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윤의 슬픈 중국: 변방의 중국몽 <17회>

김일성 동상 앞에서 절하는 북한 인민들. /공공부문

지난 세밑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은 공식적으로 “우리민족끼리” 전략을 파기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더는 “동족”이 아니라 “미국의 식민지 졸개에 불과한 괴이한 족속들”이라며 그는 북한의 국격과 지위상 함께 통일 논의를 할 수 없다고 했다. 74년 전 북한은 “민족 해방”의 깃발을 들고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전쟁을 일으켰다. 이제 핵무장을 끝낸 북한의 수령은 남한 사람들이 동족이 아니라며 유사시 핵무기 사용 불사를 선언하고 있다.

김정은이 미국의 식민지 졸개라 부르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잠시 돌아보자. 625전쟁 이래 대한민국은 한미 군사동맹의 엄호 아래서 개방형 수출입국 정책에 따라 파죽지세로 세계시장을 향해 뻗어나가 최첨단 기술력을 갖춘 세계적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대한민국의 성공은 국경을 넘어,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세계의 모든 민족과 어울려 함께 이룩한 접촉과 확산, 교류와 혼융의 성과다.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적극적으로, 창조적으로, 주체적으로 적응해 간 결과다. 북한을 제외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대한민국을 미국의 식민지라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 오늘날 북한은 어떤가? 스탈린식 전체주의 명령경제와 낡아빠진 민족 지상의 광기와 자폐적 유일주의가 결합한 인류사 최악의 전체주의 세습 전제 정권이다. 40년 전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했음에도 북한은 고작 ‘김일성 유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수백만 명이 아사하는데도 핵 개발에만 몰두해 왔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인민은 국가에 종속되고 국가는 수령의 사유물에 불과하다는 폭압적 세습 전제정의 궤변에 불과하다.

그러한 북한의 김정은이 이제 제 입으로 남한 사람들과의 동족 의식을 버리겠다고 했다. 1980년대 이래 북한과 더불어 주야장천 “우리민족끼리”를 노래 불러온 남한의 주사파, 반미·종북파, 반외세 자주파 세력은 이제 무엇으로 살아가나? “86세대”의 정치권 퇴출이 시대정신이 되어가는 지금, 남한의 주사파들은 갈지자 파행을 면할 수 없게 됐다. 사냥개처럼 북한에 돈과 시간을 벌어준 그들이 이제 핵 무장한 북한에 삶겨 먹히는 신세가 되었다면 과언일까?

남북한의 차이를 한 눈에 보여주는 위성사진. /공공부문

“우리민족끼리”의 환상이 깨지다

지난 70여 년 북한은 남한을 향해 “민족 해방”의 이념 공세를 펼쳐왔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1980년대 이래 대한민국의 운동권을 파고들어 소위 86세대의 의식을 지배했다. 김일성을 맹종하던 1980년대의 주사파는 “반미구국” 투쟁을 전개했다. 당시 그들의 구호는 “반전반핵 양키고홈”이었다.

“우리민족끼리”라는 구호가 남북 정부의 공동선언문에 등장한 시기는 10여 년이 지난 후였다. 2000년 6월13일~6월15일까지 평양에서 정상회담 후 발표된 “남북공동선언문” 제1조를 보면 “우리민족끼리”가 적혀 있다. 2005년 7월 20일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 작가대회의 선언문에도 “우리민족끼리”가 나온다. 당시 남북한의 작가들은 서로 얼싸 끌어안고 민족적 동질성을 확인하며 민족 통일의 문학을 추구하자고 부르짖었다.

1992년 5월 13일 건국대학교에서 열린 전대협 행사. 북한의 인공기, 태극기, 한반도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공공부문

전 세계 게르만족이 모여서 “우리민족끼리”를 외친다면 어떨까? 유대민족이 “우리민족끼리”를 부르짖는다면? 한국인을 포함한 전 세계인이 경악할 수밖에 없다. “우리민족끼리”란 그만큼 인류의 보편사에 어긋나는 시대착오적인 종족주의의 구호이다. 그 구호가 “615 남북공동선언” 제1조의 기본정신으로 천명되었다는 사실은 남북한 모두 병적인 민족지상주의에 포박당해 있었음을 말해준다.

