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에서 수도권 출마를 준비하는 인사들은 두 가지로 나뉜다. 서울 강남 같은 곳에 공천을 받아 ‘꽃길’을 걷고 싶은 부류와 다른 지역에서 노심초사하며 용산과 당 지도부에 목이 터지라 변화를 외쳐대는 부류다. 꽃길파 중 일부는 자신들이 장관을 하며 희생했기 때문에 공천으로 보상받아야 한다는 ‘희생론’까지 펴고 있다고 한다. 강남도 몰리고 영남도 몰리니 꽃길은 미어터질 지경이다.
이 현상은 강서구청장 보선 직후 시작됐다. 총선의 모의고사 격인 이 선거의 여야 차이는 17%포인트로 4년 전 총선과 흡사하다. 2020년 총선 때 서울 강서 갑·을·병 모두 민주당이 휩쓸었는데 득표 차이가 14~23% 포인트였다. 여당의 극적 변화가 없다면 이번 총선은 2020년 총선의 재판이 될 전망이다. 당시 민주당은 수도권 121석(서울 49석 ,경기 59석, 인천 13석) 중 103석을 가져갔다. 서울 49석 중 41석을 차지하면서 전국적으로 180석 정당이 됐다. 국민의힘은 수도권 16석, 전국 103석이라는 기록적인 패배를 했다. 2020년 악몽이 재현될 조짐을 보이자 여당 수도권 출마자들은 지도부를 향해 “이대로면 다 죽는다”며 아우성을 치고 있다. 수도권 한 원외 인사는 “수포당(수도권을 포기한 정당)으로 총선을 어떻게 이기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도 출마자들도 전국 선거의 승패를 결정짓는 수도권을 ‘험지’라고 한다. 험지는 원래 외교관들이 아프리카 처럼 생활과 교육여건이 열악한 국가 근무를 꺼리며 나온 말이다. ‘험지’라는 말을 듣는 수도권 유권자들의 모욕적 기분을 생각해봤나 모르겠다.
여당에 서울은 험지가 아니다. 서울은 총선 참패 다음 해인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부터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까지 국민의힘이 전국선거 3연승을 거둘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었다. 현재 민심 이반의 이유를 찾고 당 대표부터 말단 당직자들까지 밤샘을 해도 모자랄 판에 아직 여유만 부리거나 꽁무니를 빼고 있다. 반대로 보수 유권자들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수도권 험지라는 패배주의부터 걷어내야 한다. 총선은 구도와 인물 싸움이다. 인물이라는 측면에서 현재 수도권에는 나경원, 안철수, 원희룡, 한동훈, 박민식, 김은혜 등 전국구급 정치인들을 확보하고 있다. 300명 국회의원 중 얼굴과 이름을 구분할 정도로 알려진 이는 생각보다 적다. 서울 강북에는 김병민, 김재섭, 이승환처럼 묵묵히 지역을 지켜온 30~40대 젊은 피들이 586 정치인에게 맞설 준비를 하고 있다. 수원에도 전직 장관과 국세청장이 출격 대기 중이다. 이런데도 왜 수도권이 험지라고 단정하고 있나.
민주당이야말로 수도권이 지뢰밭이다. 지난 총선 대승으로 빈틈없이 자리 잡은 현역들 때문에 새로운 인물을 영입하기가 쉽지 않다. 인지도 측면에서도 여당에 열세로 평가받는다. 정청래, 고민정, 안민석, 그리고 자당 출신 국회의장에게 GSGG라는 욕을 날린 김승원 등이 다양한 이유로 지명도를 갖춘 정도다. 게다가 비명계인 윤영찬 지역구에 현근택, 이원욱에 진석범, 조응천에 최민희 등 친명 자객들까지 나서고 있어 공천 후유증이 적지 않을 것이다.
수험생이 높은 배점의 수학을 포기하고(수포자) 수능을 잘 보길 기대할 순 없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게 수학이다. 수도권을 포기한 정당이 총선에서 이길 수는 없다. 꽃길에선 꽃 구경밖에 할 게 없지만, 자갈밭을 일궈 꽃씨를 뿌리면 꽃밭의 주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