술이 있어도 무조건 비워놓는다. 대동맥 환자가 오면 언제든 즉시 수술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한 조치다. 우리나라 병원에서 멀쩡한 수술실을 응급 환자를 위해 비워 놓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시스템을 이렇게 갖추자 전국에서 대동맥 환자가 몰려들었다. 매달 대동맥 수술이 60여 건 이뤄지고 있다. 국내 최다 건수다. 환자의 절반은 부산, 강원, 광주광역시 등 수도권 밖 지역 환자들이다. 병원 옥상에는 지방에서 오는 대동맥 응급 환자를 태운 헬기가 수시로 내려앉는다. 병원은 신속한 이동을 위해 대동맥 환자만을 위한 엘리베이터, 복도, 중환자실을 운영하고 있다.

의학 학술지에 나오는 대동맥류 및 출혈성 박리 사망률은 통상 15% 정도다. 현재까지 대동맥 혈관 병원의 사망률은 2.94%를 보이고 있다. 송석원 교수는 “대동맥류 출혈은 즉시 수술이 가능한지와 상시 대기 의료진이 있느냐에 따라 삶과 죽음이 갈린다”며 “환자가 원내 도착 후 수술에 들어서는 시간을 5~8분으로 한 결과”라고 말했다.

전국 대동맥류 및 박리 환자는 2014년 1만8895명에서 2022년 3만6272명이 돼, 8년 새 두 배로 늘었다. 고령 인구 증가와 동맥 경화 증가가 맞물리면서 환자가 치솟고 있다. 이들이 수술 병원을 찾아헤매다, 큰 희생을 치를 수 있다. 병원은 대동맥 환자 이송 연락이 오면, 의료진뿐 아니라 보안, 원무, 총무 등 관련 행정 파트까지 문자가 전송되어, 병원 도착, 검사, 입원, 수술 조치 등이 동시에 이뤄지도록 하는 익스프레스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임수미(영상의학과 교수) 병원장과 진료 지원팀이 대동맥 수술이 불가능한 지방의 중소 병원을 돌며 송석원 교수 핫라인과 이송 설명문도 돌리고 있다. 지금까지 강원도 10곳, 경북 9곳, 충북 2곳을 찾았다.

◇신생아 사망 아픔 딛고 일어나

이대병원의 필수 의료 도전과 혁신은 6년 전인 2017년 12월 이대목동병원에서 일어난 신생아 집단 사망 사건에서 비롯됐다. 당시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었던 아이 4명이 감염으로 몇 분 사이에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그 사건으로 소아과 교수, 간호사 등 의료진 7명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법정에 섰다. 주치의를 포함해 3명은 구속됐다. 이들은 결국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지만, 환자와 병원은 돌이킬 수 없는 상흔을 안았다.

현재 신생아 중환자실은 11병상 모두 1인 격리 병실 형태로 운영된다. 전 병상 1인실은 국내에서 유일하며, 간호진은 공동 병상보다 두 배 정도 더 투입된다. 외부 병원에서 이송되어 오는 신생아에게서 숨은 감염이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들을 위한 음압 병실도 2개 운영하고 있다. 모든 신생아 영양 수액은 약국 무균실서 조제되고, 중환자실 내 투약실은 양압으로 공조를 돌려서 공기 감염을 차단한다. 박은애 신생아중환자실 교수는 “아이를 보러 오는 부모도 중환자실 입구에서 수술실용 세척기로 1분간 손을 닦아야 입장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에서 감염관리가 가장 잘되는 곳으로 자부하지만 그때 받은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아무도 이를 내세우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환자실 입구에는 “상실과 아픔과 눈물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소서”라는 문구가 놓여 있다.

의료계에서는 최근 여의사 비율이 높아진 것을 필수 의료진 공백의 이유 중 하나로 거론하기도 한다. 여의사들이 응급, 당직, 중증 의료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이대병원은 여의사가 전체 의료진의 62%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신생아 중환자실, 심근경색증, 뇌출혈 등을 치료하는 심뇌혈관병원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전문의 당직 시스템을 운영한다. 유경하(소아청소년과 교수) 의료원장은 “필수 의료 공백 현상과 대형병원 환자 쏠림 상황 속에서 우리는 필수 중증 의료 확대를 통해 대학병원의 새로운 성장을 꿈꾸고 있다”며 “그렇게 해도 병원이 잘 유지되는 의료 환경이 되어야 우리나라 의료 체계가 발전한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