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11 테러 때 2977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가운데 412명이 소방관과 응급 구조대원이었다. 일반인 희생자는 불기둥이 솟구치며 붕괴한 높이 412m 110층 세계무역센터 건물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었다. 소방관과 구조대원은 소집 명령을 받고 달려왔다. 그들은 사람이 쏟아져 내려오는 흐름을 거슬러 계단을 올라가며 피신하는 사람을 안내하고 구조하다 사망했다. 소방관 희생자 중에는 일흔둘 소방위원장을 비롯한 많은 지휘관이 포함됐다. 예순여덟 소방국 담당 사제(司祭) 미셀 저지 신부님도 불지옥 속에서 죽음을 맞았다.
어느 나라에서건 갑작스러운 재난을 당하면 긴급 전화를 돌린다. 한국 119, 미국·캐나다 911, 오스트레일리아 000으로 나라마다 번호는 달라도 시민들은 이 전화벨 소리가 저쪽에 닿으면 누군가가 반드시 나를 구하러 달려오리라고 믿는다. 사회를 받쳐주는 이 신뢰의 그물이 촘촘할수록 안정된 사회다. 정치 특히 국회는 국민에게 119 전화와 같아야 한다.
4월 10일은 국회의원을 뽑는 날이다. 300자리를 놓고 온갖 종류 인간이 죽을 둥 살 둥 내달리고 있다. 어느 당 지지자가 됐건 현재 국회가 나라에 절박한 일·국민에게 절실한 일을 효율적으로 해왔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는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원 가운데 유권자가 뽑지 않은 의원은 단 한 명도 없다.
총선 후에는 달라질까. 한국 정치를 현재와 같은 절망 상태로 몰아넣은 데는 헌법적·제도적 요인이 있다. 미국식 대통령 중심제는 권력을 효율적으로 모아 국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안(創案)된 제도가 아니다. 다수(多數)의 독재를 방지하려면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는 데 역점(力點)을 둔 제도다. 미국 전성기(全盛期)에 이 결함 많은 제도가 잘 굴러간 것은 제도 허점(虛點)을 정치인 양식(良識)으로 메웠기 때문이다. 정치인 양식이 사라지자 미국의 세계 지도력과 국내 정치 안정·국가 통일성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한국은 4·10 선거를 통해 한국 정치에 양식(良識)과 양심(良心)을 보충할 수 있을까. 제도 결함이 여전히 방치돼 있고 국회의원을 뽑는 국민 안목(眼目)이 그대로인데 다른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3권 분립이란 행정권 중심의 대통령 권력과 입법권 중심의 의회 권력이 협상과 타협 과정을 통해 나라를 운영하는 합리적 결론을 끌어내라는 것이다. 한국식 대통령제는 ‘대통령 마음대로’ ’다수당 멋대로’ 각자 권력을 행사해 국민을 좌절시키는 제도로 타락했다.
헌법과 권력구조의 이런 제약 속에서 나라와 국민이 숨이 막히지 않으려면 4·10 총선을 통해 국회에 ‘최소한의 산소’를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측정 기준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정치적 생사(生死) 여부다. 이 대표가 살면 당분간 희망이 없다.
원내 절대 다수당 당대표는 대통령과 함께 국가 대표 소방관(消防官)의 양축(兩軸)이다. 훌륭한 소방관 제1요건은 ‘책임감’이다. ‘책임감’은 ‘죄책감(罪責感)’과 동전의 앞·뒷면 관계다. 화재 현장에서 ‘내가 달리 행동했더라면 한 명이라도 더 목숨을 구했을 텐데…' ’내가 좀 더 잘했더라면 동료가 희생되지 않았을 텐데…'라는 후회로 나타난다. 이것이 과거 잘못을 바로잡고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막아준다.
이 대표는 수많은 동료들이 자신과 연루된 죄(罪)로 목숨을 끊었는데도 단 한 번도 ‘죄책감’을 표시한 적이 없다. 죄의식이 없다는 뜻이다. 제1야당 당대표로 근무하는 시간보다 피고인으로 재판정에 드나드는 시간이 많은데도 죄(罪)스럽다는 느낌조차 없다. 이건 부도덕(不道德)과도 차원이 다른 무서운 일이다.
그의 ‘책임감 수준’ ’죄책감 여부’는 개인의 일로 끝나지 않는다. 현 정권이 국민의 신임(信任)을 잃으면 다음 정권을 맡아야 할 제1야당 전체 윤리 의식을 완전히 망가뜨렸다. 민주당 공천 과정과 결과가 그걸 보여주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사회의 전체 윤리 의식을 ‘이재명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이재명 잉크는 야당만이 아니라 여당도 물들여 버렸다. 잘한 것 없는 여당이 돌려막기식 공천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겠다는 태도나 사회 일각에서 들고나오는 ‘우리편 잘못 묻어주자 캠페인’·'아쉽다’는 단어 의미를 ‘사과한다’ 뜻으로 바꾼 대통령 사례도 ‘저런 이재명도 버티고 있는데…’라는 등받이가 없으면 나오기 힘들다. 4·10 총선은 정치인 이재명에게 한국 최고 소방관으로서 책임감과 윤리 감각이 있는지를 묻는 선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