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2호기를 타고 인도를 단독 방문한 김정숙 여사가 타지마할을 방문했을 당시의 모습. /뉴시스

김건희 여사 특검을 전면 거부하겠다는 대통령실과 여당 방침은 하책(下策)이라 본다. 특검은 민주당의 총선용 계략이 분명하나 아무 대안 없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 또한 민주당이 판 함정에 말려드는 격이다. 김 여사 특검에 찬성하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특검을 안 받는다는 것 자체만으로 무언가 구린 구석이 있다는 의심을 사기 충분하다. 야당은 선거 내내 공격할 것이고 여당은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

이 딜레마를 탈출할 유일한 방법이 ‘총선 후 특검’이다. 야당이 강행한 특검법을 거부하되, 내년 봄 선거 이후 여야 합의로 특검을 출범시키겠다는 약속을 달아 ‘조건부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총선에 영향 주지 않고 국민 여론도 설득할 수 있다. 김 여사 주가조작 의혹은 문재인 정권 검찰이 그렇게 탈탈 털었어도 기소조차 못한 사건이다. 윤석열 정권이 소극적으로 대응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런데 김 여사보다 훨씬 악성이고 범죄 혐의가 농후한 대통령 배우자 의혹이 있다. 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 문제다. 문 정권 시절 김 여사는 과도한 해외 여행과 특별활동비 유용 의혹 등으로 끊임없이 파문을 불렀다. 해외 순방을 명분으로 유명 관광지를 섭렵했다는 이른바 ‘버킷 리스트’ 논란이며, 청와대 특활비로 옷·액세서리 등을 구입했다는 의혹이 무성했다. 국가 예산을 사적 용도에 썼다면 횡령에 해당될 중범죄다. 그러나 지금껏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덮어져 왔다.

문 정권 5년간 김정숙 여사는 대통령의 거의 모든 해외 출장에 동행했다. 외국에 나간 횟수가 48회로, 역대 대통령 부인 중 압도적 1위였다. 밖에 나가선 꼭 관광 일정을 끼워 부부가 함께 혹은 김 여사 혼자라도 들르곤 했다. 아시아·유럽·남태평양에서 남미·아프리카까지 5대양 6대주의 이름난 관광지는 빠트린 곳이 없다. 당시 이 문제를 보도해 청와대에 제소당했던 남정호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김 여사의 관광을 위해 대통령 일정이 결정됐다는 구체적 정황이 재판 과정에서 밝혀졌다”고 썼다. 그야말로 김 여사의 ‘버킷 리스트 여행’이었다는 것이다.

비상식적 실태가 드러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2018년 김 여사는 문 대통령 없이 인도를 단독 방문했다. 혼자 가면서도 대통령 전용기를 띄우고 마지막 날에 타지마할 방문 일정을 넣었다. 청와대는 “인도 정부 요청”이라 설명했지만 거짓말이었다. 애초 인도 측이 초청한 것은 문화체육부 장관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김 여사 일행이 지출한 경비는 3억7000여 만원에 달했다. 문체부 대표단이 갔다면 2600만원만 들었을 것을 전용기 띄우고 청와대 직원 13명을 수행시키느라 15배로 불어난 것이었다.

이유조차 모를 수수께끼 같은 방문도 있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G20 회의 참석차 아르헨티나로 가면서 지구 반대쪽으로 돌아 체코에 들렀다. 당시 체코 대통령은 해외에 나가 자국 내에 있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청와대는 “원전 세일즈”를 내세웠지만 탈원전을 외치는 대통령이었기에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렸다. 정작 원전 사업을 추진하는 영국 등에선 문 대통령이 원전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논란이 일자 “중간 급유 목적”이라 말을 바꿨지만 역대 대통령은 남미 방문 때 늘 미국 LA를 경유했던 만큼 이상하긴 마찬가지였다. 문 대통령 부부의 체코 일정은 총리 면담 외에 프라하성, 비투스 성당 등 관광지 관람으로 채워졌다.

퇴임을 넉달 앞둔 2022년 초 이집트 방문은 김 여사에게 ‘졸업 여행’이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의 중동 순방 중 혼자 피라미드를 비밀리에 방문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청와대 측은 “관광 홍보를 위한 이집트 정부 요청”이라 했지만 ‘홍보’ 행사를 비공개한 것부터 앞뒤가 맞지 않았다. ‘버킷 리스트’의 마지막 빈칸을 채워 넣은 것이었다.

김 여사는 행사 때마다 의상이 바뀌는 패션 사치로도 유명했다. 공개된 사진에서만 최소 178벌의 옷과 액세서리 200여 종을 착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시민단체가 특활비 유용 의혹이 있다면서 정보공개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지만 청와대는 계속 뭉개다 임기 만료와 함께 대통령 기록물로 이전해 봉인해 버렸다. 공개 못할 사정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시민단체들이 김 여사를 횡령·강요 등의 혐의로 형사 고발했지만 수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민 세금으로 옷 사 입고 관광하고 없는 해외 일정까지 만들었다면 국정 농단에 다름 아니다. 김건희 여사 의혹과 비교조차 안 될 중대 사안이나 문 정권은 물론 윤석열 정권의 검·경도 이들 의혹을 한 번도 파헤친 적이 없다.

검찰이 할 일 안 할 때 등장시키는 것이 특검이다. 김정숙 여사 의혹은 특검의 발동 요건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김건희 특검’을 한다면 ‘김정숙 특검’부터 해야 마땅하다. 총선 후 선거에 영향 없을 시기에 ‘김건희·김정숙 쌍특검’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