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따사로운 햇빛을 한자로 이야기할 때는 ‘춘휘(春暉)’가 참 그럴듯하다. 뒤의 글자 ‘휘’는 내리쬐는 햇빛이다. 봄은 곧 석 달이라고 해서 때로는 앞에 삼(三)을 붙여 ‘삼춘휘’라고 적어 역시 봄철의 햇빛을 말한다.
문학적으로 이 단어를 모성(母性)으로 다뤄 심금을 울리는 작품이 있다. 당나라 시인 맹교(孟郊)의 ‘유자음(遊子吟)’이다. 아들이 먼 길을 떠난다. 어머니는 손에 바늘과 실을 들고 아들의 옷을 촘촘히 다시 꿰맨다. 일찍 돌아오지 못할까 기울이는 걱정…. 그 말미가 이렇다. “누가 말했나, 한 줄기 풀과 같은 마음으로 봄날 햇볕의 고마움을 갚는다고(誰言寸草心, 報得三春暉).” 어머니의 한량없는 은혜를 가리키는 명구다. 혹은 촌초춘휘(寸草春暉)라고 적어 갚을 길 없는 부모의 은덕을 지칭한다.
이런 봄에 어울리는 성어 표현은 아무래도 모든 꽃이 함께 피어나는 백화제방(百花齊放), 온갖 새가 한데 울음 우는 백조쟁명(百鳥爭鳴) 등이다. 삶의 기운이 쑥처럼 번져가는 생기봉발(生機蓬勃) 등의 성어도 적당하다.
그러나 올해 중국이 맞이하는 봄기운은 예전과 같지 않다. 중국어 권역의 대부분 매체들은 봄날의 경물과는 전혀 맞지 않는 ‘소조(蕭條)’라는 말로 요즘의 중국 경제 사정 전체를 표현한다. 이는 만물의 기운이 꺾여 사라지는 가을의 용어다. 소삽(蕭颯), 소삭(蕭索), 소랭(蕭冷), 소슬(蕭瑟) 등이 관련 단어다. 모두 잎사귀 떨어진 나뭇가지, 그곳에 닥치는 차가운 바람, 그로써 빚어지는 쓸쓸한 분위기를 가리킨다. 생산과 소비 등 산업 전반의 부진을 지적하는 내용들이다.
당나라 시인의 표현처럼 위대한 모성과도 같은 봄볕은 올해 중국의 대지를 외면하는 분위기다. 볕이 드는 정도를 말하는 단어가 마침 경기(景氣)다. 그것 가라앉으니 봄인데도 차갑다. 우리의 봄은 따스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