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빈 방문과 프랑스 방문 일정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달 26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공군1호기편으로 귀국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어떤 매체의 함정 몰래카메라에 또 넘어간 과정은 어이가 없다. 상대는 수차례 방북해 북한 6·25 ‘승리’ 기념식과 김일성 생일 행사에 참석한 등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조사를 받았던 친북 인물이다.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조금만 신중하고 최소한의 조심성이라도 있었다면 결코 만나지 않았을 사람이다. 김 여사는 문자만 주고받았을 뿐 한 번 만난 적도 없는 이런 사람을 대통령 취임식 외빈 만찬에까지 초청했다. 그 자리에서 이 사람은 대기업 총수는 물론이고 대통령과도 사진을 찍었다. 경호와 의전 절차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이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은 오로지 김 여사 때문이었다.

엄밀히 말해 대통령 부인은 공직자라고 할 수 없다. 국민은 그 남편을 선출해 자리와 권한을 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부인의 잘한 처신, 잘못된 행동 모두가 대통령에 대한 평판에 직결된다. 알게 모르게 남편에게 여러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도 하다. 특히 대통령 부인은 공식적으로 배정된 국가 예산을 쓴다. 어느 자리에서 요즘 일부 공무원들이 대통령을 V1(VIP 1), 김 여사를 V2 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V2라고 불릴 정도로 공적 관심의 대상인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선 대통령 부인에 대한 평가가 대부분 좋지 않았다. 대통령 임기 동안 별 화제가 되지 않은 채 조용히 지나간 부인들은 평균점 정도를 받는 듯하고 그렇지 못한 일부는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들 안 좋은 인상을 남긴 대통령 부인들의 공통점은 너무 나서서 세간의 입에 오르내린 일이 잦았다는 것이다. 많은 국민은 ‘대통령 부인을 선출한 것이 아닌데 왜 부인이 권력을 행사하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 우리 사회가 아직 보수적이어선지는 모르겠지만 사회 저변에 이런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은 현실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대통령 부인이 신중함, 사려 깊음, 조심성을 갖추지 못하면 결국 대통령과 국정 수행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좀처럼 40%를 넘지 못하는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그런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대통령직은 즐기는 자리가 아니다. 매우 명예롭기는 하지만 져야 할 책임이 너무 무거워서 행복할 수가 없다. 마음에 짐을 많이 지고 있는 사람은 웃어도 웃는 것이 아니다. 일이 잘돼서 벅차고 기쁠 때보다는 안타깝고 답답하고 화가 날 때가 훨씬 더 많다. 역대 대통령들이 그랬고 지금 윤석열 대통령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구나 대통령 부인이라는 자리는 즐길 수도 없지만 즐겨서도 안 되는 자리다. 세상의 짐을 혼자 진 듯한 대통령 옆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안식처가 돼줘야 하는 사람이 부인이다. 설사 즐거워도 그것을 내색할 수가 없다. 김 여사가 몰래카메라에 넘어간 과정을 보면 대통령 부인이라는 짐의 무게를 어느 정도로 느끼고 있는 지 의문을 갖게 된다. 걱정이 많은 사람은 말과 행동, 판단, 결정, 심지어 옷차림새까지 조심한다. 즐기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요즘 정치권에선 대통령의 인사가 잘 이해되지 않으면 ‘김 여사가 한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는 일이 흔하다. 대부분은 사실이 아니겠지만 그중 일부는 사실이란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다. 대통령 부인이라는 자리를 조심스럽고도 무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주변에 인사 청탁을 하는 사람들이 몰리게 된다.

야당이 곧 김 여사에 대한 특검법안을 통과시킬 태세다. 이 문제는 문재인 정권 검찰이 샅샅이 수사하고도 혐의를 찾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특검을 밀어붙이는 것은 지금 김 여사를 특검하면 그 자체로 다수 국민 여론이 호응할 것이라고 계산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김 여사는 이런 분위기가 초래된 것에 자신의 책임이 전혀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장관직을 제의받은 사람들 중 많은 분이 “집사람이 반대해서 할 수가 없다”고 답한다고 한다. 일부 국회의원 출마자 부인들도 그랬다. 그 부인들도 명예를 모르지 않겠지만 져야 할 짐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부담감이 더 컸을 것이다. 어떤 면에선 바로 이 부담감을 초심으로 삼고 잃지 않는 것이 고위 공직자 부인들의 덕목이다.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 부인’이란 자리 자체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 있다. 그리 호의적이지 않고 잘못을 찾는 듯한 외부의 ‘시선’이다. 자신이 한 일, 어느 경우엔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한 ‘책임’도 따라온다. 대통령 부인에겐 기본적으로 없는 것도 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입고 싶은 것을 입고,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누리고 싶은 것을 누리고, 누구에게 주고 싶은 것을 줄 그런 ‘자유’가 없다. 그런데 지금 자유는 있고 책임은 없는 것은 아닌지 많은 사람이 걱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