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保守) 언론이 보수 정권을 더 날카롭게 비판해야.’ 지난 1월 말 조선일보 비평란에 실린 독자권익위원회의 기사 제목이다. 보수 언론의 시각으로 보수 정권을 비판하는 것이 좌파 언론의 비판보다 정부·여당에 보다 날카롭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교과서적(的)으로 말해서 언론이 권력을 비판하는 것은 언론의 존재 이유다. 그 대상인 권력이 우파건 좌파건 상관이 없고, 언론이 보수적이건 좌파적이건 상관이 없다. 언론의 존재 이유는 비판 기능이다.

돌이켜 보면 역사적 고비마다 정권, 특히 보수 정권을 퇴진시키는 데 크게 작동한 것은 이른바 ‘조중동’이라는 보수·우파 언론이었다. 4·19(그때는 좌·우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았지만) 때도 그랬고 5·18 때도 그랬다. 박근혜 정권의 퇴진에도 조중동은 순기능했다. 그것이 과연 올바른 역사의 진행이었느냐는 것은 지금도 논쟁의 대상이지만.

2000년대 들어서 보수 언론이 주류(?)인 상황에서도 보수 정권의 대통령은 줄줄이 옥살이를 했고 문재인 정권이 태동했으며 지금도 압도적 의석을 가진 좌파 정당의 전횡과 그 수장(首長)의 건재를 목도하고 있다. 보수 언론이 보수 정권을 비판해서 결국 좌파 정권의 득세를 도와준 모양새일 뿐이다.

좌파 언론은 어땠는가? 좌파 언론은 좌우 구분 없이 공정했는가? 보수·우파 정권을 공격하는 데는 때로 ‘가짜 뉴스’를 동원할 정도로 매몰차고 공격적이었으면서 좌파 권력을 비판하는 데도 그렇게 엄중하게 임했는가? 한 대표적 좌파 언론은 문재인 정권 시절 한 사무관의 내부 고발 사건을 아예 보도조차 하지 않아 자체 노조에서 고발당한 적이 있다. 한 언론 담당 기자는 “좌파 언론이 좌파 권력을 비판한 것은 지난 십 수년간 본 기억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비평자들도 보수 정권에 대한 보수 언론의 태도는 비판하고 나서면서 좌파 언론의 편파적 보도에는 입을 닫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수 정권은 ‘동네북’인 셈이다. 좌파 언론에서 무차별한 공격과 선동성 비판을 당하면서 보수 언론의 협공도 받아야 하고 게다가 비평자 또는 관전자들의 비판까지 감수해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김건희 여사의 이른바 ‘디올백 사건’과 관련해서 보수 언론의 경직성을 본다. 대통령 부인이 그런 ‘선물’을, 친북 인사에게 맥락 없이 받았다는 것 자체는 잘못된 일이다. 무엇보다 이 사건을 이렇게 오래 끌도록 고집부린 대통령 측의 태도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집권 2년 차 윤 정권에 타격을 줄 만큼의 큰 정치적 사건인가? 미국 언론(CNN·뉴욕타임스 등)도 크게 다루고 있지만, 큰 맥락은 백을 받았다는 것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 크게 화제가 되고 선거에 영향을 미칠 정도가 됐다는 점에 새삼 놀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한국 민주주의의 성장을 역(逆)으로 빗대는 것인지 모를 정도다.

4·10 총선거는 한국 정치 지형(地形)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의 좌·우 지평을 가름하는 선거에서 대통령 부인의 ‘선물 백’이 유권자들의 결정적 선택 자료가 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국민’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판단 준거는 대통령의 중요한 정책적 결정, 안보·국방의 방향 설정이고 국민의 경제적 삶이지 대통령 부인의 ‘백’ 수수여서는 우리 수준이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일부에서는 대통령이 ‘사과’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라고 하는데 몰래카메라로 찍고 1년을 기다려 총선 전에 드러낼 정도로 치밀하고 계획적인 좌파가 과연 ‘사과’로 넘어갈 것 같은가? 이 사건은 사과하면서부터 제2막으로 넘어갈 것이 뻔하다.

보수를 비판하는 것이 보수 언론이 좌파 언론과 다른 장점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현실론에서 보수 언론이 대통령의 잘못도 아니고 그 부인의 경솔함에 집착하는 것은 가치 전도적이다. 보수 언론이 보수 정권이건 좌파 권력이건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한다는 것-그것이 언론의 길이지만 또한 원론적(原論的)이기도 하다. 보수 언론의 행태가 앞으로 또 다른 5년을 좌우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보수니, 좌파니, 진보니 하는 것들 자체가 가치 지향적 개념이다. 가치를 잃으면 공정한 언론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를 새삼 되새기게 된다. 크게 보면 보수층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승만 대통령의 일생을 그린 영화 ‘건국전쟁’이 많은 국민의 관심 아래 상영 중이다. 모처럼 광의의 보수 언론이 작동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디올백 사건’이 그 흐름을 막는 보(洑)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