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케이터틀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김경율 비대위원과 함께 주먹을 쥐고 있다./뉴스1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충돌에 대해 김경율 비대위원에게 책임을 묻는 분위기다. 한 위원장이 김 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를 기정사실화한 것을 사천(私薦)이라고 문제 삼는 것은 핑계다. 본질은 김 위원이 “명품백 문제를 돌파하지 않으면 총선을 치를 수 없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지적해서 용산을 화나게 만든 것이다.

명품백에 대해 친윤들이 녹음기처럼 되뇌는 말이 있다. “본질은 몰카 함정인데 어떻게 피해자가 사과하느냐”는 것이다. 윤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다가 실망했거나 걱정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수두룩하다. 한결같이 “대통령이 왜 질질 끌면서 사태를 키우느냐”고 답답해 한다. 이들에게 친윤표 모범 답변을 전해주면 “아, 그런 이치를 몰랐네요”라고 고개를 끄덕일 것 같은가. ‘사과할 이유가 없다’는 핑계가 잘 통하지 않으니 ‘사과하면 오히려 총선에서 불리해진다’는 논리를 내세우기도 한다. 김건희 여사가 이런 취지의 문자를 친윤에게 돌렸다는 보도도 있었다.

정권이 성난 국민에게 사과하면 선거 악재가 된다는 건 수십 년 선거 취재하면서 처음 들어보는 이론이다. 필자가 아는 건 국민에게 사과를 거부한 정권은 예외 없이 선거에서 철퇴를 맞게 된다는 법칙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국민은 사건 자체보다 뭉개는 정권 태도에 더 분노한다. 1999년 옷 로비 사건 때 김대중 대통령은 “마녀사냥”이라고 버티다가 6월 보궐선거에서 DJ 정당이 한 번도 져본 적 없는 인천 강화·계양갑에서 13.1%p 차로 완패했다. 당시 민주당 후보가 송영길 전 대표였다. 장관 부인이 옷 선물을 받았다는 풍문과 대통령 부인이 명품 백을 받는 동영상 장면 어느 쪽이 선거에서 더 파괴력이 클 것 같은가. 김 위원의 마포을 험지 출마도, 명품백 공론화도 국민의힘 총선 선전을 위해 필요한 용기 있는 결단이었다.

더구나 윤 대통령과 친윤들은 김 위원에게 지난 대선 과정에 대해 마음의 빚을 느껴야 한다. 2019년 9월 29일 당시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이었던 김 위원은 “조국은 민정수석 자리에서 시원하게 말아 드셨다”면서 그를 감싸는 인사들을 “위선자”라고 부르며 “역겹다, 구역질 난다”고 비판했다. ‘조국 수호’를 위한 빛 샐 틈 없는 진보 좌파 대동단결에 균열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김 위원은 “조국 펀드에서 ‘권력형 범죄’ 냄새가 난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하자”는 요구를 거절 당하자 21년간 몸담았던 참여연대를 떠났다. 이후 김 위원은 조국 펀드에 어른대는 횡령, 배임, 주식 차명 보유 그림자를 들춰내는 폭로를 이어갔고 진중권, 서민 등과 함께 조국 흑서를 펴냈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막바지로 치닫던 2021년 9월 김 위원은 과녁을 ‘조국’에서 ‘이재명’으로 옮겼다. 9월 3일 새벽에 “샹그릴라(이상향)는 세상에 있을까요”라는 소셜 미디어 글을 통해 대장동 개발 특혜 쟁점화에 나섰다. 화천대유라는 민간 주주들이 투자액 1000배의 수익을 챙기는 구조가 이상향에서나 가능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경기경제신문 최초 보도 후 잦아들던 이 의혹을 김 위원이 회계사로서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다시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 그래서 “위험은 공공이 지고 수익은 특정 개인이 가져가는” 대장동 의혹의 핵심을 국민들에게 각인시켰다.

김 위원은 ‘조국 저격’을 통해 윤석열 검찰총장의 조국 수사 정당성을 뒷받침했고, 이재명 후보의 대장동 의혹을 확산시키며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당선에 기여했다. 지난 대선은 윤석열 대통령의 개인기에 의해 90% 이상 승부가 좌우됐지만 그 밖의 공신을 추린다면 김 위원이 다섯 손가락 안에서도 앞쪽으로 꼽혀야 한다. 윤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서초동 자택으로 김 위원을 초청해 저녁을 함께한 것도 이런 고마움이 작용했을 것이다.

윤핵관 2세대의 간판인 이철규 의원은 “정권 교체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공천받는 게 어떻게 낙하산이냐”고 했다. 그런 기준이라면 김 위원은 대선 공신 중 공신으로서 공천에서 특급 대우를 받아야 한다. 더구나 당선 보장이 되는 텃밭만 기웃대는 친윤과 달리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마포을에 도전장을 냈다면 용산에서 감사패라도 내려야 한다. 친윤이 김 위원을 여권의 공적인 양 집단 린치를 가하는 것은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윤·한 충돌 직후 급속히 번졌던 지라시는 한동훈·김경율 두 사람을 쳐내자고 선동했다. 그래서 김 여사 지침을 복창하는 친윤끼리 똘똘 뭉쳐 총선을 치르면 100석도 건지기 힘들 것이다. 그랬을 때 윤 대통령 부부에게 어떤 결과가 닥쳐올 것 같은가.

김창균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