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사정에 어두운 필자도 윤석열 정권이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 인사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는 얘기를 몇 차례 들었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처리를 둘러싼 입장 차이 때문이라고 했다. 대통령은 김 여사가 아무 혐의가 없는데 수사를 왜 종결시키지 않느냐고 답답해하는 반면, 중앙지검은 김 여사에 대한 소환 조사 절차가 필요하다며 버틴다고 했다. 그래서 송 지검장을 고검장으로 승진시키는 모양새로 내보내고 윤 대통령이 믿을 수 있는 복심을 그 자리에 앉힐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바로 그 시나리오대로 이번 인사가 이뤄졌다.
필자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그간의 보도 내용을 점검하면서 김 여사의 무혐의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사실 김 여사가 윤 대통령 배우자가 아니었다면 이 사건은 수사 대상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2009년 말 이 회사 주가가 급락하자 권오수 회장이 주가를 끌어올려 달라고 ‘선수’들에게 부탁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대통령 부부가 결혼하기 전 일이다. 2013년 처음 내사했던 경찰은 ‘물건’이 안 된다며 종결했다. 이 사건이 다시 불거진 것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문재인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며 미운털이 박히면서부터다. 윤 총장과 관련된 각종 의혹을 들춰내 먼지를 터는 과정에서 윤 총장 배우자의 계좌가 주식거래에 동원됐던 사실이 표적이 됐다.
문 정부 검찰은 김 여사 혐의 입증을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대기업이나 권력층 수사를 전담해온 특수부 정예부대로 수사팀을 꾸렸고, 주가조작 공소시효 10년을 넘기지 않으려고 다른 거래와 묶어 연장하는 묘수도 동원했다. 그 결과 작년 2월 내려진 1심에서 권 회장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주가조작 주범은 징역 2년을 선고받았고 계좌를 빌려줬던 사람들은 무죄였다. 재판부는 “의도는 있었지만 시세조종에 실패한 주가조작”이라고 판단했다. 당초 경찰도 그래서 사건을 들춰 보다가 덮었을 것이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얼마 전 “전담 수사팀을 만들어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한 디올 백 수수 의혹 역시 심각한 수사 결론이 도출될 것 같지는 않다. 300만원짜리 파우치를 포장째 대통령실 창고로 반납한 일 때문에 대통령 배우자를 감옥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대로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께 걱정 끼친 부분”에 대해 도덕적 지탄을 받을 정도의 사안이다.
물론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디올 백 수수가 김 여사의 형사처벌에 이를 문제는 아니라는 필자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법리를 차곡차곡 따져 보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두 사건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을 키운 것도 수사를 해보지도 않고 권력의 힘으로 덮으려는 대통령 태도였다. 이번 총선에서 조국혁신당에 표를 던진 사람들은 조국 대표의 결백을 믿어서가 아니었다. “조국 일가 3명 모두를 탈탈 털어 감옥에 보내겠다면서 대통령 부인은 조사 한 번 없이 면죄부를 주겠다는 것이냐”는 반발 심리가 크게 작용했다.
이런 총선 민심에 비춰볼 때 이번 검찰 인사는 정권에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대통령이 새로 임명한 민정수석이 인사안을 작성했다는 수사 라인이 김 여사 혐의를 털어주려 한다는 의구심이 현실로 나타나면 거센 후폭풍이 몰아칠 것이다. “광화문 광장을 뒤덮을 촛불이 눈에 어른거린다”는 말들이 들려온다.
검찰 수사에 대해 “대통령 부인이라고 저렇게 봐줘도 되느냐”는 평가가 나오면 당장은 대통령 부부 신세가 편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190석 범야권이 성난 민심을 등에 업고 특검을 밀어붙여 올 것은 정해진 이치다. 대통령 거부권과 여당의 혼연일체 방어로 특검을 막아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국민 절대 다수가 지지하는 특검을 거부하면 정권은 넘어간다. 그래서 훨씬 가혹한 조건에서 수사를 받게 된다.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지만 정반대 가정도 해본다. “검찰이 대통령 부인에게 저렇게 심하게 해도 되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면 김 여사는 수모를 겪고 대통령은 분노할 것이다. 그런데도 야당이 또 특검을 들이밀면 국민은 “지나치다”고 받아들인다. 여당의 특검 저지도 순조로울 것이다. 어느 쪽이 대통령과 정권을 진짜로 보호하는 길이겠는가. 대통령 부부의 구명줄은 후배 검찰 손에 쥐여 있는 셈이다.