지금에서야 김정은 스스로 동족 의식을 버린다니 만시지탄(晩時之歎)이나 다행이다. 남한의 86세대 주사파 집단은 “우리민족끼리”의 주술에 사로잡혀서 김일성을 동족의 수령으로 섬기는 지적 아둔함과 종교적 광신을 보였다. 그들은 진정 히틀러를 아리안족의 영웅으로 추앙하던 독일 제3 제국의 나치 추종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김씨 왕조의 수령을 “우리 민족”이라 여겼기에 그들은 북한의 인권 유린과 정치 범죄에 대해선 극구 침묵해 왔다. 이제 그들은 입을 닫을 명분을 상실했다. 북한 스스로 “우리민족끼리”의 원칙을 폐기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흔히 말하듯, 민족의 환상을 버리면 비로소 계급 모순이 보인다. 북한의 계급 모순은 강제 수용소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북한은 세계 최악의 노예제 국가

현대판 노예제 청산을 목표로 활동 중인 국제 인권 단체 ‘워크 프리(Walk Free)’는 매년 전 세계 160개 국가의 실태를 조사하여 글로벌 노예제 인덱스(Global Slavery Index, GSI)를 발표하고 있다. 현대판 노예제는 강제 노동, 강제 혼인, 부채 속박(debt bondage), 강제 매춘, 인신매매, 아동 판매 및 착취 등을 이른다. 이 발표 따르면, 2021년 현재 세계에는 대략 5천만 명이 노예 상태로 연명하고 있다. 2016년에 비해 그 수가 무려 1천만 명이나 증가했다.

현대판 노예제는 대부분 국가권력의 사각지대에서 범죄조직이나 일탈적 개인들에 의해 자행되는 특징이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국가권력에 의한 개인의 노예화는 대부분 나라에서 불법화되었다. 그럼에도 2021년 현재 전 세계에선 대략 390만 명 정도가 국가권력 아래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고 있다. 국가권력에 의한 인민의 노예화는 크게 강제 수용소 노동(55.8%, 220만 명), 강제 징집 및 군대의 인권 유린(110만 명, 26.9%), 경제 개발 목적의 강제 노역 (70만 명, 17.3%) 등으로 분류된다. 그 390만 명의 국가 노예 중에서 69%에 달하는 270만 명이 북한 사람들이다.

세계 160개국 인구 당 노예 비율의 국가별 순위를 보면, 북한이 단연 세계 1위이다. 북한은 1천 명 중에서 무려 104.6명이 노예로 분류된다. 다시 말해, 북한 인구의 10.4%가 노예이다. 그 뒤를 아프리카 북동부의 에리트레아(9%), 아프리카 북서부의 모리타니아(3.2%), 사우디아라비아(2.1%), 튀르키예(1.56%), 타지키스탄(1.4%) 등이 따른다. 인구의 10% 이상이 노예로 살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북한밖에 없다. 전 세계 여러 국가 중에서 정부가 노예제 퇴치를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나라는 영국, 호주, 네델란드 등이며, 정부의 노력이 가장 소극적인 나라는 북한, 에리트레아, 이란, 리비아, 소말리아 등을 꼽을 수 있다.

현대판 노예제 국가별 순위 1~10등. 아래 표 참조. /walkfree.org

참고로 대한민국의 노예 인구는 대략 18만 명, 1천 명당 3.5명꼴, 전체 인구의 0.35%이며, 인구 당 노예 비율은 세계 160개국 중에서 117위이다. 일본은 14만 4천 명 정도, 1천 명당 1.1명꼴, 전체 인구의 0.11%로 세계 152위이다.

북한의 현대판 노예제: 국가권력에 의한 인민의 노예화

북한의 현대판 노예제는 국가가 직접 공권력을 사용하여 10%가 넘는 인민을 조직적으로 노예화하고 있다는 중대한 특징을 보여준다. 북한은 국가권력에 의한 합법적 노예화가 일반화된 국가 노예제(state slavery)의 나라이다.

