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일 경기도 화성시 동탄역에서 시민들이 광역급행철도(GTX)-A를 줄지어 타고 있다. GTX-A 요금은 SRT의 60% 수준이고, 서울·경기도 대중교통과 환승 할인도 가능하다. /김지호 기자

제2의 도시인 부산도 지역 소멸 ‘위험’ 단계에 접어들었다. 자치구 16곳 중 12곳 출생률이 전국 평균에도 못 미치는 데다 젊은이들은 매년 일자리를 찾아 부산을 떠나고 있다. 부산 인구는 2016년 350만명 선이 무너진 데 이어 현재 330만명으로 급감했다. 그런데 부산 인접 도시인 경남 양산시와 김해시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양산시는 인구 증가율이 가장 높은 지방 도시로 꼽히고 김해시 역시 인구 53만명을 보유한 도시로 성장했다. 부산시의 인구 이전 현황을 보면 지난 10여 년간 거의 매년 1만명 이상이 두 도시로 터전을 옮겼다. 대규모 공단과 함께 주거 여건이 좋은 신도시들이 조성되면서 부산 인구를 대거 흡수한 것이다. 이 두 도시를 합치면 부산권은 여전히 인구 400만명의 준(準)메가시티다.

양산은 생활권에서도 부산과 밀접하다. 양산시청에서 경남 도청 소재지가 있는 창원보다 부산시청이 훨씬 가깝고 부산대병원도 양산에 있다. KBS 방송 권역도 KBS창원방송권역이 아닌 KBS부산방송권역이다. 양산 출신의 20대 직장인은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부산으로 가고 야구팀도 창원 NC가 아닌 부산 롯데를 응원한다”고 말했다. 김해시 역시 절반은 부산 생활권이다. 하지만 부산~양산·김해를 오가는 출퇴근·통학 인구가 14만명이 넘는데도 여전히 도시를 잇는 도로와 지하철 등 교통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시민들은 이미 메가시티에 살고 있는데도 시대에 뒤떨어진 행정구역 탓에 정작 필요한 광역 인프라 투자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다.

선거 통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수도권에서는 지난달 말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A 노선이 개통됐다. 지금은 동탄~수서 구간만 개통해 초기 이용자가 기대에 못 미치지만, 내년 파주 운정신도시~서울역~동탄까지 83km 전 구간을 운행하고 2030년까지 GTX-B·C 라인이 잇따라 개통하면 수도권 30분 출퇴근 시대가 열린다. 비싼 집값 때문에 외곽으로 밀려난 젊은 세대는 한 드라마 대사처럼 “노른자(서울)를 둘러싼 계란 흰자” 같은 경기도에 살면서 겪는 교통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젊은 세대는 더 저렴한 가격에 주택을 구하고, 멀리 파주 운정에 사는 학생들도 얼마든지 강남 학원에서 일타 강사의 직강을 들을 수 있다. 또 경기도 외곽 지역도 역세권을 중심으로 특성에 맞는 도시 개발을 추진할 수 있다. 런던 대도시권(Greater London)을 동서로 관통하는 고속철도 ‘엘리자베스 라인’이 메가시티 런던의 일상을 바꾸었듯이, GTX 개통으로 ‘메가시티 서울’도 눈앞에 다가왔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메가시티 논의는 서로 상대방을 심판하겠다는 여야(與野)의 비방전에 묻혀 버렸다. 김포와 하남·구리 등 서울 베드타운 도시들을 서울로 편입하겠다는 여당의 메가시티 서울 구상이나,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야당의 부산·울산·경남 메가시티도 지역 유권자를 향한 인사치레로 언급되는 정도였다. 선거 때마다 무한 반복되는 일이지만, 이번 선거에서도 ‘대파 가격’ ‘부동산 증여’ 같은 자극적인 소재가 국가 미래를 좌우할 정책 경쟁을 뒷전으로 밀어냈다.

사실 GTX 등 교통수단의 비약적인 발전은 전 국토의 메가시티화(化)와 지방 소멸을 가속화한다. GTX 건설과 역세권 개발로 수도권에서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도, 서울~부산을 2시간 만에 주파하는 KTX 청룡의 등장도 수도권 집중을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시대에 지방 소멸을 막으려면 행정구역의 칸막이를 걷어내고 주변 개발을 이끌 거점 도시를 육성해야 한다. 예컨대 부·울·경이 힘을 합쳐 부산 해운대~수영~기장군에 이르는 해안 벨트를 미국 라스베이거스나 중국 하이난섬 같은 MICE(전시·컨벤션) 산업의 메카로 키울 수 있다. 출산 관련 예산도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부산 구(舊)도심보다는 시민들의 평균 연령이 42세 안팎인 김해·양산시에 집중 투입하는 게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에 개편한 행정구역에 갇힌 지자체의 정책 서비스는 여전히 ‘새마을호’ 기차 시대에 머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