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메이플 시럽을 좋아한다. 단풍나무 수액을 졸여 만든 시럽이다. 대부분 캐나다에서 생산한다. 단풍철 캐나다에 가 본 적이 있다. 한국도 단풍이 좋은 나라다. 캐나다에 비할 바는 아니다. 퍼스트레이디 엘리너 루스벨트는 이구아수 폭포의 위용에 놀라 “나의 불쌍한 나이아가라”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그러게나 말이다. 나의 불쌍한 오대산.

한국 단풍나무로는 메이플 시럽을 생산할 수 없다. 대신 단풍나무 일종인 고로쇠나무에서 뽑아내는 ‘고로쇠 물’이 있다. 시럽을 만들어 사업화할 수 있지 않을까 잠깐 고민했다. 아니다. 수익성이 없으니 나오지 않은 것이다. 모든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는 이미 누군가 검토해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회사 때려치우고 사업하겠다 입버릇처럼 말하는 여러분 가족에게도 알려주시길 부탁드린다.

슬픈 뉴스를 봤다. 메이플 시럽 생산이 기후변화로 줄었다는 것이다. 지난해보다 40%나 줄었다. 메이플 시럽이 사라진다면 팬케이크 맛은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나는 기후변화를 플라스틱 빨대 안 쓰는 제1 세계 중산층적 행위 따위로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제 의문은 없다. 메이플 시럽을 지킬 수 있다면 종이 빨대 텁텁한 맛도 견딜 수 있다.

봉준호는 오스카 시상식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말을 되짚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은 가장 창의적일 뿐 아니라 가장 강력하다. 캠페인도 그렇다. 나에게는 북극곰이 멸종한다는 호소보다는 메이플 시럽이 사라진다는 경고가 더 강렬하다. 몰디브가 수몰되면 어쩌냐고? 어차피 나는 신혼여행 갈 일도 없다.

흡연자인 나에게 ‘수명 단축’보다는 ‘치아 변색’이라는 담뱃갑 문구가 더 무시무시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 그렇다. 이 나이 먹도록 연애 시장에 내몰린 중년에게는 깨끗한 치아가 쓸데없이 긴 수명보다 중요하다. ‘정의’라는 너무 거대해서 아득한 단어로 가득한 선거 선전물들을 재활용 상자에 버리며 문득 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