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건 한가한 소리로 들릴 수 있다. 뉴욕 증시부터 서울의 유치원생까지 세계를 빨아들이는 AI 광풍에서 옛날 잡지와 번역의 즐거움에 대한 고백이라니. 한마디로 뒤처지면 죽는다 분위기지만, 뒤처지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면 다른 시각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책장을 정리하다가 30년 전 대학시절 잡지 한 권을 발견했다. 시사영어사 발행, 월간 ‘시사영어연구’. 맨 뒤에 부록처럼 달려 있던 한 쪽짜리 번역 코너가 있다. 국제 뉴스나 영문 소설 일부를 우리말로 옮겨 응모하면 잘된 번역을 뽑아 소정의 기념품을 주는 기획이었다. 그래 봐야 몇 개월 무료 구독권 정도였지만, 번역의 쾌감에 과몰입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조금 더 매끄러운 문장, 과녁에 적중하는 단어를 찾기 위해 빠져들던 시간들. 그때나 지금이나 일촉즉발이던 중동 정세, 헤밍웨이의 여성 편력을 알게 된 점은 덤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지금은 AI 번역이 대세다. 기본 원리는 대량 언어모델(LLM•Large Language Model). 인간의 언어로 된 정보를 대량 학습했다는 의미다. 초기 구글 번역이나 네이버 파파고의 어설픈 기계 번역에 코웃음 치다 독일산 딥엘(DeepL)의 능력에 충격받은 게 1년 전의 일이다. 외국 석학이나 작가 인터뷰를 준비하며 사전 질문지를 만드는 시간은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좋기만 한 걸까.
‘괴델, 에셔, 바흐’로 퓰리처상을 받은 글쓰는 물리학자 더글러스 호프스태터(79)는 최근 이런 고백을 했다. 그는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이탈리아어에 능숙하고 독일어·스웨덴어·러시아어·폴란드어·중국어도 읽고 쓰는 언어 천재. 미 시사교양지 ‘디 애틀랜틱’의 기고에서 그는 이탈리아어로 애도 편지를 쓴 경험을 말한다. 먼저 세상을 떠난 소중한 이탈리아 친구 베네데토, 그리고 몇 시간에 걸쳐 쓴 진심 어린 이메일. 이 어렵고 감정적인 편지를 쓰면서 그는 친구와 함께했던 모든 멋지고 힘들었던 시간을 애정을 담아 추억하며 끊임없이 단어와 문장을 고쳤고, 자신의 이탈리아어를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아마 영어로 썼다면 두세 배는 빨랐겠지. 하지만 AI 의존 없이 집중한 덕에, 세상 떠난 친구를 향한 그의 마음은 가장 강렬하고 개인적인 방식으로 반영됐다고 했다.
호프스태터는 ‘언어의 에베레스트’라는 비유를 썼다. 헬리콥터를 타고 단숨에 착륙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몇 년에 걸쳐 계획을 짜고 눈보라를 맞으며 몇 날 며칠, 심지어 수직에 가까운 경사면을 끈질기게 올라간 끝에 다다른 정상을 같이 볼 수 있을까.
딥엘과 챗GPT가 단 1초 만에 바꾼 번역이 아니라, 열정과 헌신으로 찾아낸 어휘와 문장. 미묘한 억양, 작은 망설임, 익살스러운 말장난, 어리석은 실수까지도 포함하는 편지 말이다.
비행기로 갈 수 있는데 왜 힘들게 두 발로 올라가느냐고? 하지만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런 열정과 헌신의 시간 자체가 인생의 본질이라는 것을. 단순반복 작업은 AI에 맡기고 인간은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하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우리는 역시 알고 있다. 그런 창의적인 인간은 1%를 넘기 어렵고, 대부분은 그 여분의 시간을 단순하고 자극적인 엔터테인먼트나 쇼핑으로 낭비하며 인생을 소모한다는 것을.
3월까지 영국 런던의 피커딜리 광장 주변에서는 중국 출신의 세계적 현대미술가 아이웨이웨이의 야외 전시회가 열린다. 그의 영어 이름은 공교롭게도 Ai Weiwei. 전시회 제목도 ‘AI 대 AI’다. 렘브란트 에피소드가 그 안에 들어 있다. 수천 번 넘게 반복해서 자화상을 그리고 찢고 다시 그렸던 화가. AI라면 1초 만에 완성했을 자화상이다. 두 AI가 묻는다. 과연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건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