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겠다.” 2021년 11월 20일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선대위 발족 후 지방 유세에 나서면서 한 말이다. “민주당을 이재명다움으로 변화시키고 혁신하라고 주문했는데 오히려 이재명이 민주당화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면서 “민주당이라는 그릇 속에 갇혀 버린 자신을 반성한다”고 했다.
유력 정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면 그 당이 자랑하는 지도자들을 언급하면서 그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겠다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미국의 공화당 대선 후보라면 레이건을, 민주당은 루스벨트를 단골로 내세운다. 우리 민주당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을 당사에 걸어놓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의 70년 역사를 자산이 아닌 부채로 취급했다. 그래서 당을 자기 스타일대로 완전히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대선에 임하는 절박한 심정을 강조하다 ‘오버’했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그냥 해본 말이 아니었다. 이 대표는 총선 공천으로 “이재명의 민주당”을 확실하게 만들었다. 반명(反明)들을 일찌감치 당 밖으로 몰아내더니 비명(非明)은 물론 이 대표 체제에 순응해 온 친문(親文)들마저 공천 과정에서 날려 버렸다. 빈자리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친명(親明) 신인들이 꽂혔다. 이 대표를 조선 정조에 빗댄 역사학자는 원내대표를 지낸 3선 의원을 경선에서 꺾었고, 이 대표를 이상형으로 꼽은 여성 후보는 행정구역 이름도 제대로 못 댄 지역구에서 단수 공천을 받았다. 이 대표의 자전적 에세이 제목 ‘이재명은 합니다’를 실감케 해줬다.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이번 공천이 민주당 총선 성적표에 어느 정도 부담을 줄지는 불투명하다. 공천 파동으로 한때 민주당 지지율이 급락하며 치명상을 안길 분위기였지만, 용산발 여당 악재들로 되살아난 정권 심판론 때문에 다시 판세가 뒤집힌 상황이다. 그러나 민주당 공천의 진짜 후유증은 ‘총선 이후’에 기다리고 있다.
오는 6월 개원하는 22대 국회의 민주당 의석은 순도 100% 친명으로 꾸려지게 된다. 지난 국회에서 한동훈 법무 장관을 상대로 ‘음주 호통’을 치거나 ‘제 발등 찍기 공격’을 남발하며 웃음거리가 된 ‘처럼회’ 수준 의원들이 세 자릿수로 늘어난다고 보면 된다. 이들이 정신 사납게 펼칠 함량 미달 개그를 국민은 4년 동안 지켜봐야 한다. 2004년 총선 때 노무현 탄핵 역풍에 올라타 국회에 입성한 열린우리당 탄돌이 초선 108명은 갖가지 기행으로 당의 골칫거리로 전락하며 ‘108 번뇌’라고 불렸다. 이들 중 4년 후 총선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3분의 1도 안 되는 35명뿐이었다.
올 8월 이재명 대표의 2년 임기가 끝나면서 치러질 전당대회에서 새 당대표는 이재명 또는 ‘이재명 아바타’가 당선될 확률이 100%다. 전당대회 표결을 좌우할 현역 의원 및 원외 지구당 위원장들이 모두 이 대표 손바닥 위에 있다. 마찬가지 이유로 2027년 차기 대선의 민주당 후보도 사실상 이재명 대표로 굳어졌다고 봐야 한다. 그 사이에 대장동과 백현동 특혜 및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 그리고 선거법상 허위 발언 및 위증 교사 혐의 등에서 유죄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지만 ‘피선거권 박탈 확정 판결’이 나오지 않는 한 ‘이재명 결사 옹위 시스템’이 작동한다. 사법 리스크로 너덜너덜해진 이 대표로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상황이 분명해져도 ‘무조건 고’를 외칠 것이다.
‘이재명의 민주당’이 남길 후과는 ‘이재명 이후’로까지 어어진다. 지난 전당대회 때 이 대표에게 도전장을 낸 박용진 의원은 경기 규칙이 급조된 불공정 경선을 통해 ‘금배지를 길가다 주운’ 친명 여성에게 밀려났고, 또 다른 잠재적 경쟁자로 꼽힌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경선 기회마저 없이 컷오프됐다. 러시아 독재자 푸틴이 나발니를 감옥에 가둬두는 것만으로도 불안해 제거해 버린 일을 연상시킨다. 2027년 대선을 지나고 나면 ‘이재명 대체재’들의 정치적 유통기한도 끝난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이재명 대표에 대한 충성심만으로 선발된 22대 민주당 국회의원들 가운데 국민 눈높이에 맞는 차기 지도자감이 있을 리 만무하다. 2028년 총선 묘목에서 새로 길러 나가야 한다. 이들의 활약이 국민 눈에 띄려면 몇 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이 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활로를 위해 당을 희생시킨 여파가 10년은 간다는 얘기다. 대한민국 양당 체제를 떠받쳐 온 민주당의 흑역사로 기록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