21세기 현재 국가 노예제는 대략 두 가지 형태를 보인다. 그 첫 번째는 20세기 공산국가의 강제 수용소이다. 1920-30년대 소련의 굴라그(gulag)나 1949년 이래 중국의 라오가이(勞改)가 대표적이다. 2005년 당시 중국에는 대략 천 개의 라오가이 수용소가 있었다. 두 번째 형태는 정부가 재정 수입을 올리기 위해 국민의 일부를 노예로 삼는 경우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정부가 어린 학생들을 목화 농장에서 강제로 부린 사례가 대표적이다. 1993년 에티오피아에서 독립한 에리트레아는 1998년 이후 전 국민을 무기한 징집하여 군역을 부과할 수 있는 국가 노예제의 나라가 되었다. (Rhoda E. Howard-Hassmann, “State Enslavement in North Korea,” Contemporary Slavery [UBC Press, 2017])

북한은 이 두 가지 형태를 모두 갖춘 세계 최악의 국가 노예제의 나라이다. 1997년 발표한 한 연구에 따르면, 1948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북한의 강제 수용소에서 최소한 백오십만 명이 사망했다. 2005년도 발표된 다른 연구에 따르면, 수용소에 끌려가는 연평균 20만~30만 명의 포로 중에서 10%가 사망한다는 가정에 따라 1948년 이래 사망자 수를 대략 100만 명으로 추산했다. 강제 수용소에서 가장 중요한 사망원인은 “의도적인 기아선상의 배식(intentional starvation-level rations)”에 따른 상시적 굶주림이다. 포로들은 일본에 수출되는 목재 생산에 투입되기도 하고, 도로 건설, 광산, 채석장, 핵시설 등에서 살인적인 노동에 동원되기도 한다. 하루 평균 노동시간이 16.5시간인데, 일을 하고 나면 쉴 틈도 없이 강력한 이념 투쟁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 수용소에선 청소년들, 심지어는 5세 아동까지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같은 논문)

2009년도 인권감시단(Human Rights Watch)의 보고에 따르면, 1,500여 명의 북한 사람들이 러시아에서 벌목공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1년에 단 이틀만 쉬면서 살인적인 강제 노역에 내몰렸는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처벌을 받았다. 놀랍게도 이들은 외화를 벌기 위해 자원한 노동자들이었다. 북한 정권은 그들이 받은 임금의 대부분을 고스란히 착취했다. 러시아 외에도 불가리아, 중국, 이라크, 쿠웨이트, 몽골 등지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이 상당수 있는데, 이들의 임금은 북한 정권의 계좌로 송금된다. 2012년 당시 6만~6만 5천 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40여 개 국가에서 일하고 있었다. 2010년 당시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4만 4천 명의 노동자들 역시 국제 노동기준에 훨씬 못 미치는 열악한 환경에서 중노동에 시달렸으며, 그들의 임금은 북한 정부에서 가져갔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008년 제작된 영화 “크로싱(Crossing)”에 재현된 북한 요덕수용소의 모습. /공공부문

북한의 국가 노예제를 설명하기 위해선 북한 특유의 수령 유일주의, 파시스트적 종족주의, 병적인 피해망상증 등 이념적 병폐 외에도 북한 사회에 만연한 인권 유린의 문화와 부정부패의 현실을 고려해야만 한다. 북한은 최소한의 인권도, 경제적 자유도, 법치도 없는 굴라그 사회이다. 나라 전체가 통째로 김씨 왕조를 위해 존재하는 거대한 수용소라 할 수 있다. 대체 어떻게 한반도의 역사에서 북한 같은 세계 최악의 괴물 국가가 생겨날 수 있었는가?

“슬픈 중국: 변방의 중국몽”에선 지난 여섯 회에 걸쳐서 조선 노비제의 역사를 다뤄왔다. 조선 노비제와 북한의 국가 노예제는 과연 무관할 수 있을까? 양자 사이에 모종의 연속성이 있다면, 우리는 과연 어떠한 방법으로 조선 노비제와 북한의 국가 노예제 사이의 역사적 상관성(correlations)을 논구할 수 있을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