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클럽 러닝머신 위에서 운동복 차림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천 재심을 요청하는 임종석(전 문재인 비서실장)을 TV 화면으로 보고 있는 사진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그 사진 한 장에, 한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고 뛰던 문재인 세력의 몰락, 그 휘하에서 구걸하다시피 어깨를 들이밀던 변방의 도지사 이재명의 득세가 상징적으로 오버랩돼 있다. 권력의 흥망은 흔히 정권 교체기에 있었다. 그런데 정당 내의 권력 교체가 공천이라는 예비전에서 이처럼 비정하게 노출됐던 기억이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건국 이후 이승만이 이끈 자유당, 박정희 등 군부 세력이 만든 공화당, 이후 YS 등 보수 세력이 주도했던 우파 정치에 대항해 한국 좌파 정치의 맥을 이어왔다고 스스로 천명해 왔다. 민주주의 정치가 좌우 두 날개로 난다면 지금의 야당은 좌쪽의 족보를 잇는 셈이다. 오늘날 민주당 당사에 걸려 있는 김대중, 노무현의 사진은 민주당이 한국 야당의 적통(嫡統)임을 자부하고 있다는 증좌다. 그 정당이 지금 내부 싸움에 휘말려 있다. 이재명 대표가 이끄는 이른바 친명파와, 운동권이 주축을 이룬 친문 또는 비명 간의 대립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당(黨) 내부의 노선 싸움이 아니라 당에 세(貰) 들어 있던 세입자 간의 대립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세(勢)는 ‘이재명 세입자’가 이기는 쪽으로 가고 있다.
여기서 ‘정치인 이재명’의 괴물성은 크게 돋보인다. 그는 대단한 사람이기 전에 무서운 사람이다. 아무런 정치적 배경, 학문적 경력, 사회적 명망 쌓기의 과정도 거치지 않고 거의 독학하다시피 변호사 하고 시장 하고 도지사 하고 대선 후보까지 올라간 사람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지더니 곧바로 국회의원과 당대표를 꿰차고 이제 대한민국 최다석 정당의 공천권을 매개로 당을 싹쓸이하고 있다. 이것이 모두 불과 10여 년도 안 된 기간에 일어난 일이다. 우리 국민이 그의 이름 석 자를 알기 시작한 것은 세월호 이후였다. 가족을 둘러싼 그의 몰인간성, 대장-백현동의 불법성에 놀란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의 초고속 질주는 그칠 줄 몰랐다. 아이러니하지만 국민의힘 한동훈 위원장이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던 ‘운동권 타도’를 이재명이 자신의 동력으로 삼고 있다.
그의 괴물성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민주당을 아예 ‘이재명 당’으로 만들고 있다. 그를 ‘하숙생’ 취급했던 운동권 내지 친문을 털어내고 ‘이재명 정당’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총선에서 지는 것도 감수하는 것으로 보인다. 선거에서 져도 좋으나 ‘이재명 당’만은 확보하겠다는 것이고 그래야 다음 대선 도전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정말로 무서운 사람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민주당이 이재명 당이 돼서는 안 된다. 한국의 민주화에 기여한 전통-정통 야당이 어느 권력가의 사당(私黨)이 돼서는 안 된다. 진보-좌파 정당으로서의 본성을 되찾기 위해서도 정화 작업이랄까 실지(失地) 회복 운동이랄까를 벌여 당을 사유화하려는 기도를 막아야 한다.
이제 민주당은 본래의 정통 야당으로 되돌아갈 때가 됐다. 이번 4·10총선에서 그동안 민주당에 기생(寄生)했던 온갖 불순물을 소독해내고 본래의 민주당으로 되돌아가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본래의 민주당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계층을 보호하고, 권력이 자의적으로 행사되는 것을 견제하고 막는, 명실상부한 좌파-리버럴-진보를 아우르는 정당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난 시절 민주당을 그들의 기숙처로 삼았던 종북좌파-586운동권-기회주의 세력도 털어내고 이 대표의 종북 노선도 저지해야 한다. 미국의 민주당, 일본의 사회당, 독일의 사민당, 프랑스의 사회당, 영국의 노동당이 가는 길을 한국적 상황에 맞게 접목한 민주 정통 야당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민주당에도 젊은 지성은 있고 참다운 진보 정치인들이 있다. 보수정치의 횡포나 일탈을 견제하는 정신은 살아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번 총선을 국민의힘이 이기고 더불어민주당이 지는 식(式)의 게임이 아니라 한국 좌파의 내부를 정리해서 해악적인 부분은 떼어내고 본래의 민주 정당의 자리를 회복시키는 한국 정통 야당 되찾기 움직임의 시작으로 삼아야 한다. 야당의 권력 다툼이 친명이냐 친문이냐의 차원을 넘어 좌파 노선의 물갈이 또는 운동권 세력의 퇴장이라는 더 넓고 더 의미 있는 판으로 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